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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창범 Mar 15. 2016

선거 전략가들이 봐야 할 영화

아워 브랜드 이즈 크라이시스(Our Brand is Crisis)

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 
출연: 샌드라 불럭, 호아킴 드 알메이다, 빌 밥 숀튼 
장르: 코미디, 드라마 
등급: R 


바야흐로 총선 시즌이다. 어떤 후보는 공천을 못 받아 울상이고 또 어떤 후보는 천우신조로 기회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는 전쟁처럼 치러야 한다. 동시에 게임이기도 하다. 갖은 전략과 전술, 음해와 협박이 판을 친다. 운도 따라야 하고, 인복도 좋아야 한다. 상처 주는 사람, 상처 입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수백 명씩 쏟아져 나온다. 거짓말과 가짜 눈물은 기본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기기만 한다면. 이기는 게 정의다. 

어쩌면 승자는 당선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을 바꾸고 공약을 어기며 유권자들을 배신할지 모른다. 온갖 비난이 쏟아져도 그들은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적어도 공정한 선거를 통해 당선이 됐다면 말이다. 그게 선거라는 흥미롭고도 더러운 바닥의 룰이며, 생리다. 


영화 '아워 브랜드 이즈 크라이시스(Our Brand is Crisis)'는 바로 그 선거,  볼리비아 대선 선거판을 다룬 영화다. 그렇다고 2011년 이맘때 개봉했던 '아이즈 오브 마치(The Ides of March)'처럼 정치계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특정 후보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갖은 수를 써 대는 선거 운동 전략가들의 모습을 통해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코미디물에 가깝다. 원래는 레이철 보인턴(Rachel Boynton) 감독이 2002년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인 전략가들이 구사한 마케팅 전술을 비판적으로 다룬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조금 코믹스럽게 각색한 영화다. 



이야기는 주인공 제인 보딘(샌드라 블록)이 볼리비아 대선 캠프에 투입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컬래미티(재앙) 제인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 정계에서 백전백승을 이끌며 이름을 날리는 캠페인 전략가였지만, 예상치 못한 패배와 상처로 잠시 잠적했다 주위 권유에 못 이겨 다시 시작한 일이다. 제인을 고용한 후보 카스티요(호아킴 드 알메이다)는 유력 당선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한참을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제인 역시 카스티요에게 별다른 흥미나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영원한 적수인 팻(빌 밥 숀튼)이 상대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제인의 전의는 불타오른다. 그리고 엄청난 지지율 차이를 반등시키기 위한 상상초월의 전략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영화 초반 인터뷰 장면에서 제인은 선거란 자동차 경주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하긴 누가 이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차가 박살이 나고 불이라도 나야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선거전략가 제인이 어떤 수를 구사할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인은 손자병법을 인용하고 유명인의 경구를 읊어댄다. 그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는 맛도 제법 있다. 


낯선 볼리비아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만사에 시큰둥하던 제인이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며 펼치는 활약은 기발하고도 흥미진진하다. 국가적 위기를 강조하며 국민의 공포심리를 자극, 완고하고 강한 이미지의 대통령을 뽑게 하는 과정은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다가도 일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감정을 선사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한 기시감에서다. 갖은 꼼수와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선거 운동 묘사 또한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웃기고 재미있되 마냥 낄낄댈 수만은 없는, 풍자적 성격이 짙은 블랙 코미디의 느낌이다. 


극 후반 선거 결과를 보여주는 부분이나 제인의 마지막 선택을 그린 부분은 다소 갑작스럽고 거칠다. 영화가 담고 있는 큰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극 전개상 상당히 중요한 부분임에도 오히려 만듦새가 허술해 몰입도가 떨어지고 감정이 잘 실리지 않는다. 그나마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고 나간 샌드라 블록의 편안하고도 천연덕스러운 열연이 이를 살려냈다. 참고로 영화에 인용된 경구들을 첨부한다. 


