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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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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Aug 11. 2022

땅 노는 꼴을 못 본다

<귀촌 일기 중에서>

어쩌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지인들은 빽빽이 채워진 텃밭과 과수원을 보시고는 혀를 끌끌 차신다. “이 집은 빈 공간이 하나도 없네 그려!” 글쎄, 집 주위를 둘러보니 맞는 말씀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5년 넘게 이곳서 살아오면서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보이면 무엇이든 줄곧 심어왔으니 말이다. 아까운 땅을 왜 놀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내 주위에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만 살고 계신다. 그분들 모두 이제는 힘들어 농사도 못 짓겠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신다. 그런데 말씀과 다르게 정작 땅 노는 꼴은 못 참아하신다. 하다못해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될 논두렁마저도 콩을 심으신다. 그러고는 풀을 베랴 콩을 털랴 가뜩이나 휜 허리가 더 구부러지신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나 역시 그분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빈틈없이 꼭꼭 채워진 우리 집 텃밭

그런데 어디 농사꾼만 땅 욕심이 있나? 인간의 땅 욕심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지금까지 계속되는 수많은 전쟁도 결국은 남의 땅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던가? 대도시의 땅값이 계속 올라가는 것도, 작은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에 발생하는 일이다. 도시에서는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누구든 땅을 사면 제일 먼저 경계를 측량하고 울타리를 쌓아 내 영역을 표시한다.   

   

반면에 시골에서는 자로 잰 듯 내 땅을 찾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다 보니 내 땅이 대략 어디까지 일거라고 추측하는 정도다. 팔 것도 아닌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경계를 측량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뒤늦게 내 땅과 이웃집 땅의 경계가 뒤죽박죽인 것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별문제 없이 타협을 본다. 하지만 외지인이 시골 땅을 구입하게 되면 종종 경계 문제로 주민들과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전에는 측량술이 정확하지 못했으니 경계가 불분명했다 (출처: Pixabay)

내 주위에는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오신 분들이 계신다. 새로 터를 잡았으니 나무도 심고 텃밭도 만들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떻게 나무를 심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으니 이것저것 질문을 하신다. 심으려는 나무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알려드리는데, 유실수인 경우에는 특별히 강조해서 말씀드린다. “유실수는 특히나 널찍하니 간격을 띄어서 심으셔야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내 말대로 나무를 심는 사람은 한 분도 못 봤다. 아마도 회초리 같은 나무를 띄엄띄엄 심자니 땅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시나 보다. 어차피 본인 맘대로 심을 거면서 묻기는 왜 물어?     

 

그분들이 나무를 심는 방법은 대개가 비슷하다. 유실수를 울타리에 바짝 붙여서 심는 것은 기본이고 (그래야 내 땅을 넓게 쓸 수가 있으니까), 나무 간격도 촘촘하다. 또 심한 경사지에도 유실수를 심는다. 얼마나 알뜰하게 땅을 아끼는지 전문가가 따로 없다. 하지만 회초리 같은 나무도 몇 년이면 무성해진다. 경사지는 비만 오면 거름이 유실되고, 키가 큰 나무의 절반은 집 밖에 나가 있다. 더구나 가지가 울타리 너머로 뻗어있으면 방제를 하기도 어렵다.     


수로를 따라 위아래로 이런 갓길이 생겨났다

땅으로 인한 분쟁은 주인이 분명한 땅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시골에서는 하천부지나 도로 옆 갓길 등 국유지가 많은데, 이런 땅은 먼저 사용한 사람이 임자다. 또 먼저 찜한 사람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해마다 그 권리는 자동 승계된다. 뒤늦게 다른 사람이 그 땅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시골에서는 불문율처럼 되어있다.     


몇 년 전 우리 집 앞 넓은 언덕에 인삼밭을 만들고 나서, 비만 오면 언덕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폭우가 오면 동네 도로가 온통 진흙으로 뒤덮였으니 읍사무소 직원들까지 동원되어 치워야 했다. 요즘 비는 왔다 하면 폭우인 것 같다. 바로 다음 해에 없는 예산도 긁어모아 우리 집 앞에 큼직한 수로를 만들어 주었다.    

  

수로공사가 끝나자 갓길이 새로 생겨났다. 수로를 따라 폭이 1미터밖에 안 되는 좁은 흙길이지만 전체 길이는 100미터가 넘는 땅이다. 공짜로 생긴 이 땅에 동네 분들이 침을 흘리셨던 것 같다.    

  

그 수로가 바로 우리 집 앞이고, 그동안 동네 분들과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인지 옆집 아저씨께서 우리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셨다. “그 땅을 사용할 건가? 옥수수라도 심지 그래?” “아뇨, 과수원 관리하기도 벅차서 그 땅까지 농사지을 겨를이 없어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갓길은 반반씩 나뉘었고, 윗집과 아랫집 아저씨께 사용권이 넘어갔다.     


아래쪽 갓길에는 올해도 옥수수를 심으셨다

첫 해에 우리 집 대문 아래쪽 갓길에는 아랫집 아저씨께서 호박과 옥수수를 심으셨고 윗집에서는 고구마와 돼지감자를 심으셨다. 당연히 한번 부여된 이 권한은 본인이 포기하지 않는 한, 해마다 자동 승계될 것이다. 그런데 두 분 모두 몇 천 평이나 되는 땅을 갖고 계신다. 그 넓은 땅에 지금도 농사짓기 힘들어하시면서...     

 

그분들 아니면 어차피 온갖 잡초로 엉망이 되어버릴 땅이므로 나로서는 오히려 다행인 셈이다. 또 어찌 됐든 농사를 짓는 것이니 우리나라 식량 자급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위쪽 갓길에는 아직까지 풀만 무성하다

수로 옆 갓길에 농사를 지으신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우리 집 아래쪽 갓길에는 올해도 아저씨께서 옥수수를 심으셨다. 연세가 70대 초반이니 아직 힘이 넘치시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힘들어 농사짓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달고 사시지만.   

  

그런데 우리 집 위쪽 갓길에는 아직까지 풀만 무성하다. 지금쯤이면 고구마든 옥수수든 심으셨어야 하는데 올해는 어째 조용하기만 하다. 이젠 농사짓기에 힘이 부치시나? 하긴 연세가 80대 중반이시니 농사를 그만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시다.     


두 분에 비하면 아직 힘이 펄펄 넘치는 나는 올해도 죽은 대추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아직까지 빈 공간을 찾아 밭을 만드는 걸 보면 난 아직도 청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혹시 나도 땅 노는 꼴을 못 보는 농사꾼이 이미 되어버린 거 아냐?     


머지않아 그분들을 대신해서 누군가는 우리 집 앞 갓길에서 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옥수수를 심으시던 꾸부정한 아랫집 아저씨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내가 보이는지 모르겠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나 역시 서서히 그 길로 빠져들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절대로!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는 듯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그까짓 노는 땅이 뭐가 아깝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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