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도 틀렸다
A가 긴 겨울 휴가를 다녀와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은근히 자랑을 했다. '이번에 프랑스로 휴가 갔을 때 앤틱 가구 파는 곳에 구경을 갔는데, 공짜로 배송도 해주고 관세도 내준다고 해서 의자 몇 개를 구입했어. 역시 프랑스 앤틱 제품이 우아하고 멋있는 것 같아!' 함께 식사를 하던 B가 말했다. '전 지금도 가진 게 너무 많아 매일 버리며 사는데요.'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우스개 이야기가 아니고, 예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다.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B처럼 대놓고 말을 하는 성격도 못 되었지만, 그렇다고 A의 자랑에 동조해 줄 마음도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프랑스 앤틱 제품에 관심도 없었고, 또 가진 것도 별로 없어 버릴 것도 없었다. 분명히 같은 직장에서 다니고 있었지만 서로가 속해있는 세계는 너무도 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나도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버리며 살고 있다.
이제 남은 내 물건이라고 해 봤자, 작은 서랍 하나에 들어있는 것이 전부다. 예전에 쓰던 만년필, 골동품적 가치만 있는 공학 계산기, 예전에 아버님이 쓰시던 라이터, 그리고 오래된 일기장 몇 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들도 언젠가는 버려야 할 물건들이다.
옷장을 열어봐도 남아있는 옷도 별로 없다 (옷은 몸이 불어나서 버리긴 했다). 책도 한 권을 사면 다른 한 권을 버린다. 집에서 쓰는 물건들도 가급적이면 최소한으로만 남겨두려 한다. 다행히도 이렇게 버리며 사는 것에 대해서 아내와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산다고 해서 우리 부부가 미니멀리스트 (Minimalist)는 분명히 아니다.
오랫동안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던 우리 부부가 문명의 혜택을 하루아침에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시골에 산다지만 우리 집이 '자연인'에 나오는 것처럼 깊은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부부가 세상을 등지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지금도 이따금 신제품을 사기도 한다. '죽은 고구마도 살린다'는 지인의 말에 현혹되어 '에어 프라이어'를 구입했는데 지금은 주방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제품이 되었다. 더구나 긴 겨울밤에 에어 프라이어로 고구마를 구워 먹을 때의 맛이란... 버리며 사는 것도 좋지만 이런 작은 행복감마저 포기할 마음은 없다.
아내는 세탁기 없이는 못 산다고 한다. 하루에 세 번씩 땀에 젖은 옷을 벗어놓으니 손빨래 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또 요즘 같은 날씨에는 시골에서도 에어컨 없이는 살기 힘들고, 냉장고도 있어야 한다. 이들 제품들은 이미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집을 가더라도 볼 수 있는, 거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TV도 우리 집에는 없다.
물론 예외도 있다. 분명히 집안 살림은 줄어드는데, 집 밖 창고에 들어있는 농자재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골에서 살면 깨진 바가지도 쓸모가 있다고, 쓰다 남은 다양한 자재들을 버릴 수는 없다. 내년이면 또 써야 하니까. 작년에 쓰고 남은 사과 담는 종이박스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난좌도 크기별로 있으니 큰 묶음이 십여 개는 된다. 올해도 사과를 포장하려면 어차피 필요한 물건들이다.
고추 지지대도 수백 개는 되고, 과수원에 사용하는 쇠 파이프도 잔뜩 쌓여있다. 농기구도 종류별로 갖추어져 있다. 삽 하나 달랑 들고 농사를 지을 수는 없으니 용도별로 다양한 농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분명히 버릴 물건이 있을 것이다. 보관하자니 짐이 되고, 없으면 당장 아쉬운 애증의 물건들! 어쩌면 내가 농사를 짓는 한, 저 많은 잡동사니들을 숙명처럼 데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진 것이 적으면 분명히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아끼던 것을 남에게 주어버렸을 때, 서운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움도 느낀다.
우리 집은 대문이란 건 아예 없고 현관문도 열어놓고 산다. 물론 시골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설사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고 한들, 보이는 건 내가 만든 가구나 소품들 뿐이다. 나에게는 소중할지 몰라도 돈 되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만약 집에 불이라도 난다면, 어떤 물건을 먼저 챙겨야 할지 아내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챙겨야 할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금붙이도 금융위기를 겪으며 다 팔아버렸으니까. 그러니 지인들과 연락이 끊기지 않으려면 휴대폰만 챙기면 될 것 같다. 요즘은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2~3개도 안 된다.
지난 10여 년을 살아오면서 우리 집 살림살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처음 시골로 내려올 때는 온 집안이 살림살이들로 가득 차서 비좁았는데, 지금은 빈 공간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없으면 큰일 날줄 알았던 물건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틀린 것 같다. 아직까지도 지독하게 검약한 생활보다는 작더라도 소소한 행복을 원한다. 또 많지는 않더라도 몇몇 물건들은 앞으로도 계속 지니고 싶다. 하지만 프랑스 앤틱 의자처럼 우아하고 멋있는 물건은, 한 번도 우리 집에 어울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필요할 것 같지가 않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단지 25개의 물건만으로도 불편 없이 살아간다고 한다. 꼭 그들처럼 살 필요야 없겠지만,
누구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어찌 보면 지난 10여 년간 우리 집에 일어난 더 큰 변화는, 줄어든 살림살이가 아니라 바로 변화된 우리 부부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지나치리만큼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버리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나는 매일 버리며 산다.
<사진 출처>
첫 번째 사진: getty images
두 번째 사진: 루이 15세 의자 <https://foter.com/french-louis-xv-chai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