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느끼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농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좀 딸리는 것 같다. 어려운 영어 단어는 알면서 아주 기본적인 단어를 몰라서 헤맨다고나 할까? 물론 뒤늦게 배운 농사이니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들은 다 아는 아주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서 때로는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처음 심어본 수박도,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망가졌다.
처음으로 수박 모종을 심었다. 초기에는 추위로 비닐하우스 안에서도 몸살을 앓는 듯싶더니만, 수박은 죽지 않고 넝쿨을 키웠다. 잘 자라라고 수박 모종 주위에 볏짚도 덮어주었다. 땅의 습도가 유지되서인지 수박은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잎이 몇 장 되었을 때 순지르기를 하였고, 새로 나온 덩굴 두 개만 키웠다. 덩굴 하나에 수박을 한 개씩만 매달 생각이니, 수박 모종 3포기에 총 6개의 수박이 열릴 것이다. 그 정도면 몇 개는 주위분들과 나누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나에게 모종을 얻어 준 형님께도 수박을 갖다 바쳐야 한다. 내년에도 모종을 공짜로 얻으려면.
곁순들도 보이는 대로 다 제거해 주었다. 수박은 16마디 이후에 달아야 크고 좋은 수박이 된다고 하므로, 그전에 피는 꽃들은 전부 따 주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도 전문가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드디어 열매가 맺혔다. 아, 얼마나 고대하던 수박이었던가! 계획대로 딱 6개의 열매를 남겨놓고 나머지는 전부 따내어 주었다. 물론 보이는 꽃들도 다 제거해 주었다. 더 이상은 아까운 양분을 필요도 없는 꽃 피우느라 소비하면 안 되니까. 그동안 사과나무 키우며 습득한 전문가의 솜씨로 순식간에 처리해 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 수박 2개가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시들어버렸다. 어, 수박이 왜 이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딱 6개밖에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2개가 시들어 버리다니... 갑자기 왜 수박이 시든 거지? 벌레가 파먹은 흔적도 없는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니 더 답답할 수밖에. 혹시 땅에서 습기가 올라와서인가? 그래서 나뭇조각을 가져다가 남아있는 작은 수박 아래에 받쳐주었다.
이미 죽은 2개는 어쩔 수 없다 치고, 이제 남은 4개라도 잘 키워야 한다.
작은 수박이 시들어버렸다. 혹시 습기 때문인가 싶어서 나무를 받쳐주었지만, 그다음 날 나머지 수박도 다 시들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마지막 남은 4개마저 전부 시들어버렸다.
헉! 정말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저 무성한 수박 넝쿨에 수박은 하나도 없다! 곡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이고, 이를 어쩐다!" 아무래도 내 능력을 벗어난 것 같다. 마음이 급해졌다. 더 망가지기 전에 빨리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수박 전문가를 초빙하기로 했다. "더 이상 손대지 말고 전문가가 올 때까지 그냥 놔두세요!" 그래서 정말 손도 대지 못하고, 날마다 애처롭게 무성한 넝쿨만 쳐다봤다. 전문가가 오면 틀림없이 해결책이 있을 거야...
며칠 후, 마침내 전문가가 나타났다.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먼저 수박 옆에서 자라고 있던 단호박을 보고 설명을 해야겠다. "호박도 수박과 똑같아요. 이 호박이 결실이 된 것 같으세요?" "그럼요, 호박이 열렸는데요". 어? 그런데 아니란다.
작은 호박이 매달린 게 호박 암꽃이고 (좌) 없는 게 수꽃이다. 수정이 안되면 이렇게 시들어 버린다 (우).
설명에 의하면, 작은 호박이 달린 것이 단호박 암꽃이고 없는 것이 수꽃이란다. 암꽃에 수정이 되면 달려있는 호박이 커지지만 수정이 되지 않으면 호박이 시들어 떨어져 버린다고 한다. 이미 수정이 되어 호박이 열린 게 아니란 말이다. 그동안은 작은 호박이 시들어 떨어지면 왜 그런지도 몰랐다.
나는 지금까지 암꽃과 수꽃도 구별하지 못하며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다. "어? 사과와는 다르네!" 내 한탄 섞인 목소리에 와이프가 위로를 해 주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전문가가 아니면 다들 모를 거야." 그런데 나중에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딱 한 사람 초짜 농사꾼 형님을 빼고는 다들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수박이 달려있는 것이 수박 암꽃이다. 수꽃은 작은 수박 없이 꽃만 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수정도 안된 암꽃 6개만 남겨놓고 수꽃들을 모조리 다 따버렸으니 수박이 한 개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수박 암꽃이다. 호박처럼 작은 수박이 매달려 있다. 수정된 것도 아니면서 왜 작은 수박이 매달려있어 그동안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수박밭의 무성한 덩굴에는 그동안 새로 자라난 이런 암꽃이 두세 개쯤 보이고, 무수히 많은 수꽃들이 주위에 피어 있었다. 꽃의 세계도 종족번식을 위한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한 것 같다.
전문가는 "벌이 없을 때에는, 수꽃을 따서 이렇게 암꽃에 인공수정을 시켜주어야 해요"라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시기적으로 수박을 달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수박을 달아봤자 껍질만 두껍고 맛도 없어요"라고 전문가가 말했다. "차라리 뽑아버리고 다시 심으면, 추석 때쯤이면 수확할 수 있을 거예요". "수박이 하나도 달리지 않았으니 잎 색깔이 이렇게 진한 거예요. 영양분이 갈 곳이 없어서..." 와! 역시 전문가답다.
그런데 저 무성하게 자란 수박 넝쿨을 그냥 다 뽑아버리라고? 휴우~ 요즘 왜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냥 내버려 두었더라면, 작더라도 저절로 수정된 수박 몇 개는 건졌을 텐데... 이번에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그런데 책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이런 내용이 없다. 농사는 책에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이미 망가진 수박농사를 회복할 방법은 없고... 한 가지 걱정거리만 생겼다.
주위에 수박 얻어먹겠다고 은근히 기다리시는 분들이 제법 계시는데,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수박 심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걸, 입이 방정이다.
더구나 수박 모종을 얻어다 준 형님께는? 내년에도 수박 모종 얻기는 다 틀려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