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국은 복수에서 비롯되었다.
어로로로 이랴이랴앗!! 달려라 달려. 너 한번 달리면 오천 원이다. 오늘 내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어로로로오 후우;;; 제주도 서남단 송악산 자락에서 오천 원에 말 태워주시는 할아버지가 강적을 만났다. 테무진의 아내 보르테가 환생한 것 같은 여자아이가 말을 몰았다. 말도 할아버지의 숨소리도 거칠게 들린다. 테무진이 후일 칭기즈칸이 되었을 때 보르테는 대 카툰(황후)이 되어 시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여성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 꼬마에게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느닷없는 복수 이야기는 이 아이가 거칠 것 없이 말을 타는 것을 보면서 떠 오른 것이다.
칭기즈 칸의 어머니 후얼룬 푸진은 올쿠누트 출신으로 본래 메르키트 부족의 칠레두와 정혼한 사이였다. 하지만 유목사회는 항상 약탈이 빈번했던 사회, 여성 역시 중요한 재산으로 약탈의 대상이었다. 후얼룬 역시 친정에서 남편인 칠레두를 따라 시집인 메르키트 부족으로 향하다가 한 무리에 의해 납치되었다. 후얼룬을 납치한 것은 보르지긴 가문의 예수게이 바하두르였다. 후얼룬은 결국 예수게이의 부인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훗날 칭기즈 칸이 되는 테무진이 탄생하였다. 예수게이가 후얼룬을 메르키트의 칠레두에게 약탈한 사건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는 씨앗이 되었다.
테무진 나이 8~9세 무렵, 아버지 예수게이는 테무진을 옹기라트 가문의 데이 세첸의 딸인 보르테와 정혼을 시킨다. 당시 몽골 사회에서는 일찍 결혼을 시키는 조혼이 유행하였는데, 아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불안한 유목사회에서 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형성하기 위한 대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테무진과 보르테의 결혼은 파란만장하였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과 보르테를 정혼시키고 몽골로 돌아오다가 타타르 부족에 의해 독살당하고 테무진이 보르지긴 가문을 지키기 위해 보르테를 떠나야 했다. 또한 보르테를 떠난 테무진 가문은 일족인 타이치우드에게 배신당하고 약 15세 무렵까지 방랑과 포로 생활을 겪어야 했다.
15세 무렵, 몰락하던 보르지긴의 가세가 점차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조금씩 휘하의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한 테무진은 보르테를 정식으로 자신의 부락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데이 세첸의 집으로 갔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데이 세첸의 태도이다. 당시 테무진은 타이치우드에 의해 방랑생활과 포로생활을 해야 했을 정도로 몰락했고, 데이 세첸은 얼마든지 보르지긴 가문과의 혼인관계를 끊고 다른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테무진을 끝까지 믿었고 보르지긴 가와의 혼인관계를 굳건히 지켰다. 이는 데이 세첸이 초원 사회에서의 의리를 중시했다는 것과 테무진의 인물됨을 통찰력 있게 보았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이렇게 보르테는 테무진에게 시집을 정식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테무진과 보르테의 행복한 결혼 생활도 잠시, 곧 예기치 않은 불행이 들이닥쳤다. 300명의 메르키트 부족의 기병대가 기회를 틈타 테무진의 영채를 급습한 것이다. 메르키트 부족은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칠레두의 정혼자 후엘룬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복수의 차원에서 테무진을 급습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테무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몽골비사>에 의하면 보르테가 메르키트에 납치된 과정이 흥미롭게 묘사되었다. 영화 <몽골>에서는 테무진과 보르테가 자신의 영지 뒷동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와중에 메르키트가 기습을 하였고, 테무진과 보르테는 영지를 기습하고 뒷동산까지 추격해 온 메르키트 군사들의 추격을 받다가 결국 보르테만 잡히게 된다. 하지만 <몽골비사>에서는 보르테의 납치 과정이 다소 다르게 묘사되었다. 후엘룬과 그녀의 자식들에게는 도망치는데 필요한 말이 모두 주어졌지만 보르테에게는 말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아들들을 살리려는 후엘룬의 의도적인 계책일 가능성이 높다. 즉 보르테를 미끼로 두어서 아들들을 메르키트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다.
말을 놓친 보르테는 자신을 곁에 지키던 코아그친 노파의 도움으로 양털을 실은 수레에 숨었지만 메르키트의 눈을 피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수레에서 보르테를 끌어낸 메르키트 사람들은 보르테를 자신들의 영지로 끌고 갔다. 혹자는 메르키트가 여인 하나만 얻고 전쟁을 그만두는가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메르키트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메르키트 사람들은 이 습격을 통해서 칠레두에게 복수를 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고 아울러 회복세를 탄 테무진의 기세를 꺾음으로써, 후환을 방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성은 초원에서 중요한 재산으로 간주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메르키트는 상당한 소득을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엘룬의 도움으로 부르칸 성산에 도망간 테무진은 메르키트가 물러간 이후 그의 영지로 돌아왔다. 메르키트가 쓸고 지나간 영지는 쑥대밭이었다. 테무진이 "내 목숨만 아껴 한 마리뿐인 말을 타고 뿔 사슴의 길을 삼아 나뭇가지를 집을 삼아 성산 위로 올랐다. 부르칸 성산에게 귀뚜라미 같은 그런 목숨을 보호받았다. "나는 몹시 무섭다.(<몽골비사> 103p)"이라고 할 정도로 메르키트의 습격은 테무진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메르키트의 보르테 납치는 또한 테무진에게 '복수'라는 명분을 주었다. '원한에 대한 복수'는 초원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대의명분이었다.
테무진은 자신의 양아버지와 같았던 케레이트 부 옹 칸의 세력과 어린 시절 자신과 의형제를 맺은 자다란의 자무카 세력과 연합하여 메르키트를 공격한다. 습격은 성공적이었다. 메르키트는 궤멸되었고 테무진은 부인 보르테와 해후를 하였다. <몽골비사>에서는 보르테가 메르키트에 의해 붙잡혀 칠레두의 동생 칠게르에게 보호되고 있었고, 칠게르는 테무진이 습격하자 보르테를 두고 도망갔다고 묘사하고 있다. 즉 보르테는 테무진이 메르키트를 습격할 때까지 칠게르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보르테는 칠게르의 아이를 낳는다. 손님이란 뜻인 '주치'. 놀라운 것은 테무진이 이 아이를 자신의 장자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테무진의 복수는 메르키트 부족으로부터 그저 보르테를 찾아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복수라는 대의 명문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데 이용했으며 양아들 '주치'라는 메르키트의 씨를 이용해 메르키트 부족 자체를 멸절시키고 만다. 몽골 대초원은 새롭게 등장한 테무진이라는 신생 강자에게 공포심을 느꼈다. 세력을 확장한 테무진은 자신의 씨가 아닌 주치를 아들로 받아들였듯이 자신과 공존하겠다는 부족은 받아들였다. 그는 그렇게 공포와 회유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제국의 기초를 다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보르테의 납치사건이 없었다면 몽골제국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테무진은 사랑하는 아내의 납치로만 복수를 꿈꾼 것이 아니었다. 그가 어린 시절 겪은 방랑과 포로생활을 통해 이미 그는 세상에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