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 두더지 퇴치법
지난 사진들을 들추어보다가 텃밭 한쪽에 세워 놓은 바람개비 사진을 발견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땅을 좋게 만들기 위해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풀을 키우고 볏짚으로 멀칭을 해주었다. 또 비료 대신 퇴비를 밭에 넣어주면서 언젠가부터는 전혀 보이지 않던 지렁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드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렁이가 많아졌다. 호주에서는 지렁이 개체 수를 세어서 토양의 비옥도를 측정한다고 하더니만, 내 텃밭의 흙도 분명히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렁이가 많아지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두더지! (두더지가 많아지면 뱀도 생긴다고 한다!)
어느 날, 텃밭에 심었던 고추 모종이 갑자기 없어졌다. 벌레가 파먹었으면 주위에 잎이든, 끊어진 줄기든 무슨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장에 가서 새로 모종을 구입해와야 했다. 아직 봄인데 빈 땅을 여름 내내 놀릴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모종을 심으려는 순간, 땅이 푹 꺼지며 땅 속에 큰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두더지 구멍! 그리고 그 두더지 구멍 속에는 없어졌던 고추 모종이 들어있었다. 이런 고얀 놈 같으니라고. 감히 내 귀한 모종을 파 가다니!
주위 분들에게 두더지 잡는 법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사람마다 두더지 잡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했다.
제일 쉬운 것은, 두더지 약을 땅속에 넣어주는 방법이다.
두더지는 한번 구멍을 뚫어놓으면 다니던 길로만 계속 다닌다고 한다. 그러니 그 구멍에 두더지 약을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약 한 통에 만 원이나 하고, 알약 크기도 사탕만 해서 몇 번 쓰면 끝이다. 두더지가 좀 많아지면 돈이 감당이 안 된다. 나도 몇 통은 사봤지만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쥐 틀처럼, 두더지 틀을 땅속에 묻어두는 방법이다.
두더지가 먹이를 찾다가 틀 안에 갇힌다. 문제는 그 잡힌 두더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살아있는 두더지를 죽이는 장면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더 중요한 건 누가 처리할 건데? 아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포기했다. 패스!
조금 고생스럽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도 있단다.
두더지는 새벽에 많이 움직인다고 하니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밭에서 기다린다. 흙이 꿈틀거리며 두더지가 지나가는 것이 포착되면, 잽싸게 삽으로 두더지가 지나가는 길 앞쪽을 막는다. 앞이 막힌 두더지는 땅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고, 갑자기 환한 밖으로 나온 두더지는 행동이 굼떠지는데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몽둥이로 때려잡으면 된다. 숙달이 필요하면 유원지 같은 곳에 설치된 두더지 방망이로 연습할 수도 있다. 새벽잠 많은 나는 이것도 힘들다.
끝으로 바람개비 퇴치법이다.
먼저 옷걸이 철사를 이용해서 바람개비를 만든다. 쇠 파이프 한쪽을 땅속에 박아놓고 그 파이프에 바람개비를 꽂아 놓으면 된다. 그러면 바람개비가 돌아갈 때 생기는 진동이 땅속으로 전달되고 두더지는 도망간다고 한다. 죽이는 것도 아니고 쫓아내는 방법이니 가장 인도적인 방법이다. 물론 그 두더지는 가까운 이웃집으로 피신하겠지만.
그래서 바람개비 여러 개를 만들어 텃밭 곳곳에 꽂아놓았다. 과연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에, 두더지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이른 새벽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서 방제를 할 때에도 바람이 불지 않는 새벽에 한다.) 또 한 번은 바람개비 바로 밑으로 과감하게 뚫고 지나간 두더지 굴도 발견한 적이 있다. 물론 두더지 10 마리 중 9마리는 도망가고 마지막 남은 1마리가 뚫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몇 해를 두더지와 싸우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거의 두더지를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연농업을 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자연의 균형을 이루는 시점이 저절로 온다고 한다. 흙 속에 미생물도, 적당한 지렁이와 두더지도 (뱀도?) 생겨 서로 균형 잡힌 먹이 사슬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요즘도 우리 집은 가끔씩 죽은 두더지를 뒤 뜰에서 발견한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텃밭을 싹싹 훑으며 잡아놓은 두더지들이다. 아마도 지들 밥값 한다고 과시용으로 잡아 놓은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두더지 퇴치에는 우리 집 고양이 네 마리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