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세일즈,마케팅의 주요기준
1998년 대학교 복학생이었던 필자는 티벳과 네팔에서 한국으로 들여온 구리와 은으로 된 반지, 팔찌등 여러가지 악세사리들을 와와(Waawaa.com)와 옥션(Auction.co.kr)같은 초창기 온라인판매 사이트와 본인의 홈페이지에서 판매한 경험이 있습니다. 90년대 후반의 초창기 디카로 찍은 상품사진을 어설프게 편집해서 올린 게시물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해서 놀랐었죠. 개인 홈페이지 방명록의 게시물로 주문하고 선입금을 하면 봉투에 넣어서 우편으로 보내드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대학생 입장에서 한달에 몇십만원 정도의 수익이 나오는 쏠쏠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렇게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던 중 문제나 하나둘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지를 끼면 손가락에 초록색으로 자국이 남기도 하는 상품의 문제, 주문하고 선입금했는데 관리를 제대로 안해서 배송이 누락되는 일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해서 고객들의 불만이 폭주했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B2C 비즈니스는 제품의 불량이나 운영의 미숙이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제한적이지만 소재, 부품, 장비, 공구등의 B2B 비즈니스의 경우는 어떨까요?
2011년 5월,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와 피스톤 사이의 압력과 가스를 막고, 열은 잘 전달하며, 윤활유는 새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 반지처럼 생긴 피스톤 링 공급문제가 터졌습니다. 당시 캠샤프트, 실린더 라이너, 피스톤 링 등의 엔진용 부품들을 국내 자동차 생산업체들에게 80%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공급하던 '유성기업'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근무방식과 임금체계 변화를 두고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던 '유성기업'의 노조가 파업을 했던 겁니다. 피스톤 링의 가격은 1개당 1~2천원에 불과했지만 국내외의 많은 자동차 생산업체의 라인을 멈춰버릴 수 있는 엄청난 생산차질 사태로 커져버렸던 거죠. 당시 유성기업의 1일 매출이 5억원 정도였는데 납품중단에 따른 손해배상액은 하루에 2~300억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의 관계, 정부의 노동관련 정책, 노조의 투쟁등 여러가지 배경이 얽히고 설켜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필자의 눈에는 가치사슬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B2B 제조업에서 사소하게 보이는 작은 부품의 품질이나 공급문제가 몰고 올 수 있는 큰 파장이 직접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 'AA기업의 피스톤링 품질문제 사태'로 한번 전개해보겠습니다. 20XX년 5월, AA기업의 피스톤링은 개당 1,000원으로 HH자동차에 납풉하고 있습니다. HH자동차의 1일 자동차 생산량 6,000대 중 공급 점유율은 80%로 4,800대분 8,640만원이 1일 매출액이며 30일간 25억 9,200만원 상당의 피스톤링 259만2,000개를 납품완료했습니다. 1개월뒤 HH자동차의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HH자동차 : (격앙된 목소리로) 최근 AA기업의 피스톤링을 사용하여 만든 당사 엔진에 문제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의 불만도 폭주하고 있으며, 리콜과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당합니다. 당사가 원인을 분석한 결과 당신들이 만든 피스톤링 파손으로 엔진에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이로 인해 1개월간 생산한 144,000대 수리비용만 144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니 전액을 현금으로 배상해주시고, 당연히 해당기간에 납풉된 26억원 상당의 피스톤링의 품질개선 대체품도 빠르게 납품해주시기 바랍니다.
(필자 : 이렇게 품질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사 입장에서는 강하게 클레임을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산정액도 향후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훨씬 더 부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죄송합니다. I am sorry.' 라며 대응하는 것이 옳은 방식일까요? B2B제조업에서 불량문제가 발생했을때 그 원인은 여러가지입니다. 장비의 문제, 오퍼레이터의 부주의, 프로그램 오작동, 전기공급 문제, 소재문제, 공구문제등이 있죠. 외국계 대기업 공급사들은 수십년간 쌓아온 데이터와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방어를 잘 합니다. 그러면 국내 중소기업 공급사가 문제의 원인으로 타겟팅되는 경우가 많죠. 이 케이스는 아직 문제의 원인은 뭔지 모르는 상태인겁니다.)
AA기업 : 이런 문제가 발생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사도 불량의 근본적인 원인 (Root Cause)을 분석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귀사 엔진의 문제발생 현황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당사 피스톤링의 샘플을 제공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당사 연구소에서도 분석을 하겠지만 제3의 분석기관에도 공동으로 의뢰했으면 합니다.
(필자 : 10여년간 많은 제조기업과의 교육, 워크샵 현장에서 중소, 중견기업의 담당자분들을 대상으로 품질문제 발생건에 대해 논의해본 결과 당사문제로 지적된 품질문제의 50% 이상이 다른 문제로 인해 발생되었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고객사에서 품질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처음부터 그냥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Root Cause부터 공신력있는 제3의 기관에 의뢰하는 것이 기본일 겁니다. 빠르게 문제발생 샘플을 확보해서 공급사에서도 분석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
[ 2주뒤 ]
HH자동차 :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피스톤링의 물성이 다른 기간에 납품된 귀사의 피스톤링과 상이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쉽게 금이 가고 깨져 가스와 윤활유가 새고 실린더내 불순물이 생성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1개월간 생산한 144,000대의 수리관련 비용만 144억원이 소요되고 있으니 전액을 현금으로 배상해주기 바랍니다.
