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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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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Oct 27. 2021

간 큰 엄마, 한번 더 해맑게 대들어 봅니다.

작가님, 미친 거 아니세요?

오해십니다.


당혹스럽다. 어쩌다 보니 어제 올린 글의 조회수가 폭발하며 많은 분들의 공감과 공분을 함께 불러일으킨듯하다. 불편한 메일을 보고 불편한 심경으로 또 한 번 들이대 본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대안 교육에 대한 글을 쓰겠다 마음먹었을 때, 어느 정도 비난의 화살은 예상했었다. 감히 제도권 교육을 능멸하다니…(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에 따라 이런 격한 반응도 가능하리라 본다)



글을 쓰면서 나라고 왜 쫄리는 구석이 없었겠는가.



아무리 고딩때부터 화염병 던지며 참 교육 외치던 화려한 경력의 당찬 가시네 였어도, 지금은 그저 내 새끼 보호하고 싶은 연약한 어미일 뿐이다. 투사도 개혁가도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어린 투사의 나였다면,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겠지. 시민단체 앞세워 학교에 쳐들어 갔겠지.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강화를 외치며 선생님들 실명을 까발렸겠지.


하며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ㅎㅎㅎ


차라리 젊은 시절 그런 투쟁의지라도 남아 있다면 이렇게 영혼육이 탈탈 털리는 언스쿨링을 고독하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스스로 힘없이 학교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외로운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난 이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일 따위를 꿈꾸는 꼬마 소년 다윗이 아니다. 나라가 못해준다면, 기꺼이 내 살길 내가 알아서 찾아가는 현실 육아맘이고, 부족한 내 아이를 위해서는 못할게 없는, 반 쯤 미친 대한민국 학부모일 뿐이다.


나는 공교육의 존재 가치를 부인하거나, 선생님들의 인격을 일반화하여 폄하할 의도가 전혀 없다. 게다가 남편도 18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였다. 누구보다 사명감 있게 교사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더더더 게다가 독자들 중에는 공교육 교사들도 많을 것인데, 대놓고 공교육 까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대놓고 선생 디스 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노노노 그럴 생각 전혀 없다. 오해다.


단지, 교육 문제에 대한 글이다 보니 학교와 선생님 얘기가 자주 등장할 수 있다. 노골적인 학교 생활의 묘사가 나올 수 도 있다. 선생님과의 대화 묘사가 육성으로 들리는 듯 리얼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어 저거 내 얘기인가?” 할 수도 있다. 나도 아이 문제로 인터넷을 뒤질 때 내 얘기를 누가 듣고 옮겨 놓은 것 같은 사연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사람 감정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공교육 관계자 분들은 혹시  글을 읽다가 화가  수도 있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허나 화가 난다고 해서 공교육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를 하며 작가를 맘충 취급 하지는 말길 바란다. 만약 글을 읽다가 심하게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오면 후딱 화면을 이동해 주시면 된다. 그런데 화가 나고 얼굴이 뜨거워 지기는 하는데 계속 글이 읽고 싶어진다, 화나는 감정 언저리  어딘가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 혹은 스승의 마음  이런 것이 남아 있는지 찾아보시길 바란다. 좋은 분이신  같다.




대안교육을 말하다


결핍이 있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야속했다. 서운했다. 공교육이 개인만큼의 문제의식도 없이 닫힌 세계관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현실이 답답했다. 4 산업 혁명의 인재 육성이라는 시대의 요구가 부끄러울 만큼, 학교 교육은 이십 세기에 머물러 있었다.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 시키는 대로   듣는 아이가 여전히 최우수 학생으로 상장을 받는 현실이다. 우리 아이처럼 수업 시간에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행동이 과하고, 호기심을 참지 못해 아무 때나 질문을 해대면 골칫거리가 되는 지금의 학교는 40  나의 학교와 달라진 게 없었다.


제도권 교육이 제집처럼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정상인 아이도 혹은 우리 아이처럼 조금 느린 아이도 학교교육에서 때때로 결핍이나 차별을 경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제도적, 정신적 결핍이나 차별이 아이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99프로인데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아이를 학교 안으로 계속 밀어 넣어야만 하는 걸까? 그 차별과 결핍의 12년을 공교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꼭 감내해야만 하는 걸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제도권을 벗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국내 사례, 해외 사례, 국내 서적, 해외서적, 유튜브 영상부터 공중파 다큐멘터리까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우리의 공교육을  더욱 투명하게 마주 할 수 있었고, 나의 선택은 훨씬 쉬워졌다. 대안학교뿐만 아니라 홈스쿨링과 언스쿨링의 다양한 사례들을 분석하며 우리 가정에 맞는 모델을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 모델을 시도하고 멈추기를 수개월째 하고 있으며, 그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아이와 나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서로를 이해해가며 성장하고 있다.


 “나의 브런치는 무의미한 공교육 까대기가 아니라, 제도적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교육 소수자의 고군분투 생존 스토리가 될 것이다.”



“다름” 이 “틀림”이 되어서는 안된다.


제대로 시작도 안된 이야기에 조금 불편했다고 발끈하지 마시고,  불편함과 마주하는 용기를 내었으면 한다. 경직된 사고를 풀어내고 투명하게 들여다봐야 미래가 보인다. 다름 “틀림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같은 사람의 글도 쉬이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 거대한 제도권 교육 앞에서 아무것도   없는  어미가, 고작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나와 글이나 끄적거릴 수밖에 없는 나약함에 안쓰러움을 표해야 한다. 비아냥은 주머니에 넣어두시라. 그게 권력을 가진 자의 마땅한 스탠스다



어떤 부모들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까? 고 신해철 씨가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냈다기에 사고의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많을 것으로 추측했다. 의외로 공교육 교사와 교수들이 많았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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