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플런, 『블루의 세 가지 빛깔』, 에포크, 2025.
긴 책을 읽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의 삶이 번갈아 가면서 이어지다가 [Kind of Blue] 작업 전후로 서로의 삶에 잔향을 남기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는 이야기. 탁월한 논픽션 작가인 제임스 캐플런은 성실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세 연주자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세부와 당대의 거시적인 흐름을 균형 있게 녹여냈다. 세 연주자의 삶과 마지막은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같은 결말 속에서 삶이라는 과정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스윙 시대 이후 비밥의 한복판에서 음악의 씨앗을 파종했고, 재즈의 예술적 황금기이자 과도기였던 1959년에 [Kind of Blue]라는 가장 뚜렷한 인장을 새긴 이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삶에서 마법 같은 순간은 알아채기도 전에 지나가버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장차 가장 위대한 재즈 앨범 중 하나라고 불릴 녹음을 한 후 머지않아 자신들의 밴드를 꾸리기 위해 마일스 데이비스를 떠난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는 각자 영적인 소리와 조우하기 위해 짧은 생을 응축시켰고, 화성적 탐구에 파고들며 “가장 길고 가장 느리게 자살”했다.
이 책은 비단 이 세 연주자만을 다루지 않는다. 마치 영화의 딥 포커스처럼 한 시대의 풍경을 깊은 시선으로 담아내면서 여러 연주자들을 호명한다. 책의 초반에는 찰리 파커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꺼내 놓으며 비밥의 움직임과 시대의 호흡을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천천히 주요한 세 연주자가 등장하는 식이다. 조연처럼 보이던 신출내기 연주자들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옮겨가고 이들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천천히 드러난다. 그 과정은 허물어지고 다시 쌓이는 일과 다름없다. 찰피 파커의 눈에 띄기 위해 안달하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여전히 자신의 음악이 뭔지 몰라 헤매는 존 콜트레인, 분명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어리숙하게 침잠하는 빌 에반스. 이들의 처음은 우리 모습과 닮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이들은 평단에 오르내리고 음반사의 기대를 받는 현재진행형인 연주자가 되어있다. 이는 아마 이 연주자들의 비상이 결과론적으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일 테다. 삶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디로 이동해 있다. 그리고 계속 움직이고 있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삶이 어떤 모양일지 끝내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죽음 이전의 우리는 불완전한 조각들을 간신히 기워서 그럴듯한 모습으로 만들어 납득하는 일을 좋아하니까 여기 없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을 추측하는 것뿐이다. 완벽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일은 우리에게 꽤 도움이 되고 힘이 된다.
[Kind of Blue]는 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거세게 몰아치는 재즈의 급류에서 늘임표 같은 존재였다.” 비밥의 대안으로 나온 하드 밥이 블루스와 가스펠과 접면을 만들면서 다시 청중들과의 만남을 모색하던 시기에 이들은 누구도 가지 않은 영역에 발을 들였다. 그건 문자적 유사성을 지닌 블루스(Blues)가 가는 길도 아니었고, 밥(bop)이 염두에 둔 경로도 아니었다. 그저 이들이 만든 ‘일종의 블루’였다. 물론 여기에서는 흔히 이야기하는 쿨 재즈가 감지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건 정서의 영역이다. 쿨 재즈는 느린 템포의 밥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이 앨범에서의 ‘블루’는 뭘까.
내가 생각하기에 ‘블루’는 여지다. 여지는 남은 땅을 뜻하는데, 빌 에반스의 라이너 노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수묵화의 화가는] 팽팽하게 펼친 얇은 종이 위에 특별한 붓과 먹물로 그림을 그리는데, 부자연스럽거나 끊긴 붓질은 선을 망친다. (…) 지우기도 고치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화가들은 반드시 특별한 규율을 수련해야 한다. (…)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보통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구성이나 질감은 부족하지만, 그것을 보는 이들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고들 한다.” 제임스 캐플런, 김재성 역, 『블루의 세 가지 빛깔』, 에포크, 2025, 416-417쪽.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 이는 그들의 음악을 정의하는 일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첫 트랙 'so what'을 살펴보면 D 도리안과 E♭ 도리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개의 코드로 연주자들은 긴장감을 만들고 즉흥을 이끌어낸다. 이는 비밥의 속도로는 상상할 수 없는 호흡이다. 이 호흡은 비밥이 빠르게 질주하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여지다. 또한 허비 행콕의 언급처럼 불협화음인 2도로 솔로를 마무리 짓는 빌 에반스의 표현은 모달이라는 여지에서 비로소 발견 가능한 어법이다.
[Kind of Blue]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트랙은 'Flamenco Sketches'다. 빌 에반스의 'Peace piece'를 차용한 도입부는 작은 음들이 연못에 조각배를 띄우듯 천천히 펼쳐진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그 음들은 끊임없이 소박한 공간을 부유하듯 날아다닌다. 뒤의 음들이 앞선 음을 쫓아가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날갯짓하는 멜로디는 잔상처럼 반복되며 흔들린다...
앞선 문단은 내가 20살에 이 곡을 듣고 적어 놓은 메모의 일부다. 추상적인 감각을 표현하려고 애썼지만 미완에 그친 이 메모는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채로 저장되어 있다. 끝내 음악과 같아질 수 없어서 계속 음악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나를 예비하고 있는 문장 같다. 나는 여전히 좋은 음악을 매일 기다리고, 간혹 찾아간다. 그러다가 이 귀한 기록을 덤으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