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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강사 Oct 03. 2023

영업사원과 사업가의 명함

비즈니스 협상의 기초 '핑계대기' (Feat. 영화 '독전')

필자가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재직할 당시의 일입니다. 영업사원이 고객사의 담당자를 만나려면 '명함'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제 직급이 대리였는데 명함의 직급은 '과장'이었습니다. '과장'은 '차장'으로, '차장'은 '부장'으로, '부장'은 '이사'나 '상무'로 명함을 만들던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고객사 담당자와 미팅을 할때 직급이 낮으면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거나 직급에 맞는 하위직만 만나야 하기 때문에 영업전략차원에서 지금도 이렇게 많이 할 겁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은 진급 기준이 불명확해서 나이나 경력에 비해 직급이 높기도 합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보이고, 직급도 높으면 소위 말빨이 더 잘 먹히기도 할겁니다. 이렇게 영업사원들은 비즈니스 협상시에 더 영향력을 높히기 위해서 실제 직급보다 더 직급을 높이곤 합니다. 그렇다면 사업가들은 어떨까요?


필자는 2012년부터 올해 2023년까지 약12년간 전국 각지역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KOSME)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창업마케팅,세일즈' 교육과 멘토링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지원대상은 신청 접수일을 기준으로 만 39세 이하의 예비창업자입니다. 대부분 30대의 젊은 창업자분들이시죠. 그분들과 명함을 주고 받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업경험이 없는 대표님들과 영업경험이 있는 대표님들의 명함내 직급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영업경험이 없는 대표님들의 명함에는 '대표', '대표이사'등 말그대로 회사의 대표, 사장을 나타내는 직급이 있는 반면, 창업전 직장에서 영업경험이 있는 대표님들은 다른 직급이 적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맞춰보세요. '영업팀장, 실장, 영업부장, 마케팅 이사'등의 직급이 적혀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객과 만나 영업을 하면 처음엔 서로 깍듯하게 대하며 관계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의 나이, 고향, 학교, 군대등 배경을 조사하며 서열을 정합니다. 제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닐때 한번씩 놀이터에 데리고 가보면 처음 만난 아이들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도 '나이'였으니까요. 자기가 나이가 한살이라도 많으면 여섯살짜리가 다섯살짜리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젊은 사업가들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다보면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방이 대부분일겁니다. 처음엔 깍듯하게 하다가 나이가 어린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협상과정에서 상당한 압박이 끊임없이 이어질 겁니다. "OO씨가 사장이잖아. 이번에 10% DC로 갑시다. 한두해 볼사이도 아닌데 왜 이래? 내가 고향선배잖아. 다음번에 좀더 챙겨줄게. 유도리있게 하자! 좀..." 이런 압박이 들어오면 상당히 난감할 겁니다.  자신이 '최종결정권자'인 사실을 들켜버렸으니까요. 여기서 영화한편이 생각납니다.

<직접 그린 삽화 : 독전>

5년전인 2018년 재미있게 상당히 재미있게 봤었던 '독전'이라는 한국영화입니다. 2023년 11월17일, 2편이 넷플릭스에서 공개예정이라고 하네요. 아래 내용은 영화 독전의 스포일러가 있느니 주의하세요!(스포 주의!!!) 이 영화는 마약조직을 추적하는 형사이야기인데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은 '이선생'의 존재입니다. 영화 끝까지 과연 '이선생'은 누구인지 궁금증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선생'같아 보였던 악역들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종반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마약조직의 두목 '이선생'은 1995년작 미국영화 '유쥬얼서스팩트'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연기했던 절름발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정상인의 걸음걸이로 돌아오며 범인이었던 '카이저 소제'로 드러났던 것처럼 불쌍하고 순수해보이면서 어수룩해보였던 '락'(류준열)이었던 겁니다. 락이는 왜 자신이 두목이라는 사실을 숨겼을까요? 나이 어린 자신이 두목임을 드러내는 것 보다 정체를 숨겨 뒤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인 동시에 책임도 쉽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겠죠?


젊은 사장님들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자신이 '최종결정권자'인 사실을 들켜버리면 물러설 곳이 없어지고 선택지도 줄어듭니다. 그러면 여기선 어떤 비즈니스 협상전략이 필요할까요? 바로 '핑계대기'전술입니다. '핑계'의 사전적인 뜻은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화 '독전'의 '락'이 처럼 자신이 '이선생'임에도 불구하고 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연기하는 겁니다. "공급가를 좀 할인해줘요!"라는 압박에 다른 핑계를 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핑계를 대는 것이 좋을까요? 만약 "전 영업팀장이라 결정권이 없습니다."라고 하면 결정은 누가 하냐고 집요하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를 특정하게 된다면 그에 대해서 확인하는 과정에 자신의 거짓핑계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 구체적인 대상보다는 모호한 단체나 조직, 외부인이나 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20여년전 필자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현업에서 영업을 할때도 고객사의 이러한 압박이 많았습니다. 가격이나 납기에 대한 상대방의 압박을 영업상무 혹은 자사 대표의 결정여부로 핑계를 대기도 했는데, 잠깐 시간줄테니 바로 그에게 확인을 하라거나 연락처를 주면 바로 확인해보겠다고 저를 DMP (Decision Making Process)에서 제외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협상 상대방인 저를 어린 나이와 부족한 경험때문에 무시했던 처사였죠. 많은 미팅과 협상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대처방법도 변해갔습니다. "고객님도 잘 아시다시피 조직이란 한사람, 한 부서의 결정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혹여 이 자리에서 제시하신 가격이나 납기를 제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해당가격은 '국내영업팀'의 입장에서 반발이 나올 것이고 해당납기 조건은 '생산팀'에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겁니다. 아울러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환율 변화로 인해 공급가를 더 인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가격으로 진행가능하다는 점은 오랜 기간 유지해온 고객님과의 관계를 고려한 당사의 결정입니다. 부디 양해부탁드립니다." 같은 대응으로 점차 자연스럽게 적응해 간 것 같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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