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이고 기본적인 협상전술
필자가 20살이었던 1993년, 대박을 터트렸던 한국영화 '투캅스'가 있었습니다. 주연은 안성기, 박중훈 배우였습니다. 당시 교통위반을 하면 만원짜리 한장을 접어서 당연한듯 교통위반 딱지밑으로 건네주곤 하시던 어른들, 멋진 싸이카 (할리 데이비슨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친구 아버지가 교통경찰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던 뒷 이야기, 면허를 따고 얼마되지 않아 엄마차를 운전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단속되었는데 "죄송합니다. 한번만 봐주세요." 라고 했더니 "만원짜리 한장없니? 학생? 그럼 5천원 짜리도 없냐? 없어? 그럼 가!" 라고 했던 경찰 이야기가 넘쳐나던 즈음 이런 비리경찰을 다룬 정말 통쾌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비리형사였던 선배형사의 행태를 상부에 고발하려고 했던 후배형사를 기선제압하려고 관내에서 유명하던 거친 절도폭력 상습 용의자의 취조를 후배형사에게 맡겼던 장면입니다. 그 용의자가 자신의 얼굴을 타자기로 때리며 자해하자 박중훈이 연기했던 후배형사는 매우 당황했죠. 그때 안성기가 연기했던 선배형사가 경찰서장과 함께 취조실로 들어옵니다. 경찰서장은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용의자를 작살을 내놓는거야? 저 놈 당장 잘라버려!" 라며 피투성이가 된 용의자를 보고 격노합니다. 선배형사는 후배형사에게 은밀한 제안을 합니다. "내가 이일을 무마시켜 줄테니 자네도 고발을 취소하지. 어때? 싫어?" 라며 용의자와 둘만 있던 취조실에서 자신의 얼굴을 타자기로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악! 이 자식이 경찰을 때린다!" 극장에서 보며 정말 박장대소 했었습니다. 투캅스에서는 전형적인 Good Cop, Bad Cop 모습이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형사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 어두침침한 취조실에 싸구려 접이식 의자, 살짝 흔들리는 백열등, 타자기나 노트북이 있었죠. 취조실에서는 거울같이 보이고 옆방에서는 유리창처럼 취조실을 볼 수 있는 매직미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품이었습니다. 처음 등장하는 형사는 우락부락하거나 날카로운 공격적인 형사입니다. 위협적으로 계속 몰아붙이죠.
Bad cop : "야! 이리와서 앉아봐. 똑바로 앉아야지. 경찰서가 너네 집이야? 이건 뭐 인상부터 범인이네. 빨리 인정하고 쉽게 쉽게 가자."
Good cop : "정말 형님같아서 얘기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큰일나요. 빨리 인정하실 건 인정하세요. 그게 더 좋을 겁니다."
Bad cop : "야. 18 뭔 범죄자 얘길 다 들어주고 있어. 빨리 마무리하고 구속영장 신청해."
Good cop : "저 형사 (Bad Cop)완전 또라이에요. 요즘 한참 독기가 올라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예전 비슷한 사건들도 다 구속영장 발부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빨리 인정하고 가시죠. "
결찰조사에서 실제로 많이 쓰이기도 하고, 형사영화에도 많이 나와서 유명해진 Good cop, Bad cop 전술입니다. 매섭게 몰아부치다가 부드럽게 해주는 것에 심리적으로 훨씬 더 안도감을 느끼며 복종하게 되는 겁니다. 인질이 납치범에게 친근함을 느껴 경찰을 적대시하는 '스톡홀름 증후군'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1973년 발생했던 '스톡홀름 크레디트반켄 은행 인질 사건'에서 납치범들은 인질들을 협박하는 동시에 친절한 모습을 보이며 그들을 정신적으로 완전히 복종시켰던 겁니다.
