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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전기보일러가 고장 났다

시골살이가 쉽지만은 않다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아빠,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요' 아침에 욕실에서 나오던 아들 녀석이 말을 던지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들놈은 상황만 보고하면 끝이고, 나머지는 내 몫이다. 시골살이 한지 십여 년이 되었는데도, 심야전기보일러나 온수기에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일단 고장 나면, 돈도 돈이지만 무조건 며칠은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일러 실에 들어가 온수기를 보니, 물 온도가 25도까지 내려가 있다. 즉 고장 난지 며칠은 되었는데, 물이 차츰 차가워지니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전원과 심야 전원 스위치에 불이 들어와 있으므로, 전기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 (한전에는 전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전에 심야전기보일러(난방용)는 몇 번 속을 썩였지만, 온수기는 지난 10년 넘게 사용하면서도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수명을 다해 가나 보다.


전기가 들어오는 데도 물이 뜨거워지지 않으니 틀림없이 물을 데워주는 히팅 코일이 고장 난 것일 거야. 아직 토요일 오전이니 나중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빨리 A/S 센터에 전화를 해야 한다. 남자 상담사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 리셋 스위치를 눌러보란다. 그래서 온수기 컨트롤 박스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답답해서 나사로 고정되어 있는 박스도 열어서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리셋 스위치가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왼쪽 사진의, 오른쪽 끝에 있는 단자함 가운데 검은 부분을 눌러보란다. 눌렀더니 아무 반응도 없다. 심야전기 들어오는 밤 시간에 다시 눌러보란다. 그리고 친절하게 덧붙여주었다. 지금은 심야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므로, 수리업자가 가더라도 고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밤 11시가 지나서 다시 스위치를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때야 내가 바로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수리업자가, 심야전기가 들어오는 밤 11시 넘어 방문을 하겠는가? 당연히 내일은 일요일이니 수리하러 나오지 않을 테고, 월요일이나 수리업자가 오겠지.


온 식구가 궁핍한 생활을 시작했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고무 통에 물을 받아놓고 썼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 동안을. 예전에 한동안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도망 다니다가 자수를 했는데, 자수한 이유가 샤워를 하고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3일 동안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으니,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월요일 낮에 수리업자가 왔다. 그리고는 박스를 뜯어보더니, '누전차단기가 고장 났네요' 한다. 아니, 스위치를 올려보니 정말 차단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도대체 난 뭘 본거지? 전원 스위치에 불이 들어온 것을 보고, 열선만 잘못되었다고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또 말도 안 통하는 A/S센터 상담원 이해시키느라 열 받아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내가 이 모양이니 맥가이버는 무슨 얼어 죽을 맥가이버! 난 맥가이버 되기에는 아직 멀고도 멀었다.


간단하게 10분 만에 고치고, 출장비 37,000 원에 누전 차단기 값 15,000원, 총비용이 5만 2천 원이란다. 누전차단기는 몇천 원이면 사는데 (누전차단기는 나도 몇 번 교체해봤다).

내가 무식한 탓에, 이번에도 또 돈으로 때웠다. 시골에서는 이렇게 업자가 부르면, 부르는 게 값이다.


P.S. 그래도 돈이 아까워, 내가 눌렀던 검은 부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전기가 통하는 마그네틱이라고, 절대로 손대지 말란다. 차단기가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220v에 감전될 뻔했다. 도대체 A/S센터 상담사는 뭐 하는 인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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