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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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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n 03. 2022

나는 바닷물을 뜨러 동해안으로 간다

귀촌일기 중에서

나는 일 년에 몇 차례 텃밭과 과수원에 바닷물을 뿌려준다. 물론 바닷물을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물에 희석해서 뿌려준다. 그냥 주면 삼투압 작용으로 농작물이 말라죽는다. 희석 비율은 나무는 30배, 채소는 40배가 적당한데, 진하게 한번 주는 것보다는 묽게 여러 번에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40배는 물 40에 바닷물 1의 비율을 의미한다).


바닷물을 뿌려주는 이유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온갖 미네랄 때문이다. 비료를 주며 농사를 짓다 보면 땅 속에 있던 미네랄이 고갈되기 마련인데, 미네랄이 부족하면 비료를 주더라도 충분히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미네랄을 땅에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미네랄제는 한 두 푼이 아니니 쉽게 구입하기도 어렵다.


바닷물을 밭에 뿌려주는 이 해수농법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자연농업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되었다. 어쨌든 바닷물을 뿌려주면 과수의 당도가 높아지고 병충해 예방도 된다고 하니, 굳이 좋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우리 부부에게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바닷물을 떠 온다는 명분 하에 바닷가로 놀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안. 바닷물이 보여도 막상 물을 길어 나르려면 쉽지가 않다.

우리 부부는 일 년에 두세 차례는 꼭 바닷가에 가곤 한다. 바닷물을 뜨러 동해안에도 가고 서해안에도 가봤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미네랄 함유량이 제일 높은 곳이 전라남도 지역의 해수라고 하는데 아마도 갯벌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남해안은 거리가 너무 멀고, 서해안은 바닷물을 뜨기가 쉽지가 않다. 보통 20리터짜리 물통 10개는 가져가는데, 멀찌감치 차를 세워놓고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더욱이 서해안은 물때를 잘못 맞추면 멀리서 바다 구경만 하고 온다.

     

한동안 물 뜨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최적의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주문진항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해안가다. 그곳은 밀물 썰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방파제가 있어 파도가 치는 날씨에도 잔잔하다. 더구나 차를 바로 옆에 세워놓고 바닷물을 뜰 수 있으니, 그곳을 알고부터는 그리로만 간다.   

동해안. 바로 차 옆에서 바닷물을 뜰 수가 있다.

바닷물을 뜨는데 옆에서 낚시하던 분들이 궁금해하신다. "김장철도 아닌데 바닷물은 뭐 하러 뜨세요?" 배추를 절이기 위해 바닷물을 퍼가는 사람도 있나 보다. "과수원에 뿌려 주려고요. 바닷물 뿌려주면 당도도 높아지고 병도 잘 안 온대요." “그래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떡거리기는 했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눈치다. 아마도 소금물에 절어 축 늘어진 배추가 떠오르시나 보다.  

   

하지만 바닷물이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바닷물이 없으면 천일염을 물에 타서 뿌려준다는 분도 계시니까. 하지만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부부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바닷가에 놀러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동안 나는 비료 대신 집에서 만든 다양한 농자재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농자재에는 게 껍질로 만든 키토산 액비도 있고, 어린 사과로 만든 효소, 골분 액비, 청어 액비 등 거의 10여 가지나 된다. 바닷물도 그들 중의 하나다. 물론 이런 농자재를 직접 만들려면 비용이야 몇 푼 안될지 몰라도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의욕이 얼마나 넘쳐 났는지 힘든 줄도 모르고 농자재를 만들어댔다. 지금도 예전에 만들어 놓은 농자재가 창고에 가득하니까.     

미생물 활성수. BMW의 B는 박테리아, M은 미네랄, W는 워터를 의미한다.

올봄에 과수원에 뿌려줄 화상병 방제용 이엠(EM: 미생물제)을 받으러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 직원 분이 말씀하셨다. “이엠(EM) 뿐만이 아니라 다른 농자재도 무상으로 나눠드리고 있어요.”라며 소개 자료를 보여주셨다. 그 자료에는 이엠 이외에도 아미노산, 인산칼슘, 그리고 미생물 활성수가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내가 예전에 어렵게 배워 만든 농자재를 기술센터에서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진즉에 만들어주었더라면 그동안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아쉽기는 해도 지금이라도 만들어주니 감사할 일이다. 내가 써봐서 아는데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인데), 이들 농자재의 효능은 일반 비료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들 액비를 뿌려주면 반응속도도 빠르고 맛도 달라진다.   

 

그런데 미생물 활성수는 뭐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자료를 들여다보니 바로 미생물과 미네랄을 섞어놓은 물이라고 한다. 미네랄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미생물 활성수에 미네랄이 들어있대!” 내 감격하는 소리에 아내가 무슨 말인지 쳐다봤다. 그래서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주었다. “공짜로 미네랄을 구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굳이 바닷물 뜨러 동해안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내 들뜬 모습과는 달리 아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이젠 바닷물 뜨러 가서 싱싱한 회 먹기는 다 틀렸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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