상대가 화를 잘 내면 그를 화나게 하라.(손자병법)

무방비 상태일 때 적을 공격하고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등장하라.(손자병법)

당신이 말한 것은 잊히지만 당신이 느끼게 한 것은 기억한다.(워렌 비티)

사랑과 두려움은 공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안전하다.(마키아벨리)

위험을 감수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무하마드 알리)

괴물과 너무 오래 싸우다 보면 당신도 괴물이 된다.(니체)

무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쟁취할 수는 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요제프 괴벨스)


영화에서 대선후보로 나온 카스티요는 실제 인물 산체스 데 로사다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볼리비아의 근세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 미국이 출중한 선거전략가를 내 보내 도저히 가능성이 없던 산체스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볼리비아 민중이 그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지;;   


볼리비아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모든 국가들은 가혹한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갖고 있다. 볼리비아에 대한 최초의 수탈은 1600년대 초에 발견된 엄청난 양의 은광에 대한 스페인 제국의 침략이었다. 스페인은 은광의 발견으로 인해 유럽에서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고 삽시간에 노예상태로 전락해버린 인디오 원주민들은 엄청난 양의 은을 캐내다가 죽어갔다. 은에 이어 초석, 구리, 철광 등이 발견되었고 석유, 가스 등 모든 천연자원에 대한 총체적인 수탈이 자행되었다. 식민지 지배 하에서 가장 풍부한 천연자원이 가장 가혹한 삶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천연자원에 대한 수탈은 현재까지 지속되었고, 최근 볼리비아의 천연자원에 대한 소유? 통제권의 환수는 수백 년 동안의 수탈의 역사를 끝장내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이 담겨있다.

볼리비아의 전격적인 국유화 조치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볼리비아 민중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전 세계에 몰아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가장 선두에 서 있었으며 이 투쟁들이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이번 국유화 조치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볼리비아는 1980년대 초반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왔으며 이 기간 동안 사회 제반 부문의 사유화와 시장개방 등을 추진하여 거의 모든 국영기업들이 사기업들에 매각되었다. 하지만 IMF의 지도를 받아들인 나라답게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1인당 실질 소득은 오히려 4%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빈곤이 일상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2000년 8월에 볼리비아 민중들은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을 통해 남부 코차밤바에서 초국적 기업 벡텔사를 추방했다. 이는 당시 "물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전쟁이라는 표현은 물 자원에 대한 통제권이 신자유주의자들과 민중진영 양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볼리비아 대통령이 된 산체스는 어릴 적을 제외하고 주로 미국에서 생활을 한 이유로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자본가였다.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그링고(미국 놈)이라고 조롱받았던 산체스는 미국이 원하는 데로 코카 재배농지를 초토화시키는 정책을 지속하고, IMF의 긴축정책을 받아들였다. 

2003년 2월에는 IMF 물가인상 반대 봉기가 볼리비아 전역에서 일어났으며 이 봉기에 심지어 경찰까지 가세하면서 정부가 완전히 패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3년 9월, 천연가스 사유화 반대 투쟁(가스전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어 군대의 발포로 70여 명의 시민들이 살해당했다. 투쟁은 더욱 확대되었고, 결국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이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2005년 1월에는 엘 알토/라파스 물 사유화 반대 투쟁(2차 물 전쟁)이 전개되었다. 지역 공동체 조직들이 무기한 총파업을 벌여 이 투쟁을 끝까지 몰고 갔고 결국 정부는 긴급선언을 통해 아구아스 델 일리 마니사와의 상하수도 계약해지를 발표한다. 이 투쟁으로 프랑스 초국적 기업인 수에즈의 자회사 아구아스 델 일리 마니사는 민중의 힘으로 추방당하게 되었고 볼리비아 민중들은 단결된 민중의 힘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투쟁들이 평화적으로 온건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폭발적인 대중투쟁과 이에 대한 군대의 발포를 포함한 폭력적인 탄압이 전개되었고, 특히 민중운동 진영은 내전을 촉구하면서 전 민중적 봉기로 신자유주의를 완전히 분쇄할 의지를 보여 왔다.


이러한 투쟁들이 2005년 12월 18일의 대선으로 모아지면서 천연자원 국유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사상 최대의 투표율과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고, 400년 동안의 수탈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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