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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한 사과 '홍옥' - 옛 맛이 그립다

홍옥의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3년 전에 심은 사과나무 '홍옥'에 사과 한 개가 열렸다. 사과를 수확하기에는 아직 나무가 어리니, 올해는 그저 맛이나 보려고 사과 한 알만 남겨놓았다. (어린 나무에 사과를 많이 매달면 나무가 쉽게 망가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과 한 개가 큼직하게 자라 빨갛게 익었다.


내가 요즘 흔하지도 않은 사과 '홍옥'을 심은 이유는 어릴 적 추억 때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장에 가시면 사과를 사 오시곤 했는데, 이따금 그때 먹었던 사과의 새콤한 맛이 그리워졌다. (그 당시는 사과 품종이라고 해 봤자 대부분 '홍옥' 아니면 '국광' 뿐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인지라 어머니는 매번 값이 싼, 작고 개수만 많은 사과를 사 오시곤 했다. 그래서 그 당시는 사과라고 하면 으레 작고 볼품도 없는 과일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제대로 된 과일을 먹기 시작한 것은 시골에 내려오고서부터이다. '먹는 것만큼은 제대로 된 것을 먹자'라는 생각에서 텃밭과 과수원을 만들었고, '비싸서 사 먹지 못하면 키워서라도 먹자'라는 신조에 따라 집에 유실수를 골고루도 심었다.


올해 딱 한알 남겨놓았던 우리 집 사과나무 '홍옥'

덕분에 지금은 우리 집 형편상 결코 돈 주고는 사 먹지 못할 정도로 비싼, 큼직하고 맛있는 과일을 제법 먹으며 산다.


그런데 '대장간 집에 칼이 없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사과 과수원인 우리 집에서 사과만큼은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과일이다. 물론 상처 난 사과야 얼마든지 먹어도 되지만, 멀쩡한 사과는 먹으면 안 된다. 상품성 있는 사과는 팔아야 하니까. 그래서 차선책으로 새가 쪼아놓은 큼직한 사과만 골라 먹는다. 새도 맛있는 건 기가 막히게 안다.


몇 년 전 장에 갔다가 묘목을 판매하시는 분께 여쭈어봤다. "혹시 옛날 사과 묘목 '홍옥'을 구하실 수 있으세요?" "아마도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몇 주를 기다려서 애타게 찾던 홍옥 묘목 한 그루를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그때는 회초리 같은 묘목을 언제 키워 사과를 먹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벌써 3년이란 세월이 지나버렸으니 시간의 흐름이 무섭기까지 하다.


요즘은 사과나무 품종도 워낙 다양하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10여 가지는 되는데, 품종마다 수확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우리 집 사과나무는 전부 후지로, 11월 초순이 되어야 수확을 시작한다. 조금 일찍 먹을 수 있는 아오리도 한 그루 있지만, 아오리는 수분수로 심었을 뿐이다. 난 새콤한 맛의 사과를 좋아하는데, 일찍 나오는 사과들은 (추석쯤에 판매하는 사과) 대부분 단 맛은 강하지만 새콤한 맛은 덜하다.


홍옥은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나온다.

며칠 전 홍옥이 빨갛게 익었다 싶어서 따 왔다. 그리고는 식구들과 함께 시식하려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저녁때 아들놈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비록 한 알이지만 첫 수확이니 식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 "이 사과가 아빠 어릴 적에 먹던 홍옥이란 사과야!" 잔뜩 폼 잡으며 사과 껍질을 벗겼다.


그런데 껍질을 벗길 때부터 벌써 새콤한 냄새가 심상치가 않았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어찌나 맛이 강한지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전문가인) 내가 기억하는 사과 맛 중에서 제일 강한 맛이었다. 얼마나 새콤하고 단맛이 강했던지, 먹으면서 저절로 캬~캬~ 소리가 나왔다. "와, 정말 시네." 그래도 아들놈은 한쪽을 다 먹었다.


하지만 김치도 날 김치만 먹는 아내는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고 한다. 난 아직도 익거나 신 김치만 먹는데... 또 먹을 때는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눈을 질끈 감기도 하지만, 먹고 나면 곧바로 그 맛이 그리워지는 중독성도 있는 것 같다. 순식간에 사과 세 쪽을 혼자서 해치웠다. 올해는 홍옥 한 알로 만족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무가 성목이 되는 내후년쯤이면 이웃 분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이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몇십 년이 지났으니 아예 다를 줄 알았는데, 홍옥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문득 자그마한 방에 네 명의 아이들이 어머니 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과를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 시절이 영원할 줄 알았다.


지난 세월을 기억하게 하는 새콤한 홍옥의 맛! 벌써 그 맛이 벌써 그립다.



<사진 출처>

첫 번째 사진: https://www.gsjangter.go.kr/products/view/G2000483306

두 번째 사진: 우리 집 홍옥 사과나무

세 번째 사진: https://blog.naver.com/joungwha77/22050054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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