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삶은 현실이고 생생하고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다
예전에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었던 바이블과 같은 책이 있으니 바로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과 스콧 니어링 (Scott Nearing)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이다. 이 책은 니어링 부부가 도시를 떠나 미국 버몬트 주의 깊은 산골에 들어가 살았던 나날을 기록한 것으로, 그들 부부가 시골로 가게 된 배경이나 삶의 방식 그리고 시골에서 살아간 19년간의 생활도 엿볼 수 있다.
그 책을 처음 접한 나는 그들의 삶에 푹 빠져 버렸다. 니어링 부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삶의 방식 말고도, 또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 책은 내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과 같은 직장 생활로부터 벗어나 때 이른 은퇴를 결심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니어링 부부를 소개하자면, 스콧 니어링은 대학교수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두 번이나 대학에서 쫓겨난다. 첫 번째는 아동 노동의 폐해에 대하여 반대하다가 쫓겨났고, 두 번째는 1차 세계 대전에 반대하다가 쫓겨난다. 그 이후 다시는 교단으로 되돌아가지 못했고 심지어는 강연도 책도 출간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받는다. 부인과도 별거한 채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에 헬렌을 만나게 된다. 헬렌은 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는데, 24세가 되었을 때 45세였던 스콧을 우연히 만나면서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세계를 휩쓸던 경제 대공황을 겪으면서 그들은 직장과 생계수단을 모두 잃어버린다. 도시에서 더 이상은 먹고살기가 힘들어지자 대안으로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들은 1932년 버몬트 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자메이카'란 곳으로 이주를 한다. 그곳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쓸모없고 거친 땅을 직접 개간하고, 자가 제조한 퇴비만으로도 땅을 살리며 식량을 생산해낸다. 또 살아갈 집을 손수 지었고, 필요한 약간의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숲에서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하여 단풍 시럽과 설탕을 만들어 판다.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내야만 했다. 우리가 생각해 낸 대안은 절반쯤은 자급자족하는 생활이었다.... 우리는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 부부가 먹고살기 위해 죽어라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해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여섯 달로 줄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여가 시간으로 정하였다. 그래서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한 만큼의 양식을 모았으면, 다음 수확기까지는 돈 버는 일을 그만두었다.
'우리는 할 일을 했고, 그 일을 즐겼다. 충분한 자유시간을 가졌으며, 그 시간을 누리고 즐겼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에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버몬트에서 살아가면서 그들은 몇 가지 목표를 정하는데, 자급자족으로 불황을 타지 않는 경제 기반을 만들고, 건강해지는 삶을 살고, 만족스러운 삶의 방식을 통해 올바른 사회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 당시 그들이 삶에 얼마나 진지했는지는 아래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골짜기에서 공동으로 하는 일이란 건 기껏해야 춤과 맥주 잔치였다. 공동체 경제 조직도 없고 사회 조직도 드물었다....... 도대체 뭘 위해 그렇게 할까? 우리는 삶을 진지한 것으로 여겼다. 삶은 배우고, 봉사하고, 세상에 진리와 아름다움과 정의를 심을 기회가 아니던가....... 우리에게 삶은 현실이고, 생생하고,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할 일이 많았다.'
그들은 버몬트에서 사는 동안 건강을 지킬 수 있었고, 도시에서 요구하는 복잡한 삶 대신 단순한 생활양식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의 집은 늘 열려있어 누구든 찾아와 함께 먹고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오지에도 개발 붐이 불어 거대한 스키장이 들어선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더 이상 단순한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메인 주에 있는 '하버사이드'란 더 외진 시골로 다시 한번 이주를 한다. 그 이후, 메인에서 보낸 26년의 생활을 기록한 책이 바로 <조화로운 삶의 지속 (Continuing the good life)>이다.
<조화로운 삶의 지속>에서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좀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내용들을 다룬다. 밭일하는 법과 약간의 돈벌이를 위해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온실을 짓고,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돌로 집을 짓는 내용도 들어있다. 또 먹는 음식과 건강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무엇이 보람된 삶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들은 조화로운 삶의 특성으로 4-4-4 공식을 이야기하는데, 4시간은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하는 시간이고, 4시간은 자신의 전문 활동 시간이며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해석한다), 마지막 4시간은 인간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하기 위한 시간으로 (봉사활동) 정한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평생을 조화롭게 살았다.
끝으로 니어링 부부는 이 책을 쓴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조화로운 삶을 꿈만 꾸는데 머물지 않고 그 꿈을 실현하고자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 책과 같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우리처럼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면 좋겠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 모험을 즐거워하고 거기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느덧 시골로 들어와 산지 1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우리 부부도 그분들처럼 새로운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분들처럼 생활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저 부분적으로만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그분들만큼 절박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오지에 자리잡지도 않았으며, 부양가족도 (그들은 아이도 없었다)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직도 우리 부부가 세상에 깊이 파묻힌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는 도시와 시골이 완전히 분리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온 세상이 하나로 묶여있다. 도시든 시골이든 어디에 살든 간에 실시간으로 세상의 변화를 접하고 그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회 구조속에서 우리 부부는 자연인처럼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더구나 우리 부부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말이다.
15년의 시간이 흐르니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서서히 개발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공장도 들어서고 낯선 사람들도 자주 보이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부부도 이곳을 떠나 다른 조용한 곳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어디로 갈 것인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내가 단호하게 말을 했다. "나이 들어서는 도시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대!" 앞으로 젊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 니어링 부부처럼 더 깊은 산골로 이사를 가기는 틀려버린 것 같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볼 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온 삶을 후회한 적은 없다. 또 그동안 서서히 바뀌어온 우리 부부의 삶의 방식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도 우리 부부는 니어링 부부처럼 조화롭고 단순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나마 그것이 작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우리 부부에게 삶은 현실이고, 생생하고,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