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촌스러운 내가 좋다

by 김은미


어릴 적부터 나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항상 동네 시장 아니면 세일품목만 사고 어쩔 수 없이 정가를 주고 사야 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검소함은 몸에 베여 살았으며 사실 그것에 대한 불만도 딱히 없었다. 오히려 좋은 물건을 싸게 사게 되면 동네방내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여유롭지 못한 환경이라는 걸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특히 대학생이 되고 레슨을 하러 다른 집에 방문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우리 집보다 잘 사는 사람들 큰 집에서 자유롭게 돈을 쓰고 비싼 물건들을 소비하고 배우는 것에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게 되었다. 아, 나는 넉넉하지 못했구나..라고


사실 유학을 결심한 시기에 나는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 관현악과를 다니면서 레슨을 수도 없이 뛰어다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던 게 당연했다. 방과 후 학교 강사, 호텔 연주, 행사 등 뭐든지 감사하며 열심히 해 나갔다. 우리 집에서는 나를 유학 보내줄 만한 여유가 없으셨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게 되었다. 유학을 갈 수 있다는 오로지 그 꿈을 향해 나아갔다. 오직 열정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모은 작지만 나에게 엄청나게 크고 귀한 돈을 가지고 오디션을 보고 꽤 많은 장학금을 받고 유학길에 올랐다.


아직도 그 당시가 생각난다. 너무나 설레하며 그 과정을 즐겼던 나를..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던 내 모습을, 그런 나를 기억한다.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나에게 그냥 공부는 더 하지 말고 시집을 가면 안 되겠냐고 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유학 가기 일주일 전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기분이었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는 내가 부모님이 보시기엔 좋지 않아 보이셨나 보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 재즈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나는 더 크게 다짐했다. 큰 사람이 되겠다고. 멋진 뮤지션이 되어야겠다고..


그렇게 나의 유학생활은 시작되었고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그 길지 않았던 시간에 나는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보스턴에서 지낼 때 항상 웃고 다녔던 나를 기억하는 사람에 많았다. 가끔 동문들을 만나면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꽤 만나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그만큼 즐겁고 열정 넘치던 때가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학 가기 전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며 도장 깨기처럼 했던 재즈릭들과 찰리파커 옴니북, 재즈 스탠더드곡들, 클래식에서 재즈로 넘어오며 너무 힘들어했던 코드톤과 스케일 연습들,, 매일매일 연습일지를 적으며 유학의 꿈을 키웠던 그때의 나를 격하게 칭찬해주고 싶다.


그래서 생각했다.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의지와 열정을 가지면 뭐든 할 수 있고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걸.. 할 수 있다!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그때의 나를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Berklee College of Music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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