언젠가부터 아내가 이상해졌다. 예전에는 아무런 불평 없이 가족의 뒷바라지를 척척 해주던 아내였는데, 언젠가부터는 사소한 일로도 바가지를 긁는다. 심지어는 하루 세끼 밥 차려 주는 것도 귀찮다는 표정이다 (내가 삼식이이니 그럴 수도 있긴 하다). 평생을 함께 살아왔으니 그래도 내가 아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바로 아내의 마음이다.
나이 들면 남들도 그렇게 산다고 하니 우리 집도 그러려니 했다. 또 젊었을 때에는 가족을 위해 꿈도 포기한 채 살아왔을 터이니, 이제는 아내의 불평쯤은 참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내와 남편은 은퇴 후 생활 방식에 대하여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실제로 내가 경험한 것과 너무도 닮았다. 문득 아내가 변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남편들은 은퇴 후 도시에서 살기보다는 전원생활을 꿈꾼다고 한다. 마당이 있는 집을 원하고,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어 한다. 혹시 집에서 취미로 목공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글쎄 다 좋긴 한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혼자 놀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내들은 그렇게는 못 산다. 아내들은 편리한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고, 도시에 살거나 아니면 적어도 도시와 가까운 곳이라야 한다. 아내들은 친교 모임도 계속해야 하고, 또 손쉽게 쇼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내들에게 사회생활이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일부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스냅사진. 꿈속의 사슴 두 마리는 서로가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어느덧 아내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꿈을 기억해 낸 것 같다. 만약 그 꿈이 이루어졌더라면, 아내는 지금쯤 도시의 아파트에서 쇼핑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이상하게 낚여 나를 따라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으니 자신의 팔자가 한심하기도 하고, 그 원흉인 내가 얄미웠을 수도 있다. 뒤늦게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물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살기는 하지만 매사에 내 행동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마음 이해가 간다.
'우리는 서로 다른 꿈을 꾼다'라는 우리 집 고양이들.
이렇게 은퇴 후 아내와 남편이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데는, 남녀가 갖고 있는 사회성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들의 사회성은 정말 경탄할 정도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대화를 한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보면 '아기가 참 귀엽게 생겼네'부터 시작하여 좀 지나면 육아법, 가정 얘기, 남편 얘기까지 다 나온다. 아내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며칠만 지나면 주위 사람들과 서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된다.
반면에 은퇴한 남편들은 사회성이랄 것도 없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직장 사람들뿐이고, 그 외에 친구 몇 명이 있는 정도다. 하지만 직장 사람들이야 퇴직하고 나면 어차피 멀어지기 마련이고 (한 6개월은 같이 놀아줄지도 모르지만), 새롭게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러니 남편들은 식구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다 큰 자식이 아빠와 놀아줄 리는 없고, 만만한 게 아내뿐이니 젖은 낙엽처럼 아내에게 달라붙는다. 아내에게는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된다고 한다. 혼자서 좀 놀아주면 좋으련만, 눈만 뜨면 졸졸 따라다니며 사사건건 간섭이나 하려 드니 말이다. 오죽하면 '은퇴 남편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제발 따라다니지 좀 말라는 아내의 말에 치사해서 혼자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뭘 하며 놀아야 할지도 모른다. 평생을 직장 다니며 일이나 할 줄 알았지 특별히 취미랄 것도 없고, 심지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바로 귀촌 초기의 내 얘기다.
그래서 아내는 아이들과 도시에 남고, 남편은 꿈을 찾아 혼자 시골로 내려와 텃밭을 가꾸며 사시는 분들도 계시다. 내 주위에도 예상외로 이런 분들 무지하게 많다.
하지만 부부가 이렇게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면, 남편과 아내의 꿈은 점점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내 경우, 만약 아내가 끝까지 시골로 못 간다고 버텼다면, 나는 아직도 빈둥대며 도시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난 혼자 시골로 올 만큼 배짱 있는 위인도 못된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끊임없는 대화와 양보로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얘기다. 내 경우도 끊임없이 협박과 회유를 했는데도 시골로 오기까지에는 몇 년이나 걸렸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중요한 건데, 어디에서 살 건 TV 앞에서 시간 보내지 말고 혼자 노는 법도 미리 배워두어야 한다.
나이 들어 중산층에서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혼이라고 한다. 퇴직금으로 그럭저럭 부부가 먹고는 살아도, 반으로 쪼개면 둘 다 빈민층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늘그막 해서는, 혼자 사는 것보다는 적당히 고쳐서라도 데리고 살아가는 게 이득이라고 한다. 아내들이 꼭 귀담아들어 주었으면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