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들과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리파토스 Oct 26. 2021

간 큰 엄마, 담임 선생님과 맞짱을 뜨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아이

4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지금 빨리 학교로 와주셔야겠어요"


도서관으로 갔다.

학교 도서관은 아이들이 방과 후 수업을 들어가기 전, 잠시 비는 시간이 있을 때 머무르며 책도 보고 쉬기도 하는 곳이다. 말이 도서관이지 아이들은 대기하는 동안 핸드폰을 가지고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낸다. 사건은 그곳에서 일어났다.


선생님들은 아무도 상황을 보지 못했고, 두 아이의 진술이 엇갈렸다.


<아들은 그저 심심해서 실내화 던지기 놀이를 했다 했고,  2학년 형은 하지 말라는데 자꾸 제 쪽으로 던지며 아들이 약을 올렸다 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화가 나서 때리러 달려갔지만 때리지는 않았다 했다. 아들은 맞았다 했고, 2학년 형은 시늉만 했다고 했다. 선생님들 모두 보지 못했으므로 누구 말이 사실 인지는 몰랐다. 주변 아이들은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으므로 소란스러워진 다음에야 이 둘을 바라봤다 했다. 그때 1반 담임선생님이 지나가시다 그 광경을 목격했고, 둘을 불러 앉혀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아이들이 진술한 사건의 전말이다.


나는 의아했다.

이게 도대체 학부모를 학교로 다급하게 불러 낼 일인가 싶었다.


도착해 보니 한 여자 선생님이 2학년 아이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옆에 우리 아들이 억울한 표정으로 서서 담임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없고 황당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다급하게 달려오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제가 어머님을 오시라고 한건, 다름이 아니라...

OO가 잘못한 걸 인정을 안 해서 2학년 아이와 문제 해결이 되지 않고 있어요. 저도 직접 본 상황은 아니고 소란스러워서 나와보니 1반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과 얘기하고 계시더라고요. 2학년 아이 말을 들어보니 OO가 일부러 그쪽으로 자꾸 실내화를 던져 시비를 걸었고, 하지 말하고 했는데도 OO 가 계속 장난을 쳤다고 해요. 그래서 화가 나서 달려가서 때리려고 했다는데 때린 건 제가 못 봤고요.... 어쨌든 문제의 발단이 OO라 잘못한 걸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했는데 OO가 끝까지 사과를 안 해서 상황이 종료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어머님 오시라고 했어요"


언제나처럼 친절하지만 왠지 불편한 설명이었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선생님께 물었다.


"OO 얘기는 들어보셨나요??"


"일부러 던진 건 아니고 선반 위로 실내화 던져 올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대요. 근데 어머님, 도서관에서 그런 놀이를 한 것부터가 잘못이잖아요. 그럼 안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했는데 장난한 건 맞지만, 형한테 맞았으니 사과하지 않겠다고 잘못한 거 없다고 하면서 버티네요."


여전히 상냥한 말투로 대답해 주셨다. 


선생님께 얘기를 듣는 사이, 1반 담임 선생님과 얘기하던 2학년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이 있다며 들어갔다.

나는 잠시 어리 둥절 했다. 아들은 분명 맞았다 했는데 어떤 사과도 없이 그 아이는 가 버렸다. 

아들 얘기를 들어봐야 했다.


"우선, 아들의 얘기도 들어 봐야겠습니다. 아이와 이야기 나눈 후 전화드릴게요"


학교를 빠져나왔다.


차에 타서 감정을 추스르며 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 줄 수 있어?"


"아까 10번도 넘게 얘기했어"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미술 학원 가야 할 시간이라 일단 학원으로 이동하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학원에 도착할 때 즈음


"아들아,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왜!!! 왜!!! 왜!!! 다 얘기해도 내 말은 아무도 안 믿어 주냐고!! 아까 10번도 넘게 얘기했다고!!

맞은 건 난데, 왜 나보고 자꾸 사과하라고 하냐고!!! 도서관에서 다들 핸드폰 보면서 노는데 나는 끼워주지도 않고!! 나 혼자 심심해서 신발 던지기 놀이한 건데 왜!!! 1반 선생님이 왔는데 그 형이 나 때려놓고 안 때렸다고 거짓말 쳤어. 내가 억울했는데 마침 담임선생님이 와서 반가웠어. 내편 들어줄 줄 알았어. 근데 보자마자 나보고 사과하래. 내 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얘기해도 믿지도 않아!

허으허으~ 엉 엉 엉~~~

선생님도 친구들도 무조건 내가 잘못했대. 내가 한 일 도 아닌데 다 나만 미워하고 나한테 뒤집어 씌워.

억울해!!!!! 선생님도 싫고 친구들도 싫고 학교도 싫어!!!!"


