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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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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r 18. 2022

비닐하우스가 필요해

귀촌일기 중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비닐하우스다. 비닐하우스가 있어야 이른 봄에 모종을 만들 수 있고, 늦게까지 채소를 키울 수도 있다. 여름철에 고추를 말리는 것은 기본이고, 비가 오더라도 그 안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비닐하우스는 빨래를 말리기에도 딱 좋은 환경이니 아내도 수시로 애용하고 있다. 이렇게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니 집 짓고 나서 제일 먼저 만든 것이 비닐하우스였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비닐온실’을 만들었다. 

    

이 비닐온실은 외국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디자인을 흉내 내서 만들었다. 온실 위쪽에 작은 창문이 있는데, 여름철 위로 올라간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든 과학적인 구조이다. 온실 안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온실은 비닐이 아닌 유리나 폴리카보네이트(PC)로 씌어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홍보용으로 찍은 투명한 온실 안에는 한 여인이 작은 테이블 앞에 우아하게 앉아있었다.   

미국 온실을 흉내 내서 만든 우리 집 비닐하우스 (가로 2.4m 세로 4m)

처음 비닐하우스를 만들고는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와 비닐하우스 안에서 엎어놓은 사과박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했으니까. 우리 부부의 모습이 별로 우아해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그 당시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11월의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비닐하우스 안은 따뜻했고, 비 오는 날 비닐하우스에 앉아 있으면 시끄러운 빗소리에도 불구하고 아늑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넓은 집 놔두고 하필이면 비좁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왜 그토록 궁상을 떨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는 그런 게 낭만이었나?     


이 비닐온실은 원래의 취지에 맞게 채소도 재배하며 잘 사용했다. 그런데 바깥 살림살이가 점점 늘어나며 창고가 부족해졌다. 시골에서는 버릴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하다못해 금이 간 바가지조차도 언젠가는 필요한 법이다. 넘쳐나는 물건들을 넣어 둘 공간이 필요했고 창고를 지을 마땅한 장소를 찾기도 어려웠다. 부득이하게 온실을 농기구와 농자재를 넣어두는 창고로 용도를 변경해야 했다.  

   

그런데 온실 안에 햇빛이 비치니, 그 안에 넣어둔 수많은 플라스틱 제품들이 삭아버리기 시작했다. 시골의 햇빛은 무섭다. 거의 모든 물건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서는 삭아버린다. 그 두꺼운 하우스 비닐조차 2~3년을 버티지 못한다. 결국 멋있었던 온실은 검은 차광막을 뒤집어쓴 흉측한 창고로 변해버렸다.     


비닐하우스기 없어지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내 직업이 농부인데 봄마다 모종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해마다 모종을 만들려면 모판을 들고 집안을 들락거려야 했다. 늦게까지 채소를 재배하는 것은 포기한다 치더라도, 여름철에 고추를 말리는 일조차도 만만치가 않았다. 외출을 했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라도 몰려오면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치우러 급히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내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아내에게 선포를 했다. “아무래도 비닐하우스를 새로 만들어야겠어!”    

일반 비닐하우스 (사진출처: Pixabay)

흔히 볼 수 있는 농사용 비닐하우스는 반원형으로 된 파이프를 세우고 비닐을 씌운 구조다. 제작방법은 긴 파이프를 둥근 모양으로 휘어서 땅에 고정시켜 주고, 둥근 파이프가 쓰러지지 않도록 교차해서 긴 파이프를 묶어주면 된다. 설치공사는 간편하고 쉬운데 구조적으로는 좀 약해 보인다. 그리고 이 방법에는 더욱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먼저 길이가 10미터나 되는 긴 파이프를 둥글게 휘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장비 없이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둥글게 휜 파이프는 트럭에 싣고 이동할 수도 없다. 따라서 기술자가 장비를 갖고 현장으로 와서 작업해야 하는데, 따져보니 나에게 필요한 둥근 파이프는 19개뿐이다. 자칫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게 분명했다. 아예 전문가에게 설치까지 맡길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시간만 많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외국의 온실 (사진출처: Pixabay)

 차라리 나무(방부목)로 만들까? 나무로 만드는 것은 자신 있으니, 내가 직접 만들면 적어도 인건비는 절약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 봤는데 파이프로 만들거나 방부목으로 만들거나 자재비는 거의 엇비슷하게 나왔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방부목으로 비닐하우스를 만들기로 결정을 했다.     

방부목으로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데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우선 멋있다. 파이프로 만든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외국의 멋진 온실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도 많다. 유리를 끼울 수도 있고 튼튼하며 바람에 날아갈 일도 없다. 쇠파이프가 나무보다 튼튼하다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두꺼운 나무를 쓰니 파이프보다 더 튼튼하다.     

 

단점으로는 당연히 가격이 비싸다. 자재비는 비슷할지 몰라도 인건비는 파이프로 만드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든다. 나처럼 본인이 직접 만들게 아니라면 설치비가 많이 들어간다. 나중에 철거하기도 힘들고, 철거한 자재를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한 곳에 설치해서 오래 쓰는 거라면 문제가 없다. 혹시 썩을까 봐 걱정하실지도 모르지만, 처음 방부목으로 만들었던 우리 집 비닐하우스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멀쩡하다.

비닐하우스 내부 모습 (가로 4.6m 세로 9m로 예전보다 제법 커졌다)

그렇게 우리 집 두 번째 비닐하우스가 만들어졌다. 서까래를 붙일 때 지인이 와서 도와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아내와 둘이서 끝냈다. 집도 지었는데 그까짓 비닐하우스쯤이야! 다만 지면상 제작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나무로 만든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니 더욱 멋있는 것 같다. 더구나 비닐까지 씌우고 나니 큼직한 공간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만약 이 비닐하우스에 유리나 폴리카보네이트 (PC)를 씌웠더라면 외국 사이트에 있던 온실보다도 더 크고 멋진 온실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러려면 추가되는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차광막을 씌운 창고용 비닐하우스와(좌) 새로 만든 비닐하우스(우)

지금은 이 멋진 비닐하우스 안에서 청포도를 키우고, 한 겨울에는 채소도 키운다. 물론 빨래도 수시로 이곳에서 말리고 있다. 뒤늦게 고추 건조기를 사기는 했지만, 지금도 고추를 말릴 때면 하루 정도 고추건조기에서 찐 고추를 비닐하우스 안에 널어놓는다. 그러면 맑은 붉은색의 태양초가 된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 비닐하우스가 멋진 온실로 탈바꿈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남들처럼 온실 안에서 예쁜 꽃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농사는 때려치우고 예쁜 꽃이나 키우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엎어놓은 사과 박스 대신 작고 예쁜 테이블 앞에서, 우아하게 우리 부부가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집에는 나무로 만든 큼직하고도 예쁜 비닐하우스가 있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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