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거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창범 Feb 22. 2016

길이 아닌 길에 서 보라

용눈이오름을 걷다 든 생각  

사람들은 곧잘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갑니다. 길을 만들면서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요.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곳으로 가는 것에는 굉장한 희열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막다른 처지에 몰리기도 하지요. 오늘 용눈이오름을 걸으면서 든 생각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길이 아닌 길에 서 보라'입니다. 


걸어서만 다닐 길이 있고 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물론 차가 다니는 길은 사람도 걸어 다닐 수 있지요. 자동차 전용도로라면 걷기에는 좀 무리가 있겠죠. 고속도로를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길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길이 나 있다는 것은 나 말고 누군가가 먼저 걸어갔다는 것이겠죠. 겨우 한 사람이 걸어갈 정도로 폭이 작다는 것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지 않다는 것이겠고요. 능선으로 둘러가는 길이 아니니 이 길은 지름길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람을 피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같은 길이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쉬엄쉬엄 내려가는 내리막길이기도 합니다. 인생살이는 그 반대인가요? 잘 풀릴 때는 승승장구 오를 일만 남았고 잘 안될 때는 뭘 해도 추락하는 일만 있습니다. 암튼 그 길이 사실은 같은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십시오. 


 

그렇게 쉼 없이 올라가면 정상에 섭니다. 그게 끝인가요?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 고생을 한 것인가요? 사람들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에는 관심이 있지만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에베레스트에서 죽는 사람들은 대개 하산길에서 당하는 사고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길도 그러합니다. 정상을 못가보고 생을 마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높낮이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는 정상이 있습니다. 올라갔다면 내려가야 하겠지요. 


 

올라온 길이지만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광은 또 다릅니다. 길은 그대로인데 받아들여지는 정보는 또 달라진다는 것이죠. 게다가 올라왔던 길이니 어디쯤에서 뭐가 나타날 것이고 그건 피해야 하고 어디서는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설 겁니다. 삶에도 경륜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겠죠. 내려가는 길에서는 또 다른 올라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려가는 길에서도 우리는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저곳과 저곳을 올라가 보자. 꼭 시작할 때만 계획이 필요한 것은 아니죠.


    

가끔은 올라가는 것을 미뤄두고 길이 아닌 길로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길에만 들어서면 꼭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강박증이 몰려오거든요. 길이 아닌 길에서는 그냥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길이 됩니다. 멈춰서 보기도 하고 좀 더 가보기도 하고 그렇게 목적을 잠시 내려놓는 것. 우리가 여행으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길이 아닌 길에 서 보는 것. 아참. 들어가지 말라는 곳으로 들어 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금지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삶 자체가 역겨운 것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