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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Feb 25. 2020

평전을 읽는 마음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을 읽으며 든 생각

평전을 마주할 때 내가 드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인물에 대한 경외감과 평전 자체에 대한 경외감.


 [빌 에반스 : 재즈의 초상](피터 페팅거 저, 황덕호 옮김/을유문화사)의 저자 피터 페팅거와 역자인 황덕호 님 같이 나 역시 빌 에반스의 음악으로 재즈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들었던 빌 에반스의 연주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번역된 평전(원서의 제목은 How My Heart Sings. 얼 진다즈가 작곡했다)과 동명의 앨범 [Portrait in Jazz]의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이었다. 이 곡의 원작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사운드트랙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알았고, 대중적인 곡들을 기시감의 범주에서 끄집어내어 ‘익숙함으로부터 재창조’하는 능력은 여간 비범한 능력이 아니라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는 그 어떤 편견 없이 음악을 솔직하게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는 계속 재즈를 들으며 그게 얼마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지를 매번 느껴왔다. 이러한 음악적으로 순수한 접근에 대해 책에서는 빌 에반스가 이야기한 ‘보편적 음악적 심성’을 언급한다.


“난 평범한 사람들의 견해가 직업적인 음악인의 것보다 음악을 판단함에 있어서 덜 타당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난 종종 직업적인 사람들보다는 감수성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판단에 더 귀를 기울이는데, 그 이유는 직업적인 음악인들은 음악의 메커니즘에 늘 매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순수한 감정을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서야 한다.”(p.375 ~ 376)

 

 이처럼 그의 순수성은 본질과 맞닿아있고, 동시에 그는 스스로의 음악을 장르적(재즈나 클래식이라는 개념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 “여러 양식들과 내가 속해 있는 전통 안에서 가장 총체적인 음악적, 인간적 표현이 무엇일지를 고려할 뿐”(p.571) 외부에서 생산된 기표로 자신의 음악을 검열하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그의 음악과 존재감은 현재까지 이토록 독자적이며 독보적이다.

Bill Evans

 다양한 분야의 거장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골자는 대부분 비슷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이 평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것들, 본질, 그것은 위대한 것”(p.50)이라는 믿음이자 명제이며, “기교란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줄 때 비로소 본질적으로 그 궁극에 와있는 것”(같은 쪽)이고 “위대한 예술가는 사물의 심성에 정확히 다가간다”(같은 쪽)는 확신이다.

 이 아득하고 경외로운 한 예술가의 세계를 우리는 재생버튼만 누르면 만날 수 있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공연한 세상이다.


Bill Evans -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Quiet Now' (Denny Zeitlin)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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