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 9월
코로나19와 함께 하게 된 계절이 쌓여갑니다. 가을의 문지방 앞에 가까워지는 모양새가 아직은 멋쩍은 9월입니다. 코로나19가 잡기 싫은 손을 놓지 않고 있으니 왠지 여유가 없고 무언가 뺏긴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유별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에게 9월은 어딘가 분기점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추가 적당히 지난 시점이기도 하고 생일이 껴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올해 생일에는 조금은 특별한 전야를 보냈습니다. 바로 김희준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자리에 간 것입니다. 낭독회는 아무래도 코로나19로 인해 조심스러운 상황이니 소수의 인원으로 이뤄졌습니다. 그의 첫 시집이었기에 시인과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시인의 육성을 들을 순 없었지만 그가 우리의 낭독을 듣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죽음을 애달아하고 비통해하기보다는 생전의 그와 같은 열도를 지닌 시집을 한 글자씩, 한 단어씩, 한 문장씩 읊어보는 자리이자 느슨하게 얽힌 기억 속에서 시인을 더 뚜렷하게 위치시켜보는 시도였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시인의 이름과 시를 작게 읊조릴 수 있으니까. 이처럼 요즘도 때때로 다시 불러보는 이름이 있습니다.
생일날에는 엄마와 나, 누나와 막내 단이가 함께 김밥 두 줄을 포장해 주말의 도로로 나섰습니다. 한참을 달려 산의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 도착한 곳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마 추석을 앞둔 주였기 때문이겠죠. 아빠는 변함없이 그 자리, 그 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 밟는 단계는 조금 길어졌습니다. 줄을 서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받고,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찍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아빠가 여기 말고 내 옆에 있었다면 생각해보기도 하고 차라리 산소(山所)가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면 아빠의 등을 안아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벌초할 때 제초기가 풀을 베면 나는 냄새가 어쩐지 풀의 비명 같기도 하여 그 생각도 그만둡니다. 아빠를 작은 창밖에서 바라보며 눈인사와 마스크처럼 갇힌 말을 나눕니다.
납골당을 나오면 앞에 있는 수목장이 보입니다. 이제 막 허리를 펴보려는 어린나무도 있고(그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할 테죠.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두고 간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무의 생명은 더 뚜렷해지는 건 왠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고개를 한참 들어야 눈 마주칠 수 있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 여리거나 우직한 흔적들 뒤로 산등성이 곳곳에 발그레한 반점이 옅게 눈에 띕니다. 마스크 뒤편의 입으로 어떤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대개는 이곳에 없는 사람들을. 엄마도, 누나도, 단이도 모르게.
가을이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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