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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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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Feb 09. 2023

내 인건비 따지면 농사짓지 못한다

귀촌 일기 중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과연 작년 농사는 어떠했는지 결산을 해보려 한다. "혹시 농사지어 돈 많이 버셨나요?" 물론 내 주위에 농사지어 돈 벌었다는 사람은 한 분도 못 봤다. 세금이 무서워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못 벌어서다.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경우가 아니라면, 농사 지어서는 최저 생계비를 벌기도 힘든 게 농촌의 현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다. 아무리 농업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농사의 흥패는 날씨가 좌우하기 마련이다. 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스마트 팜도 만들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농사는 노지에서 짓는다. 내가 농사를 처음 시작하던 17년 전만 하더라도 농사를 망칠 정도의 기상이변은 별로 없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기상이변이 아닌 해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른 봄 냉해로 꽃 눈이 얼어 죽고, 벌들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사과가 익어갈 9월 내내 늦장마가 온 적도 있다. 작년만 해도 텃밭작물은 그럭저럭 평년작은 되었지만 자급용이니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주 수입원인 사과농사는 별로였다.

      

그래도 우리 집은 망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바로 옆 동네는 작년 초반부터 농사가 완전히 망가졌다. 6월 말에 갑작스럽게 우박이 옆 동네를 쓸고 지나갔다. “우박에 찢겨 멀쩡한 사과가 하나도 없어!” 사과농사를 짓고 계신 형님이 한숨을 지으며 하신 말씀이다. 과연 TV에서는 부러진 고춧대며 하얗게 쌓인 우박이 방송되었다.

     

우박에 찢긴 사과는 상처부위가 쉽게 썩어버린다. 설사 상처가 아물더라도 곰보가 되니 상품성이 떨어지고 제값을 받을 수도 없다. 농사로 먹고 살기에는 애초에 틀려버린 셈이니, 이제 부부 중 한 사람은 돈 벌러 나가야 한다.   

    

빨갛게 익은 사과들. 9월에 비가 자주 온 탓인지 굵은 사과가 별로 없다.

농한기인 겨울이 되니 찾아오는 지인들이 많다. 은퇴 후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시다. 그분들은 시골 살이에 대한 경험뿐만 아니라, 과연 텃밭 농사지어 얼마나 벌 수 있는지도 궁금해하신다. 젊은 나이도 아니니 전문적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고, 나처럼 힘이 닿는 만큼만 소규모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어 하신다.  

    

나 역시 처음에는 큰 규모의 농사는 자신이 없었고, 소규모로 농사를 지으며 용돈이라도 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텃밭농사 지어서는 일 년에 몇 백만 원 버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농가당 평균 농지면적은 5천 평 정도라고 하는데, 순수한 농업소득은 연간 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2020년 정부 발표 자료임). 또 농업인 절반 정도는 1500평 이하의 소규모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면적이 작은 만큼 소득은 더 줄어든다.   

   

소득을 올리려면 대규모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업농이 되어야 한다. 그나마 시설재배를 하면 소득이 낫다지만 투자비가 들고, 투자를 한다고 해도 소득이 계속 보장된다는 법도 없다. 특용작물은 잠시 반짝할 수는 있지만 유행을 탄다. 내가 처음에 아로니아를 심었다가 몇 년 만에 다 뽑아버린 것처럼. 이런 형편이니 조그마한 땅뙈기에 농사를 지어서는 용돈을 벌기도 어렵다.

     

텃밭에 자라는 쌈 채소는 우리 집 밥상을 풍성하게 해 준다.

사과를 판매한 금액에서 한 해 동안 들어간 농자재 비용을 제외했더니 남은 금액이 별로 없다. 우리 집은 우리 부부의 힘만으로 농사를 지으므로 남들처럼 인건비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득이 얼마라고 밝힐 수가 없을 정도다. 그나마 밑지지 않고 몇 푼이라도 남은 게 다행이다. 

  

아마도 이런 나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이다. 특히 농사를 직접 지어본 경험이 없으신 경우에는. 그렇지만 귀촌하여 소규모로 텃밭 농사를 짓는 분들 대부분은 나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나는 밭작물보다는 소득이 월등히 높다는 과수원을 가꾸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내 인건비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직장 다닐 때, 내 하루 인건비가 얼마였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농사는 끝이다. 어차피 돈 생각하고는 농사짓지 못한다. 그런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십여 년째 계속 농사를 짓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수확한 비트. 양이 많지는 않아도 우리 식구 자급용으로는 충분하다.

우리 식구는 먹는 것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산다. 비싼 돈 주고는 사 먹지 못해도 직접 키워서는 먹는다. 빨갛게 익은 사과며 복숭아, 자두, 포도, 대추 등 우리 집에는 온갖 종류의 과일이 때가 되면 주렁주렁 열린다. 우리 집에 없는 과일은 이웃과 바꿔 먹기도 한다. 이렇게 직접 키운 건강한 채소와 과일은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건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에서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 흙냄새를 맡고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을 보면 피로가 싹 사라지고 생기가 돋는다. 흙을 만지면 마음이 편해진다. 몸을 움직이며 땀 흘려 일하고, 퇴직이란 것도 없이 내가 원하는 만큼 언제까지고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 더구나 내가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을 수확할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것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만족감이 아니다. 그래서 매번 돈벌이도 안 되는 농사를 그만두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솔직히 농사를 그만둘 마음은 조금도 없다. 

    

작년은 날씨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고 핑계를 대지만, 그렇다고 올해라고 소득이 딱히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작은 규모의 텃밭농사를 짓고 있으니 한계가 있다. 더구나 해마다 날씨는 더욱 변덕스럽게 변해가고 있으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도 없다. 그래서 돈 보고 짓는 농사가 아니라고 위안을 삼지만, 취미생활로 치부하기에는 농사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끝으로 내가 과장해서 말하는 것 같으면 솔직하게 한번 계산해 보시기를... 


올해 농사지어 얼마나 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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