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 이전에 샤카 칸이 있었다.
모두에게 시작하기 전 단계가 있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 재즈를 좋아하기 전 단계 말이다.
나는 재즈를 찾아듣기 전에는 한 장르를 찾아 듣는다기보다는 몇몇 아티스트의 음악을 집중해서 듣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그 아티스트가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아티스트로 영역을 넓혀가는 식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음악적 애호에 뿌리가 되는 아티스트는 김조한이었다. 맞다. 솔리드의 김조한. ‘천생연분’, ‘이 밤의 끝을 잡고’를 부른 그 가수. 확실히 내 세대의 음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종종 다른 번지수로 찾아오는 음악들에 강하게 끌림을 느끼는 경험을 아마 한 번쯤은 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내게는 그 음악의 주인이 바로 그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좋아해서 즐겨듣는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후 내가 얻게 된 능력은 솔리드와 김조한 음악의 전주를 1초만 듣고 어떤 곡인지 맞추는 어딘지 신통방통한 것이었으니… 아마 예사스럽게 들은 정도는 아닌 듯하다. 당시 나는 김조한의 팬클럽이었던 ‘소울패밀리’에 가입했으나 아티스트의 활동에 비례해 잠잠한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무튼 김조한의 음악이 내 몸속에 들어온 순간을 비교적 생생히 기억한다. 그건 내가 2008년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방에 들어와 과외 숙제에서 도망쳐 MP4로 DMB를 보고 있는데, 진한 선글라스 낀 남성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 너무도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는 것 아닌가(‘이 밤의 끝을 잡고’였다). 멜로디를 그리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과 애드리브. 그건 정말 그동안 라디오에서 듣거나 다운로드해서 듣던 음악과는 분명 달랐다. 아마 그때도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음악을 이렇게 멋대로 불러도 되는 거야? 그런데 멋대로 부르니까 진짜 멋진데? (글을 쓰며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해당 공연 영상을 다시 보니 곡 중간과 말미에 재즈적인 화성이 가미되어 있다. 이러니 안 좋아했을 수가!)
그렇게 놀라움에 가까웠던 김조한 음악과의 첫 만남 이후 3년, 당시 한참 주목받던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에 김조한이 나온다는 사실을 접했다. 인터넷이나 전자기기 사용에 보다 자유로워진 나는 음원을 다운로드해 듣고, 이후에는 유튜브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김조한이 그때까지 발매한 앨범(솔리드로 활동할 당시 앨범을 포함하여)을 닳고 닳도록 (물론 MP3 파일로 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들었다. 여력이 되면 EBS 등 무료로 공연하는 곳에 찾아가서 보기도 했다.
그때 들었던 김조한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무대마다 멜로디를 쌓고 발화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대할 수 있었고, 찾아들을 수 있었다. 음원이 아니라 무대를 찾아보게 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이스 공감>, <텔레 콘서트>, <이소라의 프로포즈>, <MTV 더 스테이지> 등 같은 곡을 불러도 모든 무대가 다른 건 매번 다른 곡을 듣는 경험과 다름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내가 아는 멜로디가 있었다. 그래서 김조한이 매번 전해주는 새로움은 낯선 것이 아니었고, 매번 반길만한 무엇이었다. 그런데 이 반가움을 의외의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재즈였다.
