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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Sep 08. 2020

도시 농업 - 텃밭의 화단을 무엇으로 만들까?

방부목으로 화단을 만들어도 된다고 한다

텃밭농사를 지으며 제일 힘든 일을 꼽는다면 아마도 제초작업일 것이다. 깎고 돌아서면 어느새 다시 자라 있는 게 풀이다. 그 풀이 무서워 요즘은 누구나 밭에 비닐을 씌우고 농사를 짓지만, 비닐이 귀하던 시절에는 다들 호미 하나 들고 김을 매었다고 한다. 그러니 예전의 풀 뽑던 악몽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지금도 농사라면 다들 고개를 저으시나 보다.  


밭이랑이야 비닐을 씌우면 된다지만, 풀은 밭고랑 (이랑과 이랑 사이의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서도 자란다. 이 풀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은 제초제를 뿌리기도 하고, 아예 잡초 매트로 덮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히 밭은 밭인데 흙 구경을 할 수 없는 밭도 많다. 하지만 아직도 직접 호미를 들고 풀을 뽑는 분들도 계시다.    


나도 처음에는 호미를 들고 고랑에 난 풀을 뽑아주었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 아래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해 본 사람만이 안다. 풀을 뽑다 문득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호미로 풀 뽑는 건 포기했고, 줄 예초기로 풀을 깎기 시작했는데 이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밭이랑에 비닐을 씌웠으니, 조금만 방심하면 비닐이 예초기 줄에 찢어지곤 했다. 


쿠바의 도시농업과 화단(Raised bed)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쿠바의 도시 농업에 관한 책에서 Raised bed ('테두리 있는 화단'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쿠바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더구나 미국의 경제봉쇄로 식량마저 부족해진다. 그 당시 쿠바의 대규모 농장은 대부분 돈벌이를 위해 사탕수수만을 재배하고 있었고, 석유의 부족으로 농촌과 도시 간 농산물의 이동조차 원활하지가 않았다고 한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도시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거리는 온통 아스팔트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폐자재를 이용하여 화단 (Raised bed)을 만들고 그 안에 흙을 넣어 농산물을 생산하는 거였다. 대부분의 농작물은 흙의 깊이가 30cm만 되면 충분히 키울 수 있다고 하니, 아스팔트 위에서도 화단을 만들기만 하면 농산물 재배가 가능한 셈이다. 또 비료도 부족하니 지렁이를 키워 지렁이 분변토를 비료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그 경험으로 인해 지금도 쿠바의 도시농업과 유기농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양옆이 벽돌로 되어 있으니 예초기로 고랑의 풀을 깎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단 쇠 날은 안되고 줄 날을 써야 한다.

이렇게 화단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면 화단 속의 흙은 밟지 않으니 부드러워지고, 비가 와도 흙이나 거름이 유실되지도 않는다. 


물론 초기 비용은 조금 들겠지만 확실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방법이다. 그래서인지 주말농장이나 옥상텃밭과 같이 도시농업을 하는 곳에서는 누구나 화단부터 만드는 것 같다.


이에 추가해서 나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장점을 발견했으니, 바로 화단을 만들면 꽈배기 끈 예초기로 쉽게 풀을 깎을 수 있다는 점이다. 풀만 쉽게 잡을 수 있어도 농사일의 절반은 끝낸 셈이다. 


화단을 만드니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았던 것 같다. 지나가던 트럭이 갑자기 섰다. "여기에 뭐 심으실 거예요?" "글쎄, 여기는 땅콩 하고 고추 심을 자린데요..." "아! 난 무슨 연구하시는 줄 알았네." 줄 맞춰 화단을 만들어 놓으니 이곳이 무슨 농업 실습장처럼 보였나 보다. 


그러면 화단은 어떤 자재로 만들면 좋을까? 


화단을 만들 자재는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하지만 인체에도 무해하고, 또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집 화단은 지난 10여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화를 거듭했다.


10여 년 전에 만든 시멘트 벽돌 화단. 아직까지도 쓸만하다.

맨 처음에는 얇은 나무판자를 얻어와서 화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자 나무는 썩어버렸다. 


그다음 해에, 절대로 썩지 않는 자재인 시멘트 벽돌을 쌓아서 화단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쪼그리고 앉아 반죽한 시멘트를 바르며 벽돌을 쌓았다. 


