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닥터 지바고'
영화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라고 하면 먼저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과 흰 눈으로 뒤덮인 설경이 떠오른다. 또는 '라라의 테마'라고 하는 감미로운 음악이 연상되실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닥터 지바고'는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저자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oris Pasternak)'는 '감사하고, 기쁘고, 놀랍고, 또 부끄럽습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하지만, 러시아 혁명을 비판적으로 그렸다고 하여 소련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한다. 결국 그는 소련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두려워 수상을 거부하게 된다.
이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러시아 사회가 붕괴되는 혼란 속에서 지식인이 겪는 비참한 운명과 비극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스탈린 시대에 발표가 금지되어 1957년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1988년이 되어서야 러시아에서도 출판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60년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70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쓸쓸히 사망한다.
먼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 '닥터 지바고'는 1965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원작과는 다소 다르게 각색되었다. (주인공: 유리 (오마 샤리프), 토냐 (제랄딘 채플린), 라라 (쥴리 크리스티)).
유리 지바고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시베리아 부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8살에 고아가 되고, '그로메코'가에 입양된 후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자라게 된다. 영화의 첫 부분은 어머니 장례식 때의 어린 모습이지만 곧바로 성인이 된 유리가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함축적인 표현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유리는 그로메코가의 딸인 토냐와 결혼하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참전한다.
그곳에서 남편을 찾아 종군 간호부가 된 라라와 만난다 (이전에 유리와 라라는 몇 번 마주치는데 호기심을 갖고 지켜본 적이 있다). 라라는 어머니의 정부였던 코마로프스키와 원치 않는 관계를 맺게 되고 크리스마스 무도회장에서 그에게 총상을 입힌다. 그리고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가인 파샤와 결혼한다. 결혼 첫날밤 라라는 파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라라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파샤는 군대에 입대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결혼식 장면도 없고, 희미한 불빛의 창문 너머로 파샤의 고민하는 모습만 나온다. )
1917년 혁명정부가 수립되자 모스크바에서 곤궁에 시달리던 유리 가족 (브르주아 이면서 지식인 계급)은, 숙청을 피해 가족의 영지가 있는 우랄산맥의 바리끼노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고 행복한 전원생활을 하게 된다.
'해가 뜰 무렵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고 지붕을 이고, 끼니를 걱정하며 땅을 갈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유리의 일기 내용)
시골 생활의 무료함 속에서 시내 도서관을 찾던 유리는 이곳에 살고 있던 라라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원작에서 유리는 라라가 고향인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 듯 다가서지 못한다.) 이때부터 유리와 라라는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고, 유리는 토냐와 라라 사이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그 와중에 토냐는 다시 임신을 하게 되고 유리는 고민에 빠진다.
'집에서 그는 발각되지 않은 죄인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식구들과 그들의 변함없는 애정은 그에게 죽음처럼 처참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는 라라를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토냐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그녀의 용서를 빌며, 더 이상 라라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리라'. 그런 유리의 결심에 라라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좋을 대로 하세요. 나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어요."
라라와 헤어지고 슬픔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리는 적군 (빨치산: Partizan) 에게 납치된다. 시베리아에서 몇 년간 빨치산의 군의관으로 지낸 뒤 유리는 어렵게 탈출하여 라라에게 되돌아온다. 유리의 가족은 이미 바리끼노를 떠나 모스크바로 되돌아갔고 그 후 외국으로 강제 추방당한 상태다. 토냐는 만약 유리가 살아 있으면 라라에게 돌아올 것 같다며 유리에게 쓴 편지를 라라에게 보낸다.
다시 만난 유리와 라라는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어느 날 그들 앞에 코마로프스키가 나타난다. 그는 라라의 남편이었던 파샤가 총살당했고 (원작에서는 자살한다) 라라도 머지않아 체포될 것이라며, 극동지역으로 탈출할 것을 제안한다. 단지 유리 없이는 라라가 떠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도 함께 데려가겠지만, 극동 지역에 도착하면 유리는 그들을 떠나야 한다는 조건으로. 유리는 라라를 지켜줄 수가 없음을 괴로워한다.
마지막 며칠을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유리아틴의 저택에서 유리와 라라는 함께 보낸다. 유리가 한밤중에 일어나 라라를 위한 시를 쓴다. 드디어 마차가 도착하고, 유리는 곧 뒤따라 간다고 라라를 설득하여 먼저 마차에 태워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라라의 떠나가는 모습을 창 너머로 애절하게 지켜본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라라를 저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를 넘겨주어 버렸어. 당장 그들을 뒤쫓아가야겠다. 라라! 라라!'
라라를 떠나보낸 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유리는 이복형 (원작에서는 이복동생임) 예브그라프의 도움으로 생활하던 중, 전차 안에서 길을 걷고 있는 라라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는 급하게 전차에서 내리지만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는다.
