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반마리를 샀다

딱 반으로 자른 돼지 반마리를!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시골로 이사온지 몇 년이 지나지도 않아서 우리 동네에 공장이 들어온다고 시끄러워졌다. 우리 동네 이름은 '상전(桑田)'으로 예전에 누에를 기르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원래 마을 전체가 뽕나무 밭인지라 면적은 넓은데 (12만 평이라고 한다) 살고 있는 가구는 15집뿐이었으니, 어쩌면 공장이 들어서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 마을의 절반 이상이 공장 부지로 팔리면서 몇 집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우리 동네도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한 집은 자그마한 돼지 농장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번에 돼지 농장도 공장 부지로 팔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돼지 농장이 팔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를 포함해서 마을 주민들도 은근히 좋아했던 것 같다.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마을 주민들이 모두 친하게 지내고 있었으므로 이사 가기 전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돼지를 키우던 분은, 새로 이사 갈 곳의 축사가 완성되지 않아서 남은 돼지들을 처분해야 한다고 했다. 그 돼지들은 멧돼지와 교배한 품종으로 맛도 좋고, 만약 동네 사람들이 사겠다면 싼값으로 돼지를 넘기겠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이 "그러면 우리가 사서 먹지!"라고 하셨다. 마트에서 포장된 고기만 사 먹던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돼지를 사면 어떻게 잡아요?"라고 물었더니 요즘은 도축장에서 알아서 다 잡아준다고 한다. 그리고는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겨울에는 처마 끝에 돼지 뒷다리를 매달아놓고 칼로 쑥쑥 베어다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도 되고, 구워 먹어도 좋아!"


처마 끝에 매달아놓고 고기를 쑥쑥 베어다 먹는다는 것이 왠지 운치가 있어 보였는데, 이런 것이 바로 시골 사는 맛이구나 했다. "역시 시골로 이사 오기를 잘했어. 시골에 사니까 이런 기회도 생기는 거야!" 그래서 우리 집도 돼지를 사기로 했는데, 문제는 사람마다 원하는 부위가 다르다는 거였다. 역시 경험 많은 어른들이 결론을 내려주셨다. "돼지 한 마리를 다 사거나, 아니면 한 마리를 두 집이 사서 반반씩 나누기로 하지!" 그래서 우리 집은 제일 작은놈으로 반 마리를 사기로 했다.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이런 절호의 기회에 이상하게도 아내는 모른 척 딴청만 피우고 있었다.


우리 집에 할당된 돼지는 이런 식으로 반 마리였다.

며칠 지나서 도축장에서 돼지고기 왔다고 전화가 왔다. 신이 나서 돼지고기를 가지러 가보니, 포장된 돼지고기가 아니라 아주 공평하게 반으로 딱 자른 돼지가 놓여 있었다.


우리 몫으로는 머리 반개, 몸통 절반, 앞다리 한 개, 뒷다리 한 개가 붙어있는 돼지 반 마리였다. 더구나 그 반 토막의 무게가 15kg이나 되었다. 와! 그런데 이게 제일 작은 돼지야?


낑낑거리며 돼지 반 마리를 가져와 주방 식탁 위에 펼쳐놓았다. 이 큰 돼지를 통째로 냉동고에 넣을 수도, 처마 끝에 매달 수도 없으니 먼저 분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샀으니 나보고 알아서 처분을 하란다. 돼지고기 산다고 했을 때 어째 딴청을 피우더라 했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칼부터 날카롭게 갈고 해체를 시작하겠지만 그 당시는 그런 개념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 집에는 생선회를 뜨는 날카로운 칼도 없고 무식하게 생긴 주방용 칼만 있었다. 내가 벌려놓은 일인지라 어쩔 수없이 나서기는 했지만, 그날 난 평생 한 번이면 족할 경험을 했다.


처음 계획은 뼈와 껍질만 벗겨내고 몇 토막으로 고기를 나누어 냉동실로 넣으면 끝이려니 했다. 그런데 몸통에서 앞다리 하나를 떼어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물컹거리는 고기는 무딘 칼로 썰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고기를 부위별로 구분하는 것은 고사하고 뼈를 발라내는 것도 힘들었다. 일이 다 끝났을 때 돼지는 폭탄 맞은 것처럼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먹을 때 굳이 고기를 썰 필요도 없을 정도로 고기는 난도질되었고, 부위별 구분이란 것은 아예 없었다. 사실 그 당시 난 어느 부위가 무슨 고기인지 알지도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심혈을 기울여 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식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늘 하던 잔소리도 없었고, 모두들 침묵만 지켰다. 그래서 우리 집 가장인 내가, 그 힘든 일을 혼자서 끝냈다.


다음날 싱싱한 돼지고기로 요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고기에서 냄새가 났다. 그리고 바로 전날 내가 해체하던 돼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식구들이 다 그랬다. 며칠이 지나서도 돼지고기를 먹으려고만 하면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아무도 먹지 못했다. 그 이후 한동안 우리 식구는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결국 그 많은 돼지고기는 가뜩이나 비좁은 냉동고로 들어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결국 우리 집 개 두 마리 '새침이'와 '호돌이' 차지가 되었다. 그놈들은 두고두고 고기뿐만 아니라 뼈까지 몽땅 다 먹어치웠다. 우리 집 개들은 15kg짜리 돼지 반 마리를 뼈까지 통째로 먹어치운 놈들이다.


아마도 지네들 생일인 줄 알았겠지.


P.S. 나중에 동네 형님께 물어봤다. "그런데 그 돼지 어떻게 해체하셨어요?"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그런 일은 여자가 하는 거지!" 끈질기게 형수님께 또 물어봤다. "그까짓 돼지 반마리가 뭐가 힘들다고요?" 우리 부부는 그분들 따라가려면 아직 멀고 멀었다.


<사진출처: 한국일보(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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