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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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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n 22. 2022

매운탕 맛이 죽여주거든!

귀촌일기 중에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예, 그런데 왜요?" "응, 매운탕 먹으러 가자고!" 올봄에 그 형님 댁에 있는 과수나무 전지를 해 드렸더니만, 언제 밥 한번 사 주어야겠다고 벼르고 계셨던 모양이다. 지난번에도 물어보셨는데 그때는 과수원 일로 바빠서 미루어야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 되어가니 다시 가자고 하시는 것 같다.  

  

그 형님은 은퇴할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직장에 다니신다. "이제는 쉬려고 하는데 회사에서는 자꾸 나오라고 하네!" 농담 섞인 엄살에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한다. "그래도 나와서 일하라고 할 때가 좋은 거죠!" "아직 힘도 있고 기술도 있으니까 회사에서 계속 나오라는 거지!"

     

그래도 우리 중에서 아직 직장도 다니시고 벌이도 제일 좋은 분이시니 매운탕을 얻어먹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아내까지 불러 함께 점심을 사주겠다고 하시는 데는 분명히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그 형님은 회사일 말고도 틈틈이 밭농사도 지으시고 과수도 키우신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밭농사는 잘 하시는데 과수는 방치해 놓고 사신다. 내가 그 형님 댁에 가서 과수나무 전지를 해 드린 것이 벌써 3년째이다. 해마다 전지를 해 드리면서 전지 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 드리건만, 배우려는 생각이 영 없으신 것 같다. ‘귀찮게 머리를 쓰느니 차라리 저 녀석 불러다 해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하시는 게 틀림없다. 그러자면 점심 한 끼라도 사줘야 내년에도 또 부탁하기 쉬울 테니까.     

사과가 호두알 만큼 자랐다. 사과는 일반 가정집에서는 키우기가 힘들다.

그 형님 집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병에 약한 나무들은 저절로 정리가 되었다. 방제를 거의 하지 못하는데 맛있는 복숭아나 자두나무가 집에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해마다 벌레들이 다 먹고, 집주인에게는 반쪽자리만 남겨주니까 말이다. 결국 많은 유실수들을 뽑혀버렸고, 지금 남아 있는 나무들은 매실, 체리, 대추, 포도와 같이 병충해에 강한 나무들뿐이다.  

   

그러나 과수 말고 밭농사는 규모가 우리 집의 몇 배는 되신다. 올해도 고구마를 20단이나 심었다고 하시니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노랑고구마를 심었는데 (품종이 무엇인지는 모르시고)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고 자랑을 하신다.      

대추는 키우기가 쉬운 편이다. 가을이 되면 커다란 대추가 주렁주렁 열린다.

매운탕을 먹으러 가기로 한 주말에 비가 왔다. "내가 알아 둔 집이 있어. 좀 멀기는 한데 매운탕 맛은 끝내주거든! 갈 때는 내가 운전할 테니 집에 올 때는 내 차를 좀 운전해 줄래?" 아무리 점심을 사주는 자리라지만 매운탕에 소주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냥 제 차로 가요. 제가 모시고 갔다 올게요."       

그렇게 비 오는 날 한 시간은 족히 달려서 맛이 끝내 준다는 매운탕 집을 찾아갔다. 허름한 시골집에 (원래 이런 집이 맛 집인 경우가 많기는 하다) 주방장 겸 사장인 장년의 남자 한 분과 오늘 처음 일하신다는 아르바이트생 아주머니 한 분만 계셨다. 

     

매운탕 맛은 몰라도 서비스는 엉망이었다. 비 오는 날이라 얼큰한 매운탕 생각이 간절한 분들이 많았나 보다. 먼저오신 손님 몇 팀이 계셨는데, 우리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또 준비해 놓은 밥이 없다고 반쯤 채워진 공깃밥 하나로 끝이었다. 더구나 그 밥마저도 늦게 나왔으니 찌개가 졸아 육수를 두 번이나 부어야 했다. 매운탕이 너무 짜져서 물만 몇 컵을 들이켰더니 배가 불러졌다.         

얼큰한 매운탕 사진. (사진출처: Pixabay)

그런데 그 형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끝내주는 맛'이라며 좋아하셨다. 찌개가? 아니면 소주가? 물론 비 오는 날씨에 둘 다 당기기는 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 형님이 맛없다고 하시는 음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원래 공짜로 얻어먹으면 다 맛있는 법인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더구나 밥도 없이 짜디짠 매운탕을 먹어야 했으니 정확하게 맛을 판단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공짜로 얻어먹었으니 나도 맛있는 체를 해야 했다. "맛있네요.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산전수전 다 겪은 지금은, 나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짓말도 잘한다.   

   

아무튼 맛은 그렇다 치고, 맛있는 매운탕을 사 주겠다고 일부러 이곳까지 우리 부부를 데려오신 형님의 마음이 고맙다. 아내는 식사 준비하지 않고 또 한 끼를 때웠다고 더 좋아한다.  

    

그까짓 전지 내년에도 또 해드리지 뭐! 그리고 내년에도 이곳으로 매운탕 먹으러 다시 오자고 해야겠다. 정말로 맛있는 매운탕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생각이다. 단 공깃밥 두 그릇을 먹으면서.

    

매운탕에는 공깃밥 두 그릇이 필수다. 더구나 나처럼 밥 힘으로 일하는 농사꾼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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