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영화에서 꺼내 듣다_track 3

스크린에서 만난 재즈 아티스트 ②_다큐멘터리

by 조원용

이번 ‘스크린에서 만난 재즈 아티스트 ②’에서는 재즈 팬들이 눈여겨볼 재즈 아티스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근작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소개할 작품들은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 2000년대 이후에 제작이나 개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어떤 재즈 아티스트들이 조명을 받고 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생의 조각을 직조하다

세상을 떠난 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는 명인들이 있다. 그들의 음악은 재즈 뮤지션뿐만 아니라 전방위의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이 되곤 한다. 그런 영감의 근원이 되는 명인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는 무엇이 있을까?

다큐멘터리 <존 콜트레인 스토리>

먼저 <존 콜트레인 스토리>(2016)는 영어 원제(Chasing Trane)처럼 다양한 진술과 그가 생전에 남긴 음악들을 통해 콜트레인의 자취를 좇는 다큐멘터리다. 작품을 연출한 존 쉐인필드는 이전에도 <존 레논 컨피덴셜>(2006), <위드 아웃 유, 해리 닐슨>(2006)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바 있다. 이번 <존 콜트레인 스토리>에서도 그의 능숙한 구성과 연출력이 돋보인다. 한 사람으로서의 콜트레인과 혁신성, 압도적인 연주력을 보유한 음악가로서의 콜트레인. 영화는 이 두 가지 모두 밀도 있게 다룬다. 영화에 삽입된 일러스트 역시 존 콜트레인이라는 아티스트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생애와 연결 지어 만나보고 싶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다. 추가로 이 다큐멘터리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따로 발매하여 영화가 직조한 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CD뿐만 아니라 바이닐로도 발매 되었으니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존 콜트레인 스토리>의 트레일러


제13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상영된 <기억된 시간 : 빌 에반스>(2016)에서는 빌 에반스의 전 생애를 그의 음악과 사건으로 살펴본다. <존 콜트레인 스토리>보다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토니 베넷, 잭 디조넷, 마티 모렐 등 동료 아티스트들의 증언으로 그를 되짚어보며 빌 에반스가 한 인간으로서 겪었던 위기와 성취의 순간들이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스캇 라파로의 사고사와 형의 죽음, 그리고 함께한 여인의 비극적인 말로. 혹자의 얘기처럼 빌 에반스는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 것이 아닌 서서히 죽어간 것이라고 느껴질 만큼 그는 천천히 심연의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피아노 앞으로 다시 돌아왔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인장과도 같은 음악들을 남겼다.

다큐멘터리 <기억된 시간 : 빌 에반스> 개인적으로 병렬식 타이포그래피와 사진이 단순하게 병치된 포스터가 아쉽다.

그 중 빌 에반스의 두 번째 트리오 앨범 [Everybody Digs Bill Evans]에 수록된 Peace Piece는 작품 속에서 인상 깊은 멜로디로 기억한다. 작은 음들이 연못에 조각배를 띄우듯 천천히 펼쳐진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그 음들은 끊임없이 소박한 공간을 부유하듯 날아다닌다. 뒤의 음들이 앞선 음을 쫓아가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날갯짓하는 멜로디는 잔상처럼 반복되며 흔들린다. 시적 이미지가 자명한 이 곡은 우리에게 제목 그대로 평화의 조각을 선사한다. 이 작은 조각들은 점심나절 볕이 새어 들어와 창틀 그림자 속으로 응집되는 아지랑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만든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반복되는 일상적 행위와 순간을 되돌아보게 하며, 비로소 작은 평화의 조각들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일상의 품에 놓여있음을 깨닫게 한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앨범 [Everybody Digs Bill Evans]에 수록된 'Peace Piece'

이외에도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를 다룬 <에이미>(2015)에서는 음악을 사랑하는 그녀의 순수한 모습과 그 순수함 때문에 겪은 세상과 충돌하는 에이미의 모습을 담았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뛰어난 재능을 아티스트였기에 그녀의 이른 죽음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삼 씁쓸하게 다가온다. <쳇 베이커의 초상>(1988)은 만년의 쳇 베이커가 과거에 대한 회상이 주를 이룬다. 쳇 베이커 전기를 쓴 제임스 개빈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쳇 베이커의 회상이 사실과 다르게 미화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후술한다. 그 이유에선지 작품에서 그의 젊은 시절 모습과 당시를 떠올리는 그의 모습은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유독 대비를 이룬다.

다큐멘터리 <쳇 베이커의 초상> 트레일러.


시간과 예술이 쌓아올린 연륜을 느끼다


다큐멘터리 <킵 온 키핑 온>. 저스틴 코플린과 그의 멘토인 클라크 테리.

앞선 작품들에서는 비교적 짧은 생애 동안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재즈 아티스트들을 이야기했다면, 오랜 시간 다양한 음악활동과 예술혼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아티스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킵 온 키핑 온>(2014)은 트럼펫 연주자이자 재즈 교육자인 클라크 테리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 저스틴 코플린에 대한 이야기다. 허비 행콕, 윈트 마살리스, 마일스 데이비스 등 재즈 거장들의 멘토였던 클라크 테리는 아흔이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저스틴 코플린의 도전에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질환으로 인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병석에 누워있으면서도 저스틴의 음악적 영감과 자신감을 계속해서 불어 넣어준다.

계속 싸워야 한다. 계속 사람들이 널 평가할 거야. 하지만 남이 하는 것 말고 네 길을 가야 해. 이 말 잘 새겨들어라. 중요한 얘기야. 네가 스스로 정한 역할과 길은 쉽게 갈 수 없어. 옳은 길로 가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거야... - <킵 온 키핑 온> 중에서

그가 수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재즈 아티스트로 살아오면서 쌓아온 시간을 통해 얻은 것들을 이제 막 아티스트로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제자에게(친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진정성 있게 얘기하는 모습은 러닝 타임 내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삶에서의 거장이 있다면 바로 클라크 테리가 그 중 한 명 아닐까.

연주 중간 중얼거리는 스캣(Mumble)이 트레이드 마크인 클라크 테리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무대. 클라크 테리의 별칭은 Mr. Mumble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술상 앞 'Moonglow' 연주. 어떤 상황에서도 재즈를 연주해내는 그들이 바로 한국 재즈 1세대다.

한국에도 클라크 테리 같은 재즈 명인이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브라보! 재즈 라이프>(2010)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판근 선생, 故이동기, 故강대관, 최선배 등 한국 재즈 1세대를 조명한 이 다큐멘터리는 흩어져 있던 재즈 1세대들의 재집합이자 여태껏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한국 재즈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조촐한 술상 앞에서 젓가락이 드럼 브러쉬인 것 처럼 리듬을 넣고, 작은 코넷과 색소폰으로 재즈 스탠더드 'Moonglow'를 연주하는 모습은 무대에서 그들의 연주만큼이나 마음에 남는 장면이다. 이 한국 재즈 1세대들의 미래는 지금의 한국 재즈로 점철된다. 젊은 후배였던 웅산과 드러머 故조상국 선생의 아들 피아니스트 조윤성은 현재 한국 재즈씬을 아우르는 중요한 아티스트로 자리하고 있다. 재즈는 이처럼 계속된다. 그리고 계속 되길 바란다.

브라보 재즈 라이프 1.jpg 일본에 진출하여 프리 재즈 앨범을 내고 현재까지 활동중인 트럼페터 최선배와 2018년 작고한 클라리넷 연주자 故이동기 선생.


사진 출처 : IMDB,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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