라라는 내란으로 잃어버린, 유리와 그녀 사이에 태어난 딸 토냐 (원작에서는 타냐)를 찾기 위해 모스크바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유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유리 이복형의 도움으로 토냐를 찾아 헤매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경찰에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2002년에 드라마로 다시 제작되었다. (주인공: 유리 (한스 매디스), 토냐 (알렉산드리아 마리아 라라), 라라 (키이라 나이틀리)).
이 드라마는 내용이 원작에 훨씬 가깝게 제작되었지만, 영화의 스케일이나 영상미 등에 있어서는 1965년도 영화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유리 아버지의 죽음에 코마로프스키가 깊게 관여된 이야기도 나오고, 라라의 남편 파샤가 결혼 첫날밤 고민하는 모습과, 가족을 떠나 군대에 입대하는 장면도 나온다. 또 라라가 극동으로 탈출한 뒤 라라의 남편 파샤가 유리를 찾아오고, 자살하는 장면도 있다. 다만 영화의 끝부분에 나오는 유리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딸이 아니고 아들이다. (원작에는 딸이다)
영화 속에서 라라는 코마로프스키를 벗어나 유리를 찾아 아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이 부분도 원작과 다름). 그리고 갑작스러운 유리의 죽음을 알게 된다. 유리의 죽음 앞에서 라라는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날 눈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세요? 제가 당신을 두고 떠날 수 있었겠어요? 오, 난 알아요.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일부러 그러셨어요. 그것이 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모든 것이 파멸되었어요....'
유리의 친구는 라라에게 유리가 쓴 일기장을 넘겨준다. 숙소로 돌아가던 그녀는,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경찰을 보고 아이에게 유리의 일기장을 주고 달아나라고 한다. "달리기를 하자. 너 먼저 뛰는 거야. 뒤돌아보지 마"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원작에서 라라는 극동지역으로 탈출한 뒤 코마로프스키의 아내로 살지만, 아이 (유리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딸 '타냐')를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의 양육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가 내란 중에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이를 찾아 모스크바로 왔다가 우연히 유리의 죽음을 알게 된다. 라라는 유리의 장례를 마친 뒤, 그곳에 머물며 예브그라프를 도와 유리의 원고를 정리해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아마도 경찰에 체포되어 어느 수용소에서 이름도 찾을 수 없는 한 번호로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가슴 아픈, 유리의 말년도 엿볼 수 있다.
유리는 라라를 떠나보내고 모스크바로 돌아와 8~9년을 더 살게 된다. 유리는 모스크바에서 시를 쓰며 궁핍한 생활을 한다. 유리는 가족을 찾아 외국으로 가려해도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고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외롭게 살다가 이웃집 사람의 딸인 마리나를 만나 별다른 사랑의 감정도 없이 동거를 하게 된다 (비 공식적으로 세 번째 부인). 그리고 그들 사이에 딸 둘이 태어난다. 마리나는 유리의 괴벽을 받아주고, 불평이나 신경과민, 분노 등도 참아 내는 헌신적인 여인이다. 그러다가 유리는 이복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안정을 찾고 병원에 출근하게 되는데, 출근 첫날 만원 전차를 타고 가다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죽는다.
'마리나는 시체를 꼭 껴안고 있었다.... 오늘은 마리나의 고통스러운 격정이 진정되었지만 지칠 대로 지쳐 마비된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신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라가 찾아왔을 때, 마리나는 고인이 누워있는 방을 나와 복도에 앉아 기다린다. '마리나는 긴 외투로 아이들을 푹 싸서 두 손으로 가려 주고 나무 벤치 끝에 앉아서 다시 방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구속된 죄수를 면회하러 간 사람이 영무관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린 딸 둘과 함께 갑자기 과부가 되어버린 이 가련한 젊은 여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다. 영화 두 편 모두에서도 아예 마리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유리의 삶이 가장 비참했던 시기,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 주었던 여인이었는데...
유리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딸 '타냐'는 세탁부가 되어, 고달팠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최근에 자신을 찾아온 '예브그라프'가 앞으로는 그녀를 돌보아 줄지도 모른다고.
햄릿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유리의 시)
떠드는 소리가 그쳤다. 나는 무대로 나선다.
문기둥에 기대서서
멀리 울리는 산울림으로
내 생애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본다.
수많은 오페라글라스의 시야를 따라
밤의 어둠은 나를 겨누고 있다.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내게서 이 잔을 넘기게 하소서.
나는 당신의 완강한 목적을 좋아하고,
내 역을 맡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연극이 상연되고 있으니
여기서 나를 한번 나오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연기의 순서는 이미 계획되어
피할 수 없는 길의 종말에 이르렀다.
나는 홀로이나 다른 것은 모두 바리새교의 위선에 빠져있다.
제 목숨대로 살기란 들을 건너듯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