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 전 1986년도 영화 '마농의 샘'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영화는 1,2부로 나누어져 총 상영시간이 4시간이 넘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에는 샘물을 둘러싼, 삼대에 걸친 애증과 복수와 사랑이 담겨 있다.
물론 지금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내 글의 성격에 맞게 마농 가족이 시골로 내려와 정착하는 과정만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핵심을 빼먹은 이런 나의 단편적인 분석에, 아마도 영화 평론가들은 기가 막혀 쯧쯧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뭐 이런 시도도 때로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
농사에는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책에 쓰여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토마토를 북쪽 기슭에다 심었어. 열매가 달려도 익지 않을 거야. 병아리 콩도 작대기를 써서 너무 깊게 심었어, 한 접시도 수확하지 못할걸!" 비웃는 '세자르'의 말처럼 주인공인 '쟝'은 농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는 실전 경험도 없이 단지 책에 쓰여있는 내용만 가지고 농사를 짓겠다고 덤벼든다. 경험이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묻지도 않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다고, 일부 농사가 잘 되자 오히려 이웃에게 충고까지 하려 든다.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기후에 맞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농사는 예나 지금이나 물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런데 쟝은 날씨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날씨 통계 자료만 믿고 비가 올 거라고 예상하지만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는다. 기후는 변덕스럽고, 통계는 통계일 뿐이다.
그래서 물이 귀한 지역에서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을 심어선 안된다. "이 정도 비면 우리 집 포도나무에는 충분하지만 그 녀석 채소밭에는 부족하지"라고 세자르는 이야기한다. 역시 가뭄이 찾아오자 준비가 부족했던 쟝의 채소밭은 말라버린 밀밭처럼 되어버린다.
주민들과 어울리는 대신 고립을 택했다. 쟝이 정착한 곳은 바로 어머니 고향이지만 그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친구인 척하는 '위골랭'과는 친하게 지냈지만, 그 외의 주민들과는 결코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누가 이사를 오면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고 온 동네 사람들이 그를 주시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쟝의 가족을 지켜보고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한다. 시간이 지나자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그가 살고 있는 땅에 샘이 있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남의 일이라고 아무도 쟝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쟝이 마을 사람들에게 친근히 다가갔으면, 적어도 어느 한 명쯤은 그의 땅에 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면 전문가의 도움도 청해야 한다. 지식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혼자서는 해결할 수는 없다. 쟝은 책에 나온 대로 나뭇가지를 들고 지하수를 찾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그는 샘이 있는 곳을 지나치고, 엉뚱한 곳에서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바닥에 암석이 나오자 위험한 화약까지 사 온다. 그러다가 다이너마이트 폭발 때 튀어 오른 돌에 맞아 죽게 된다.
계획성 있는 지출을 해야 한다. 시골에 정착하려면 여유자금도 있어야 한다. 쟝은 삼 년 동안 버틸 자금이 있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하며 돈을 다 써버 린다. 한 해가 가기도 전에 빈털터리가 되어 땅을 담보로 빚마저 지게 된다. 귀농해서 수익이 나기도 전에 돈부터 떨어지면, 시골생활은 낭만이 아닌 비극이 시작된다.
농사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혼자서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말만 들어서도 안된다. 더구나 요즘 같아서는 하늘도 도와주어야 한다.
마농 가족이 지금의 우리 시골에 귀농한다고 해도, 아마도 영화 속에서와 같이 귀농에 실패했을 것 같다. 사람들 속에 부대끼며 산다는 것은, 시대나 장소에 무관하게 세상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만약 쟝이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 그의 땅에 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농사 경험과 도움을 받고, 더불어 자신이 책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귀농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귀농인으로, 시골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랬더라면 이 멋진 영화 '마농의 샘'이 탄생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