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만난 재즈 아티스트 ①
이번 연재에서는 스크린 속 재즈 아티스트와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루이 암스트롱, 존 콜트레인, 델로니어스 몽크와 같은 명망 있는 재즈 아티스트들을 앨범이나 음원이 아닌 영상으로 만나는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아티스트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이야기나 음악적‧인간적인 고민들에 대해서도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만나볼 영화는 <뉴 올리언즈>(New Orleans, 1947)다. <뉴 올리언즈>는 본격적으로 ‘재즈’라는 소재를 전면에 드러냄과 동시에 서사 진행의 주요한 아이템으로 활용한 영화다. 눈여겨볼 점은 루이 암스트롱과 그의 밴드,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가 영화에 실제로 출연하여 협연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뉴 올리언스 재즈와 스윙 재즈 등 모던 재즈 이전에 많은 인기를 누린 루이 암스트롱이 뉴 올리언스 재즈의 태동기를 그려낸 영화에 직접 출연했다는 사실은 설령 그것이 영화의 메인 플롯이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자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감독인 아서 루빈은 뉴 올리언스 재즈와 함께 래그타임, 그리고 당시 팝 음악으로 여겨진 스윙 재즈를 스크린에 담아냈다. 이것은 재즈의 갈래가 파편적인 것이 아닌 유기적인 흐름에 의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시기의 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The Glenn Miller Story, 1954)에서도 당대 뛰어난 재즈 아티스트들의 연주를 만나볼 수 있다. 음악감독인 헨리 맨시니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스윙 재즈와 글렌 밀러가 실제로 추구했던 음악을 스크린에 유려하게 복원시켜 놓았는데, 이는 루이 암스트롱과 드러머 진 크루파, 코지 콜 등의 멤버가 밀도 높은 협연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영화 <글렌 밀러 스토리>는 사운드의 사실성과 당시 미국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룬 스윙 재즈의 재현에 신경을 기울였다.
재즈 아티스트의 전기 영화에선 출중한 연기력과 음악에 대한 이해도를 겸비한 배우들이 열연을 펼쳐 흥미롭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한 <버드>(Bird,1988)에서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2013), <블랙 팬서>(2018)등의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명배우 포레스트 휘태커가 비밥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연기했다. 찰리 파커가 세상을 떠나고 33년 후에 만들어진 <버드>는 찰리 파커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와 약물 중독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모습, 그리고 짧은 생애 동안 그가 지나온 음악적 여정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나온 색소폰 연주는 실제 찰리 파커의 연주를 삽입했고, 전문적인 연주 연기는 색소포니스트 찰스 맥퍼슨이 맡았다. 사운드트랙은 찰리 파커가 연주한 빠른 템포의 비밥 ‘Ko Ko’와 ‘Laura’, ‘April in Paris’등이 삽입되었으니 영화를 보며 다양한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을 듯하다. (이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포레스트 휘태커는 1988년 41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시간의 새는 날 수밖에 없으니 새는 날아가야만 한다네...”("The bird of time has but a little way to flutter, and bird is on the wing...") - 영화 ‘버드’에서
<마일스>(Miles Ahead, 2015)는 제목 그대로 마일스 데이비스에 관한 영화다. 일부 설정이나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롤링스톤’의 기자 데이브 브레이든 같은 인물은 허구지만, 돈 치들이 연기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행동이나 극 중 가지고 있는 고민들 모두 사실과 기록에 기반한 것이다. 편집적으로 영화는 두 시점을 번갈아가며 제시하는데, 이는 개인에 따라 난맥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필자는 이를 마일스가 가지고 있는 혼란스러움과 후회, 그 다양한 감정에 대한 파편적 제시라고 본다. 감정은 정해진 상황에서 일정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기에.
허비 행콕, 웨인 쇼터, 개리 클라크 주니어, 로버트 글래스퍼, 안토니오 산체스, 에스페란자 스팔딩.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그리고 키언 해롤드가 트럼펫을 연주했다). 이들이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재즈가 여전히 낯선 곳을 향해 부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아직 클래식이 아니다. 앞선(ahead) 공간에서 다른 음악들과 조우할 뿐.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그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 그의 모습처럼.
“이야기를 하려면 자기 개성이 있어야지. 진부한 것은 집어치우고...”(“If you're going to tell a story, come with some attitude, man. Don't, you know... Don't be all corny with this shit.”) - 영화 ‘마일스’에서
재즈 아티스트가 그 자체로 재즈를 연주한다고 표현한다면, 그를 연기하는 배우는 그 자체로 재즈를 연기한다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재즈 아티스트들이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음악에 투영된 그들의 삶을 한층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음악을 아티스트의 생애에 대한 흔적으로 봤을 때, 그 흔적을 주변인들의 진술과 조합하여 그들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삶을 대하는지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버드>의 감독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을 맡은 다큐멘터리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Straight, No Chaser, 1989)에서는 델로니어스 몽크의 기행과 세상을 떠난 그에 대한 후일담을 동료와 주변인들에게 들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베리 해리스와 토미 플라나건이 ‘Misterioso’나 ‘Well, You Needn’t’등 몽크의 곡을 함께 연주하며 그의 영상과 함께 생전의 그의 모습을 복기한다. 그리고 공연에서의 모습과 일상적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던으로 치닫던 시대에 이미 포스트모던으로 향한 몽크의 기행과 음악이 궁금하다면 기꺼이 권한다.
<나는 모건을 죽였다>(I Called Him Morgan, 2016)는 하드밥의 명인이자 지금까지 재즈 애호가들에게 회자되는 명반 ‘The Sidewinder’의 리 모건이 아내 헬렌 모건에게 살해당한 이야기 대해 다룬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날의 끔찍한 사건과 더불어 리 모건이라는 인간에 대한 회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날에 대한 진술로 모이기에는 온전치 못한 조각들이 존재하고, 결과적으로 그 빈 조각들을 리 모건의 음악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겨둬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재즈, 영화에서 꺼내 듣다 – 스크린에서 만난 재즈 아티스트>는 다음 연재에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