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 노부부의 이야기
우리 마을에서 또 한 분이 이사를 가셨다. 가뜩이나 몇 집 남지도 않았는데, 할머니 혼자서는 살기가 힘드시다며 충주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다.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으니, 거의 일 년 넘게 할머니 혼자 지내오신 셈이다. 십여 년 전에 우리 식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이 이사 왔다고 좋아하시며 동네 모임에도 기꺼이 넣어주셨다. 그 덕에 마을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었는데, 작년에 77세의 별로 많지도 않은 나이에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한없이 좋으신 한량이셨지만, 평소에 (연세 드시고도)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할머니 고생도 많이 시키신 모양이었다. 대낮에도 뻘게진 얼굴로 작은 오토바이를 타시고 돌아다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우리 동네에 들어온 공장에서 경비로 일을 하셨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농사도 지으셨다. 우리 집에 텃밭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팔고 남은 가지를 가져다주시기도 했고, 절임 고추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사과 얻어먹는 보답으로, 무엇이라도 주고 싶으셨나 보다.
한 평생 농사 다운 농사를 지으신 것도 아니니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었을 테고, 또 일 년쯤 항암치료로 남은 돈마저도 다 써버렸을 터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식당에 다니시며 일을 하셨다. 그러다가 이제 할머니도 관절이 아파 더 이상 일을 하시기 힘들어지자, 자식들이 아파트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제 좀 편하게 지내시라고. 그나마 그런 자식들이라도 있으셔서 다행인 셈이다.
이사 가시기 전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식사 대접을 해 드렸다. 아파트가 충주 시내에 있으니 차로 삼십 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지만, 한 평생 식구처럼 지낸 이웃인지라 모두들 아쉬워했다. 할머니는 집안을 비워야 하므로, 지난 주말에 자식들을 불러 함께 집안을 치우셨다고 한다. 오래 묵은 살림살이들이라 다 고물상에 넘기고, 간단하게 옷가지 몇 개만 챙겨간다고 하셨다.
경운기는 아직 쓸만하다고 따로 50만 원을 받았고, 그 이외의 잡다한 농기계들과 공구, 한평생 모아둔 고물들은 전부 무게로 달아 고물상에 팔으셨다고 한다. 트럭 두 대 분의 고물이 나와서, 고물 판 돈만 80만 원이라니, 한평생 한 집에 살면서 모아놓은 살림살이가 얼마나 많았던 건지 헤아려지기도 한다.
"영감 보내고 나서보니, 나한테 남은 건 고물밖에 없었어"라고 할머니가 쓸쓸히 말씀하셨다. 시골서 농사짓다 죽으면 남는 게 빚과 고물 농기계뿐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분들은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가난하게 사셨지만 빚도 없고, 더구나 속 썩이는 자식들도 없고!
한 평생 시골서 살아오신, 한 노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10년 또는 20년 뒤에 다가올,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물론 도시라고 더 나을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