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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만 삼천 보가 훨씬 넘게 걸었는데도 잠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적어내려야 할 것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덧붙인 주말의 마지막 밤, 노동절을 보낸 노동자는 하품과 함께할 내일의 출근이 두렵지만 자는 것은 포기하고 구석에 꿍쳐두었던 마음의 껍질을 벗겨본다. 빗소리를 하나 켜두고.
최근 아이폰의 위치 기반 기능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령 리마인드 해야 할 시간이 애매하다면 회사 반경 00m를 떠났을 때 알림이 울리게 해 둔다거나, 퇴근 후 집 근처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방해금지모드로 진입해 불필요한 소식들을 신경에서 꺼두게 하는 것들이다. 특히 위치 기반으로 개인시간 모드가 되는 것은 하루종일 시달린 쓸데없는 알림들로 집에서마저 마음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러 해둔 장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솔직해지자면 딱히 많은 알림이 찾는 사람은 아니다. 대단하게 친구가 많다거나 직장에서 유난히 대체불가능할 만큼 중요하다거나. 기별하지 않아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인스타그램은 최근 관두었고 애인은 2년쯤, 그 비슷한 언저리는 1년 몇 개월 째 공석이다. 깊게 집중하던 측근들도 놀랍도록 허무하게 스러졌다. 2학년 때 친했던 친구와 반이 갈리면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에게 집중하던 꼬맹이는 덩치가 커져서도 같은 습성으로 산다. 그래도 값진 연들은 매해 계속되었으니까 늘 용돈 받은 날처럼 흥청망청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동료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모호한 사람이 싫어요. 대체적으로 모두와 친한 사람들이 싫어요." 차별금지법에 저촉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사람을 가리는 우리와, '저 사람은 정말 멀쩡한데 굳이 왜 저런 이들과도 시간을 보내지' 싶게 경계가 흐릿한 이들이 있다. 사회성이라고 눙쳐 부르기에는 조금 진심인 얼굴로 웃고 있으니 이리 착각을 하는 것일까. 그 동료와 나는 대체적으로 다르지만 무엇이든 명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또렷한 서로를 제법 가까이 둔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99%까지 게이지를 채워서 상대방의 취향도 탄다. 그게 장점이고 또 약점이다.
'매니악한 성격이라 나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어디든 꼭 있다'라고, '좋아하는 이에게는 물불 안 가리는 불도저이며 애정 폭격기야' 라던 나는 멈췄다. 더 이상 엔진은 가동하지 않는다. 발을 떼지도 옥석을 가리지도 않는다. 찾아가는 일을 멈추니 찾아오는 이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애초에 찾아갈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잠을 몰아낸다.
대중과 매스미디어들이 그랬던 것 같다.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하면, 자식을 낳아 편을 늘려두면 적어도 고독사는 하지 않을 거니까 더 나을 거라고. 만약 이 5평 남짓 되는 방 안에서 비명횡사한다면 발견되는 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궁금해한다. 혼자 잠에 들고 일어나기 시작한 지 이 년이 되어 간다. 쾌적한 외로움을, 이 어엿한 혼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내 발아래 동그란 작은 섬의 방문객을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불안한 포옹을 적어 내려 가던 새벽에는 적어도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기분이기라도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