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세상에 뱀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 식구들은 뱀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또 이력이 붙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놀라지는 않는다 (옛날만큼 호들갑만 떨지 않는다는 말이지, 징그럽고 무섭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내가 겁이 많아서인지, 다른 건 잘 보지 못하면서도 유난히 뱀만큼은 잘 보는 것 같다.
예전에는 과수원에서 해마다 연례행사로 뱀을 한두 마리씩은 꼭 보곤 했는데, 집 앞 길가에 수로를 만들고 집 옆 소나무 밭쪽에 울타리 망을 치고부터는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뱀을 보지 못했다. 사실 어느 시골 치고 뱀 없는 곳은 없다.
특히 과수원에서 예초기로 풀을 깎다가 뱀을 발견하곤 한다. 예초기로 풀 깎는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 시끄러운 예초기 소리와 풀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 재빨리 도망을 치면 되는데, 왠지 떡하니 버티고 있다가 죽음을 당한다.
몇 년 전에도 예초기로 풀을 깎다가 무엇인가 색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독사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아마도 예초기 줄에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정확하게 줄에 맞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뱀은 보기에는 징그럽게 생겼어도 생각보다 쉽게 상처를 입는 것 같다.
뱀의 고통도 빨리 끝내주고 또 확실하게 보내버려야 안심이 될 터이니 (독사는 상처 입고 도망가면 꼭 돌아와서 복수를 한다는 전설(?)도 있다), 다시 한번 예초기 줄을 뱀에 갖다 대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예초기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던 모양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탁 소리가 나며 뱀이 튕겨나갔다. 그런데 너무 빨라 뱀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주위를 뱅뱅 돌며 찾아도 없고 혹시 날아가 나뭇가지에 걸린 건 아닌지 살펴보아도 없었다. 죽은 뱀을 찾아야 마음이 편한데,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니 오히려 영 찜찜했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때 고민 많이 했다.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해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해주면 과수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테고, 말 안 해주었다가 혹시 나뭇가지에 걸린 뱀을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바로 기절해버릴 텐데...
다행히 그 뱀은 멀리 날아가 버렸는지 우리 식구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난 한동안 과수원에 가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 나뭇가지 위를 힐끗거리곤 했다.
와이프에게 뱀 이야기해 주었냐고? 물론 아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