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이 만든 다양성, 문화의 톱니바퀴
저는 1974년생, 올해 한국나이로 52세인 대구출신 남자입니다. 이승환와 신해철의 음악을 좋아하던 저는 90년대 중반 군악대 소조밴드 건반연주자로 장교들의 술자리에서 뽕짝을 밤마다 연주했었습니다. 허비 행콕, 빌 에반스, 듀크 엘링턴을 좋아하던 재즈매니아에겐 정말 고역이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문득 어느새 TV의 스테디셀러가 된 '트로트'의 정체를 감지했습니다. 지금 60-70대가 된 저의 부모, 삼촌, 이모 세대가 젊은 시절 듣던 바로 그 음악이 레거시 미디어의 주류가 된 것입니다. TV라는 매체가 이제 그들만의 전유물이 되면서,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진 고객층에 맞춘 '트로트' (제가 극혐하는)라는 콘텐츠가 범람하게 된 셈입니다.
생각해보면 대중음악사는 곧 '세대 저항사'인것 같습니다. 1960년대 통기타를 든 포크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의 트로트를 거부했겠죠. 미국에선 전쟁 반대, 자유로운 사랑, 자연과의 조화, 예술과 음악을 통한 자아 표현이 중심이었던 '히피문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봅니다. 김민기, 한대수로 대표되는 그들의 음악은 기성세대의 한탄조 가락과는 완전히 다른, 저항과 성찰의 언어였죠.
1970~80년대 록 세대는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산울림, 들국화의 사운드는 포크의 서정성마저 답답해하며 더 독특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X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기성세대에 대한 뚜렷한 저항을 드러냈습니다. 「난 알아요」로 가요계를 뒤흔든 그들은 「교실 이데아」를 통해 입시와 권위적 교육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청소년 세대 (당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생)가 더 이상 순응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음악으로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통찰이 등장합니다. 모든 세대는 앞선 세대를 부정하고 저항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문화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입니다. 74년생인 제가 권위주의적 문화—체벌이 일상인 학교, 나이 서열을 절대시하는 선후배 문화—와 함께 그 세대의 상징인 트로트까지 거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단순히 음악적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세대의 문화 전반에 대한 거부감이 음악이라는 가장 감각적인 영역을 통해 표출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1990년대 X세대들이 통기타 포크음악을 '진부하다'며 외면하고 록과 펑크, 댄스음악으로 향했던 것, 2000년대 초반 젊은이들이 발라드 일색의 음악 시장에 지루해 하며 힙합과 R&B에 열광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패션과 헤어스타일까지 음악과 함께 저항의 도구가 됩니다. 록 세대의 긴 머리, 힙합 세대의 루즈핏 패션, 인디 세대의 빈티지 룩까지, 모두 기성세대의 '단정함'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었습니다. 저도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해서 길게 기르고, 귀걸이를 하고 청바지를 찢어서 입고 다녔으니까요 :)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젊은 세대(90년대~00년대 출생자)가 영포티, X세대와 586세대를 적대시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X세대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에 열광했다면, 지금의 2030은 그 모든 것을 '아재 감성'으로 규정하며 거부할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성별 차이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20~30대 여성은 X세대들의 진보적 성향에 공감하며, 탄핵 정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이는 권위주의와 남성 중심 권력 구조에 대한 반대의식과 연결됩니다. 반대로 같은 또래 남성들은 기성세대(X세대, 영포티, 586)에 반대하며 진보적 가치보다 권위와 힘을 동경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2025년, 요즘 젊은 세대의 음악 취향을 X세대 아재가 봤을 때, 장르의 경계가 무너진 하이브리드 사운드와 짧고 강렬한 훅 중심 곡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K-팝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히 소비되고, 국내 젊은이들은 더 개성 있는 음악이나 새로운 스타일을 더 선호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다양성이 많아지면 음악을 쇼핑하는 맛이 더 생기죠. 전체적으로 이들의 음악적 선택은 저항보다는 다양성과 자기 개성, 감성적 몰입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저항이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록에 익숙하지 못했던 트로트 세대, 포크를 구닥다리로 여겼던 록 세대, 발라드를 시시하다고 하고, 트로트를 혐오하던 힙합 세대. 그리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H.O.T·핑클·S.E.S 같은 획일적 아이돌보다는 뉴진스·르세라핌 같은 글로벌 아이돌, 힙합·R&B 아티스트, 인디 뮤지션을 선호하며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합니다. 모든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전 세대를 부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이런 세대적 이견이 살짝 더 복잡한 양상을 보입니다. BTS, 블랙핑크, 케데헌으로 대표되는 K-팝의 성공을 두고도 세대 간 해석이 엇갈립니다. 기성세대는 '한국의 자랑'으로 받아들이지만 (뭔가 촌스러운 느낌?), 정작 젊은 세대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접근합니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세대별로 다른 것입니다. 80~90년대 한국의 X세대는 일본을 기술과 문화의 선진국으로 바라봤지만, 2020년대 일본의 젊은 세대는 오히려 한국을 더 역동적이고 선진적인 문화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화는 이런 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한 세대의 반항이 다음 세대에게는 기성세대가 되고, 그 다음 세대의 반항 대상이 되는 영원한 톱니바퀴 같은 구조 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문화적 저항이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사회 전체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트로트를 혐오했던 그들이 새로운 장르를 통해 그들의 음악 세계를 다시 구축했듯이, 각 세대의 반항은 새로운 문화적 영역을 개척하는 동력이 됩니다.
실제로 한국 대중음악의 풍요로움은 바로 이런 세대적 저항과 다양성의 결과같습니다. 트로트, 포크, 록, 발라드, 힙합, K-팝이 공존하는 지금의 음악 생태계는 각 세대가 이전 세대에 저항하며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