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영화에서 꺼내 듣다_track 4

재즈 아티스트의 사운드 트랙_마일스 데이비스에서 봉준호 감독까지

by 조원용

영화에서 단순히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이외에 재즈 아티스트가 영화음악을 담당하거나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참여한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시청각의 예술인 영화에 재즈라는 ‘자유로운 틀’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영화음악을 책임진 재즈 아티스트가 과연 그것에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살펴보자.


마일스 데이비스와 프렌치 누아르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échafaud, 1958)

마일스 데이비스는 1957년 12월 프랑스에서 루이 말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échafaud, 1958) 영화음악을 녹음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줄리앙 타베르니에(모리스 로네 분)가 동업자의 아내인 플로랑스 카랄라(잔느 모로 분)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 프렌치 누아르물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쳇 베이커(1964년 벨기에 무대 영상이 남아있다), 소니 롤린스 등과 함께한 프랑스 피아니스트 르네 위르트르제를 포함하여 퀸텟의 연주로 채웠다.

잔느 모로와 마일스 데이비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시기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가 섹스텟 구성으로 발매한 <Milestones>, <Kind of Blue>에 앞서 녹음되었다. 사운드 트랙의 기조는 대체적으로 정적인 연주로, 뮤트 트럼펫 사운드와 일반적인 트럼펫 사운드를 병행한다. 또 사운드 트랙 앨범이니만큼 영화 안의 상황을 전제로 한 곡들이 대다수인데, ‘L'interrogatoire de Julien’이나 ‘Évasion de Julien’ 같은 경우 마일스 데이비스와 바르네 윌랑의 멜로디 섹션을 제외한 리듬 섹션만을 활용하여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누아르 특유의 음울한 톤과 잔느 모로의 정처 없는 걸음, 그리고 불안정한 광기를 머금은 그녀의 눈은 미니멀한 구성의 사운드 트랙에 공간을 만들면서 파고든다. 내면의 폭발성을 지닌 영화와 사운드 트랙은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그만큼 이 두 가지는 유기적인 구성으로 시청각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트레일러. 마일스 데이비스의 사운드 트랙이 흐른다.


영화 <버닝>

첫 번째 연재 글에서 언급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에 삽입된 ‘Générique’도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곡이다. 과거 기사를 다시 한번 언급해보자면, 해미(전종서 분)가 어스름한 하늘빛을 등지고 춤을 출 때 ‘Générique’가 흘러나오면서 카메라의 시선과 인물의 행위, 그리고 내면의 폭발성을 지닌 듯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블로잉까지 세 가지 요소는 합일된 형태를 이뤄낸다. 음악의 정서가 곧 장면의 분위기가 되며, 나아가 인물의 감정이라고 느껴질 만큼 내밀한 조화가 돋보인다. <버닝>에서 쓰인 이 사운드 트랙은 결코 수십 년 전의 것이라는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60년 남짓한 시간을 관통하여 여전히 그의 표현법은 유효한 것이다.






재즈로 표현한 봉준호의 영화

조성우 음악감독이 작업한 작품. 왼쪽부터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만추>(2010)

조성우 음악감독.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그가 참여한 작품들을 나열해보면 꽤나 익숙한 제목들을 발견할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봄날은 간다>(2001), 그리고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와 김종현 감독의 <슈퍼스타 감사용>(2004), 근작으로는 김태용 감독의 <만추>(2010)와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2016)가 있다. 조성우 음악감독의 사운드 트랙은 다양한 악기의 배치와 서정적이고 멜로딕 한 구성, 장르의 포괄성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재즈를 활용한 사운드 트랙이 돋보이기도 한다. 한국 재즈 1세대 이판근 선생에게서 음악이론을 사사한 그의 재즈 스코어(창작곡)는 역시 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독자분들께 소개해주고 싶은 사운드 트랙은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플란다스의 개>의 그것이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 플란다스의 개 #1 (Take 1), Ending Title

아파트에서 강아지가 실종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조성우 음악감독 특유의 멜로딕 한 구성이 재즈와 만나 균형 잡힌 테마가 만들어졌다. 주목할 것이 많은 영화 <기생충>(2019)에서 두드러진 정재일 음악감독과의 협업 이전에 조성우 음악감독의 작업 역시 음악적으로 눈여겨볼만한 점이 상당히 많다. ‘플란다스의 개 1’ 같은 경우 드러머 김학인과 피아니스트 임미정의 가벼운 스윙감으로 곡이 진행되면서 오형학의 기타 솔로가 짤막하게 이어진다. 개를 필두로 하여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하지만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이 역설적인 서사에서 무겁지 않은 재즈의 테마는 짐짓 평온하게 들리곤 한다. 하지만 극의 진행에 따라 멜로디가 고조되거나 박진감 넘치는 재즈 스코어 ‘대추격 1’, ‘대추격 2’는 찰리 파커의 비밥 연주를 연상케 할 정도의 속주와 높은 텐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Rhythmholic’은 박영용의 퍼커션을 중심으로 ‘대추격’의 전조(前兆)다. 사운드 트랙 순서상으로도 ‘Rhythmholic’이 ‘대추격 1, 2’의 바로 앞 트랙에 위치하고 있다. ‘Flanders’ Rag’ 같은 경우 ‘베이스-드럼-기타-피아노’ 구성의 콰르텟 버전과 여기에 이정식의 색소폰, 이주한의 트럼펫이 추가된 섹스텟 버전, 그리고 피아노 솔로 버전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어 영화 내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운드 트랙을 한 장의 재즈 앨범으로 생각하고 들어도 무방할 정도다. 재즈 앨범의 관점으로 사운드 트랙에 접근한다면 체리 필터의 ‘플란다스의 개 2’는 보너스 트랙 정도로(?) 생각해도 될 듯하다. 거기에 마지막 트랙 ‘뽀일라 김씨’는 스포큰 워드나 아우트로(outro)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플란다스의 개> 사운드 트랙 앨범은 다양한 구성을 지닌 재즈 앨범이 다름 아니다. 사운드 트랙 안에서 재즈가 지니고 있는 가치는 이토록 유쾌하고 다채롭게 해석 가능하다. 이는 작품과 궤를 같이하는 사운드 트랙이 가질 수 있는 테마의 명확성이며, 동시에 별개의 앨범의 다의성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재즈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사운드 트랙을 들으며 영화의 장면을 떠올려보거나 새로운 심상을 덧붙여 보는 건 어떨까.

영화 <플란다스의 개> 트레일러. '2000년대의 상상력 2000년대의 코메디'라는 자막이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 IMDB, K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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