김조한의 음악은 큰 틀에서 (일반적인 진행의) 재즈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구심점이 되는 멜로디(재즈에서는 헤드 멜로디)가 있다는 사실과 연주자들이 그 멜로디에서 뻗어나가 솔로나 애드리브를 통해 악보에 쓰여있는 것과 다른 걸 들려준다는 것, 그리고 다시 원래 멜로디로 돌아와 끝난다는 점까지(게다가 알앤비/솔 음악과 많은 재즈 음악이 블루스 기반이라는 너른 공통점도 있다). 또한 재즈 연주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이자 즉석에서 호흡을 맞춰 연주하는 ‘잼 Jam’이라는 개념 역시 김조한 덕분에 처음 알게 됐다. 그가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나와 종종 ‘잼’을 선보인 덕분이다(그중 주목받았던 것은 윤도현, 박정현과 각각 함께한 무대다). 이처럼 김조한의 음악과 재즈는 얼마간의 친연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친연성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뿌리가 됐다는 사실은 나 역시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게 김조한의 음악을 찾아 듣던 어느 날,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온 김조한이 자신이 즐겨 듣는, 혹은 영향을 받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중에는 ‘샤카 칸’이라는 이름의 아티스트도 있었는데, 그의 음악 중 찾아듣게 된 곡이 ‘쓰루 더 파이어 Through the Fire’와 ‘마이 퍼니 밸런타인 My Funny Valentine’이었다. ‘쓰루 더 파이어’는 피보 브라이슨의 리메이크 버전과 칸예 웨스트가 이 곡을 샘플링한 ‘쓰루 더 와이어 Through the Wire’로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마이 퍼니 밸런타인’은 아니었다.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의 편곡에 샤카 칸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뇌리에 박힌 이 곡은 앞으로 수도 없이 듣게 될 ‘재즈 스탠더드’의 서막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쳇 베이커의 그것보다 샤카 칸의 ‘마이 퍼니 밸런타인’을 먼저 접했다.
두 곡은 완전히 다른 곡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널리 알려진 1954년작 [Chet Baker Sings]에 수록된 버전을 기준으로, 쳇 베이커는 잔잔한 분위기에서 특유의 미성으로 시종 읊조리듯 노래하고 편성도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미니멀하다. 반면 샤카 칸의 ‘마이 퍼니 밸런타인’은 초반부부터 전자 건반과 묵직한 드럼, 스트링 세션까지 등장하면서 좀 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이는 영화(<사랑을 기다리며 Waiting to Exhale>)의 사운드트랙이었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 샤카 칸 특유의 울부짖는 듯한 발성은 아예 ‘우리는 서로 다른 곡이다!!’라며 소리치는 듯하다.
재즈 스탠더드는 이처럼 아티스트에 따라 아예 다른 곡처럼(심지어는 장르마저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바뀔 수 있고, 또 어떤 곡이든 (재즈) 아티스트 사이에서 널리 연주되고 그것이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다면 재즈 스탠더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넓은 의미의 재즈 스탠더드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의 상상력까지 자극한다. 이런 점은 앞서 김조한 음악에서 발견한 재미와도 상통한다. ‘이 아티스트가 이 곡을 연주한다면 어떨까?’하는 궁금증. 그리고 아티스트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구축할 때의 도전정신. 이런 것들이 들어보지 못한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 이는 피아노 연주자 빌 에반스가 가장 잘 하던 일 중 하나였다.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나 TV 드라마 주제가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포함시키고 이를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말하면서 빌 에반스는 스스로의 연주 세계를 확장시켰다.
듣는 이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내가 음악을 들으며 지금껏 한 일은 ‘같은 곡의 다른 버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새로운 아티스트와 음악을 찾은 것일 테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계속해서 기존하는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게 재즈의 세계와 재즈 스탠더드의 세계는 그렇게나 깊고 넓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의 연원에는 김조한이라는 아티스트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만에 기억에 깊게 남아있는 그의 곡들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혹시 아나? 언젠가 김조한의 곡을 재즈로 아주 멋지게 연주하는 아티스트가 나타날지. 아마 그러면 난 헤드 멜로디가 연주될 때부터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있다가 솔로가 시작할 즈음에는 이미 바닥에 누워있을지도 모른다. 음악의 바다에서 헤엄치듯이.
* 알앤비/솔 가수 김조한의 면모를 더 알고 싶다면 1집 [Jo Han](일부 플랫폼에서는 [Kim Jo Han]으로 표기되어 있다)의 2번 트랙 ‘널 위해 준비된 사랑’과 5집 [Soul Family With Johan]의 1번 트랙 ‘말해줘 (You Are My Everything)’를 추천한다. ‘말해줘’는 타이거 JK가 작사했다. 나는 지금도 김조한이 이 곡을 다시 불러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