10여 년 전에 만든 시멘트 벽돌 화단이 아직도 튼튼한 것을 보면 꽤 쓸만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짓도 아무것도 모르던 젊은 시절에나 하는 거지, 이제는 다시 하라고 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힘든 방법이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특히 쪼그리고 앉아하는 일이 어렵다).


좀 더 쉽게 화단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4인치 두께의 시멘트 블록을 쌓아본 적도 있는데 그 방법은 좀 폼이 나지 않는다. 시멘트를 바르지 않고 쌓다 보니 봄에 얼었던 땅이 녹으면 줄이 삐뚤어진다. 또 블록의 뚫어진 구멍으로 잡초도 나온다. 너무 볼품이 없어 지금은 다 철거해 버렸다.

        

아무래도 제일 쉬운 방법은 방부목으로 만드는 것인데, 방부목은 몸에 좋지 않다고 하니 망설여졌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문득 텃밭 하면 무조건 화단부터 만드는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을 찾았다.      


'요즘 판매하는 방부목은 화단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방부목에 CCA란 마크가 찍혀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표시는 방부목을 만들 때 비소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나라에서 CCA 방부목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 한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CCA 방부목 판매를 금지했는데, 그 당시 자재상에서 남은 재고를 헐값으로 판매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ACQ라는 방부목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ACQ는 방부제로 구리 성분을 이용한 것으로, 나름대로 친환경적으로 만든 제품이다.  

                                                                                           

'방부목을 사용하여 만든 화단에서 채소를 키워도 안전할까?' 답은 'ACQ 방부목은 안전하다'이다. (출처: Google)

                                                   

설명인즉, ACQ 방부목은 독성이 적고 몸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방부제 성분을 식물이 흡수할 수는 있겠지만, 시험 결과 그 양이 너무 작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천연 방부효과가 있는 삼목 계통의 나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참 기가 막혀서! 삼목이 얼마나 비싼지 가격을 알고나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삼목은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다.     

                                                         

아무튼 ACQ 방부목으로는 화단을 만들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희망이 보인다. 나무를 사용하면 화단 틀을 만드는 것쯤은 정말 식은 죽 먹기다. 벽돌을 쌓으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을 고생해야 하지만, 나무로는 반나절 만에도 만들 수가 있다.    

    

우리 집 텃밭에서는 온갖 종류의 자급용 채소들이 자란다. 방부목으로 화단을 만들었다.


방부목을 사용하면 혹시 수명이 너무 짧지는 않을까 고민하실지도 모르지만, ACQ 방부목은 평균 10년 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집에 있는, 만든 지 10년이 넘은 방부목 비닐하우스도 아직까지 멀쩡하다. 가격은 운송비 제외하고 비교할 때 방부목이 시멘트 벽돌보다는 약간 비싼 것 같다. 물론 힘 있고, 젊고, 끈기 있는 분들은 예전의 나처럼 시멘트 벽돌로 쌓는 것도 좋다. 벽돌은 사용연한도 없다. 


텃밭 규모가 작으면 농기계를 구입하기도 애매하고, 경운 비용을 지불한다고 해도 작은 밭은 쉽게 갈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두 번도 아니고 해마다 삽 하나 달랑 들고 밭을 갈기에는 너무 크다. 그런 분들에게는 화단이 대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농사 규모가 크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농기계를 사용하기가 어려워 비효율적일 테지만 말이다. 


우리 집 텃밭의 화단은 해마다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데, 지금은 화단 하면 무조건 방부목으로만 만든다. 작년에 일부 뽑아버린 아로니아 밭에도 방부목을 사용하여 화단을 만들었다. 내가 없는 살림에도 굳이 돈 들여가며 화단을 만들려는 이유는, 돈 들인 만큼 충분한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집 화단의 흙들은 말할 수 없이 비옥해졌고 또 부드러워졌다. 올해 긴 장마로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어도 물 빠짐도 좋아 작물들이 생생하게 잘 자라주었다. 또 밭을 갈아줄 필요가 없으므로 올해 김장밭 만드는 데도 반나절만에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쉽게 풀을 깎을 수 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 작은 규모의 텃밭을 가진 분이라면, 화단은 누구든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방법인 것 같다. 어차피 한 두해 농사짓고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쿠바의 도시농업 사진출처>

https://www.alamy.com/stock-photo-people-working-at-organiponico-la-sazon-urban-farm-havana-cuba-153708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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