군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많죠. 90년대 중반에 군생활을 했던 필자는 상당히 가혹한 괴롬힘과 폭행을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상병 말호봉 정도의 중고참이 부대의 '군기'를 담당했는데 수시로 집합시켜서 군화발로 가슴팍을 걷어차고 싸대기를 날리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었습니다. 특히 처음 경계근무를 올라갔을때가 생각납니다. 유독 추웠던 겨울이었는데 속옷에 내복, 츄리닝에 전투복, 깔깔이위에 야상과 스키파카까지 껴입고 겨울산위 초소로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중고참이 계속 뭔가 암기사항을 확인했고 대답을 못하면 K2 소총 개머리판으로 철모를 사정없이 가격하곤 했죠. 2시간동안 경계근무를 서며 시달리다가 생활관에 내려오면 총기와 여러 준비물들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새벽에 30분이상이 훌쩍 더 지나가버리죠. 그때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말년병장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저의 손에 나무젓가락과 함께 쥐어주며 군팔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려주면 감동의 눈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중고참을 Bad cop이었고, 병장은 Good cop이었죠. 필자는 당시 그런 가혹행위가 싫어서 중고참, 병장이 되었을때 편하게 부대원들을 풀어줬습니다. 억지로 축구를 시키지도, 꼬투리 잡아서 가혹행위를 하지도, 휴가 나갈때 꼬투리 잡지도, 복장&청소상태로 기합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제말만 안듣고 무시하더라구요. 리더는 당근과 채찍은 당연히 잘 이용을 해야하는가 하며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군주는 사람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라는 구절에 공감하면서요.
부모자식간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자식이 잘못했을때 동시에 같이 야단치는 부모는 잘 없을 겁니다. 아버지가 엄하게 야단치며 회초리를 들면 어머니가 안아주며 달래고, 어머니가 엄하게 야단치며 회초리를 들면 아버지가 안아주며 달래주겠죠. 독자 여러분도 그때 더 서럽게 울음이 나고 흐느꼈던 경험을 많이 하셨죠? 사회생활 초반에 모 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임원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함께 출장을 다녀오며 중학생이었던 자신의 딸을 데리러 가던 길에 "직원이나 자식들은 한번씩 정기적으로 없던 구실도 찾아서 따끔하게 조져줘야지. 안그러면 기어올라서 안돼!" 라며 자신의 지론을 설파했었습니다.
영업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15년전 필자가 재직했던 회사에서 납품한 제품에 큰 불량이 났다던 소식에 급하게 50대의 연구소장과 함께 해외고객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품질불량건 이라고 하더라도 고객입장에서 해외공급사가 자신의 회사를 힘들게 방문해온다면 너무 과도하게 몰아붙이지는 않는 것이 관례인데 그날은 정말 보자마자 담당자가 험악한 분위기로 불량사진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화이트보드에 불량인 이유와 피해액에 대해서 1시간가량 날카롭게 파고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역할이 Bad cop이었던 거죠. 그때 30대 중반이었던 필자는 넘치는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가 정성스럽게 써놓은 화이트보드 필기내용을 지우개로 우악스럽게 지워버린후, 불량의 증거라고 가지고 온 이미지의 헛점을 하나하나 파고 들었습니다. 50대인 지금 생각해보면 고객에게 너무나도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게 대응했던 모습인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게 Bad cop의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같은 레벨(직급)의 고객 담당자와 노려보며 씩씩 거리고 있던 막후에서 연구소장님은 상대방 임원과 흡연실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지 않았을까요? "우선 함께 방문한 당사 영업담당의 무례하고 거친 태도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50대인 우리도 20년전엔 저랬지 않았을까요? 젊은 혈기에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을 적절하게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당사의 김과장이 주장한 내용을 잘 보시면 수긍하실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번 불량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힘들겁니다. 장비의 문제, 공구의 문제, 오퍼레이터의 문제, 소프트웨어의 문제등 규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죠. 고객사 담당자분의 주장대로만 압박을 하신다면 당사내부의 공격적인 인사들이 수사의뢰등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수도 있습니다. 상호책임을 최소화하는 절충안을 이사님과 제가 함께 만드는 것이 어떨까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