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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n 23. 2020

우리 집 마늘이 더 굵은 것 같은데?

텃밭 농사짓기

오랜만에 옆 동네에 사시는 형님들이 놀러 오셨다. 내가 만든 비닐하우스도 구경하고, 우리 집 텃밭 상황도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한 바퀴 쭉 둘러보시는데, 반응이 영 시원치가 않다. 우리 집 텃밭은 아직도 작은 모종들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5월이 되어 뒤늦게 농작물을 심었으니 어쩌랴!     


비닐하우스에 대해서는 그나마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왜 파이프로 만들지 않고?" "어차피 같은 비용이라 나무로 만들었어요. 또 나무로는 제가 직접 만들 수도 있어서요."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시고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기껏 포도나무 두 그루 심자고 저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단 말이야?" "아니, 이게 다 심은 거야?" 사실 빈 공간이 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아직까지 저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구상 중이니까.     


"포도나무가 커지면 그늘이 생겨서 다른 건 못 심어요." 대답은 했지만, 언제나 포도나무가 커서 그늘이 생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빈 공간이 저렇게나 많으니, 농사꾼이라면 당연히 기가 막힐 노릇이긴 하다.     


빈 곳이 좀 많긴 하다. 그러니 놀고 있는 땅이 아까울 만도 하다. 내가 보기에도 조금은 아깝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직 우리 집 텃밭에 심은 모종들도 꼴이 영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고추도 우리 집 고추가 훨씬 더 큰 것 같은데?" "모종을 5월 초에 심어서 아직 작아요". 


아니 이게 뭐야.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다니...  당연히 모종을 일찍 심은 분들과는 크기에서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야 모종을 심은 지 아직 2주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제야 모종들이 겨우 뿌리를 내리고 있을 터였다.     

     

"어? 토마토도 아직 작네". 우리 집 보다 본인들 모종이 더 크다고, 좋아하시는 것 같다. "하우스 안에 심은 것은 커요" 내가 보기에도 밖에 심은 접목 토마토는 아직까지도 비실거리고 있다. 비싼 돈 주고 구입했는데 밥값도 못하는 것 같다. 반면에 하우스 안에 심은 싸구려 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볏짚 때문에 그런가? 나중에 날짜를 비교해보니,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토마토는 9일이나 빨리 심었다. 아! 그래서 크구나. 하루 땡볕이 어딘데...     

     

접목 토마토 (좌)와 하우스에 심은 일반 토마토 (우). 빨리 심은 만큼 빨리 자라는 게 당연하다.


 "혹시 올해 모종 죽은 건 없으세요?" 심하지는 않았지만, 올해도 우리 동네에는 냉해가 왔었다. "옥수수가 좀 죽었고, 오이도 좀 피해를 입은 것 같아". 그럼 그렇지. 빨리 모종을 심으면 빨리 자라는 대신에, 그에 따른  대가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늘 밭 앞에 오게 되었다. 그때 농사 제일 못 짓기로 소문난, 초짜 농부이신 형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집 마늘이 이것보다는 더 굵은 것 같은데?"  다른 형님이 말씀하셨다. "올해 우리 집 마늘은 아주 잘 되었어. 마늘 대가 벌써 손가락 굵기야."    

  

마늘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이것은 모종이 아닌 수확할 때가 가까워진 작물 얘기다. 그동안 물도 자주 주고, 인산칼슘과 키토산 액비도 주었건만, 아직도 마늘 대가 굵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아! 이 모든 것이 다 종자 탓이다. 부실한 종자가 내 자존심마저도 갉아먹고 있다. 너무 작은 종자를 심었으니 싹도 겨우 텄고, 어렸을 때부터 영양이 부실하니 지금까지도 남들처럼 마늘 대가 굵어지지 못하고 있는 거다. 농작물은 재배 환경도 중요하지만 종자의 역할도 매우 커 보인다.   

  

그런데 남자들이란 나이 먹어도 똑같은가 보다. 아닌척하면서 은근히 상대방과 비교를 한다. 때로는 내가 와이프 잔소리 들어가면서도 큰 배추 만들려고 목숨 거는 것과 같은 이유다. "당신은 평생 농사짓고도, 수확량이 매번 왜 저 집만도 못해요?" 집에서 이런 소리를 들은 형님도 있다고 하니,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얄미웠을 수도 있다. 그러니 대놓고는 말하지 못해도 억지로 웃음을 참아가며 행복해하시는 것 같다.  

   

올해는 우리 집 텃밭이 영 초라해 보이니 모두들 으쓱대며 집으로 돌아가셨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집에 가서는 큰소리치시겠지. "저 집 마늘은 아직 회초리 수준이야"라고.  

    

가을에 두고 보라지! 그런데 정작 나는 기분 나빠서, 앞으로는 저 형님들과 같이 놀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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