AA기업 : 당사에서 조사한 결과도 유사합니다. 해당기간 중 생산한 Batch의 생산조건중 열처리 방식 변경이 문제였으며 이에 따라 취성이 증가하며 깨짐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개선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며칠내로 송부드리겠습니다.
(필자 : 품질문제가 발생하고 당사의 문제로 확인되면 빠르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문제점에 대해서 상세하게 조사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낸 후,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동시에 대책을 수립한후 시정조치와 더불어 테스트를 실시하고 불량의 원인을 제거한 표준화를 진행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고객에게 제출해야 할 문서는 품질개선방안 'Improvement Plan'이겠죠?)
HH자동차 : 네, 알겠구요. 144억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상해주시겠습니까?
AA기업 : 당사의 1년 매출액이 500억원 수준입니다. 144억원이면 전체 매출의 30% 수준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의 이익률은 2~3% 수준입니다. 요구하시는 배상액이면 당사는 재무적으로 매우 위험해집니다. 부디 선처부탁드립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품질문제가 발생되지 않게 관리하고, 귀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벤더로 재탄생하는 수준으로 관리하겠습니다. 부디 선처해주시고 배상액은 최대한 줄여주시기를 앙청합니다.
(필자 : 품질문제가 당사의 문제가 아니라면 Best겠지만 당사의 문제로 드러난다면 배상액을 줄이기 위한 협상에 들어가야 합니다. 대부분은 '요구하는 배상액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망하게 된다. 선처해서 배상액을 줄여달라'는 수순으로 들어갑니다.)
HH자동차 :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십수년간의 관계도 있고해서 내부 논의결과 50억 수준으로 배상금액을 대폭 줄여드리겠습니다. 50억의 배상금은 전액을 현금으로 배상해주기 바랍니다.
(필자 : 배상액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이 좋을까요? '현물'로 지불하는 것이 좋을까요?)
AA기업 :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50억의 배상금을 현금으로 지불해드리기엔 당사의 현금흐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양해해주신다면 당사가 HH자동차에 현재도 문제없이 납품하고 있는 '캠샤프트'제품 50억원어치를 배상액으로 제공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부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자 : '돈'이냐? '상품'이냐? 매우 중요한 협상단계 입니다. 당연히 '현물'이죠! 제료비와 제조경비를 감안한 '제조원가'가 판매액을 기준으로 한 금액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생산물량이 많아지면 개당 제조원가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아울러 경쟁사의 점유율을 빼앗아 올수도 있죠. )
HH자동차 : 네, 알겠습니다. 50억원 상당의 '캠사프트' 제품을 배상금 차원에서 추가로 납품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납품하실 예정입니까?
(필자 : '언제'가 나왔습니다. '납기'죠?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몇번'에 걸쳐서? 입니다. '일괄납품'인지 '분할납품'인지가 중요합니다.)
AA기업 : 다시 이런 말씀드려 송구스럽지만 50억 상당의 '캠샤프트'를 일괄로 납품한다면 HH자동차에서는 재고관리의 비용이 추가로 생길겁니다. 현재 월 10억씩 납품하고 있는 캠샤프트 제품물량에 월 2.5억원 상당 물량을 추가로 드리며 20회로 분할해서 납품해드려도 될까요?
HH자동차 : 20회분할은 너무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10회로 분할해서 월 5억의 물량을 추가로 납품해주시되 기존 월 10억의 캠샤프트 물량은 7억수준으로 줄여서 납품해주시기 바랍니다.
AA기업 : 기존의 월 10억의 물량은 유지해주시고 월 7억의 물량을 7회에 걸쳐 무상으로 납품해드리면 안될까요?
HH자동차 : 네, 그렇게 하시죠? 피스톤 링의 품질 개선은 어떻게 할 예정인가요?
AA기업 : 내부 테스트를 거쳐 개선된 제품을 빠르게 납품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기존대비 개선된 품질제품 테스트를 계속해서 진행해 HH자동차의 원가절감과 품질개선에 이바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 계산 근거 ]
* 피스톤당 링 1개 : 1,000원
* 실린더 1개당 필요한 피스톤당 링 : 3개 (3,000원)
* 자동차 엔진 1기당 피스톤은 6개 : 18,000원
* HH자동차 1일 생산량 6,000대 (점유율 80% / 4,800대) : 8,640만원
* HH자동차 30일 생산량 180,000대 (점유율 80% / 144,000대) : 25억 9,200만원
* HH자동차 30일 생산량 180,000대 (점유율 80% / 144,000대) (대당 10만원 손실) : 144억원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께서 이글을 보시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필자의 상상력으로 쓴 것임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품질불량 문제 발생에 대한 대처에 대해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B2B고객사에서 품질불량 문제가 발생하면 반품이나 교체비용, 리콜, 손해배상등 B2C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배상금 요구에 맞닥트리게 될 겁니다. 이때 공급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근본적인 원인 (Root Cause) 파악' 입니다. 공급사와 고객사, 제3의 기관에서 파악한 불량의 원인이 공급사였다면 진심어린 사과와 품질개선 방안을 준비해야 하며 이어지는 협상에서 배상액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배상액이 확정되면 '현금'이 아닌 '현물'로 납품해야 하며 납품기간을 분할해서 최대한 많은 횟수로 길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고객사는 공급사와의 관계를 단칼에 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아울러 빠르게 문제가 발생한 제품의 품질 개선을 진행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