처음이었다. 아들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들이 오열했다. 그동안 여린 마음에 받은 쓰린 상처들을 내뱉으며 아이는 오래도록 소리 내어 울었다.


늘 낙천적인 아이라 학교생활에 대해 뭘 물으면


"좋아~ 다 좋아~ 엄마 걱정하지 마. 다 좋다니까" 했었다.


가슴에 돌덩이가 쿵. 내려앉았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늘 엄격한 엄마였다. 늦게 낳은 외동아들, 버르장머리 없이 컸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아이에게 혹독할 정도로 냉정하고 엄격했다. 늘 공정한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게 했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무조건 아들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런 어미 성격을 알기에 그동안 제 속마음 한 번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을 거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오늘만큼은 아들이 잘 못했어도 아들 편이 되어 주어야 했다.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는 네 편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야.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다 말해봐. 괜찮아"


"학교 친구들이 다 나를 싫어해. 나를 나쁜 아이래. 말썽쟁이, 장난꾸러기래. 내가 하지 않은 잘못도 내가 한 거라고 선생님한테 일러바쳐. 난 진짜 안 그랬는데. 다른 애가 한 거 다 같이 봤는데도 내가 했다고 일러. 모두 나를 미워해.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 마음 아플까봐 말 안했어.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데 내가 미움받는 아이라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어릴때부터 속이 깊은 내 아이는 엄마의 감정선을 유난히 잘 살피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밖에서 있던 일을 잘 말해 주지 않아 늘 걱정스러웠다. 그런 아이가 상처 받고 있었다. 상처를 넘어 정신적 집단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아이가 그것을 혼자 견디고 있었다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야 하나 싶어 물었더니 미술학원은 가겠단다. 워낙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올려 보내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1시간 반, 아이의 미술 수업 시간 동안 통화는 이어졌다.

학교에서 들었던 대로 여전히 선생님은 아이가 먼저 잘못했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 어떤 신념인지 주관인지 철학인지, 암튼 뭔가가 꽤나 뚜렷하신 분이었다. 그 상냥한 말투 속에 아이에 대한 이해는 없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의로움만 가득했다. 


내가 물었다.


"그 상황을 아무도 못 봤는데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결론 내리고 말씀하시는 것이 저는 좀 속상합니다. 두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둘 다 잘못한 일이니 서로 잘못을 인정해야 되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 "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걸 꾹꾹 누르며 최대한 공손히, 정중히 말씀드렸다.

자식 가진 어미는 약자이니까. 죄인이니까.


그런데 선생님 발언이 내 인내심의 바닥을 내리쳤다.


"2학년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제가 잘 알아요. 먼저 때리고 그럴 애가 아닙니다"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지만 최대한 냉정을 잃지 않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도 제가 잘 아는데요, 장난이 치고 싶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괴롭히려고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덩치도 2학년 그 친구가 훨씬 컸고요. 아마도 그 친구도 핸드폰 없이 혼자 놀고 있으니  우리 아들이 같이 놀고 싶어 장난을 걸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도 저도 그 상황을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 저는 제 입장에서 유추해 볼게요. 선생님은 선생님 입장에서 2학년 아이의 생각을 유추하셨으니까요. 우리 아들이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을 실내화 던지기로 표현한 건 잘못된 거죠. 맞아요, 잘못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1학년 동생을 때리는 건  잘못한 거라고 그 아이에게도 말해 주어야 하지 않나요? 한데 그 아이는 어떤 사과도 없이 그냥 가버리던데요. "


"어머님, 2학년 아이가 때리려고 했다고 했지 때렸다고는 안 했어요."


기가 막혔다


"선생님, 선생님은 보지도 않으시고 그아기가 때리지 않았다고 믿으시면서 우리 아이가 맞았다는 얘기는 왜 안 믿으시나요? 그냥, 딱, 우리 아기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아니면, 먼저 잘못했으니 맞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당황한 건지, 기분이 나빠진 건지 선생님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럼 학교 폭력으로 신고하세요. 다음 주에 학교폭력위원회에 접수하시면 되겠네요"


말인가 방귀인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 다녔다.

 

'학기초에 돈봉투라도 들이밀었어야 했나? 세상이 변해서 이제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나? 돈봉투는 아니더라도 입학 이틀 만에 전화 왔을 때 외제차에 모피 코트라도 걸치고 가서 식사 대접이라도 했어야 했나? 아니면 내 새끼가 많이 모자라니 알아서 사람 만들어 주십사 납작 엎드려야 했나? '


하~~~ 진짜.

콧구멍이 두 개라서 겨우 숨을 쉬었다.


다시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 제 말씀은 그게 아니에요. 사소한 애들 싸움 가지고 무슨 학교폭력까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달 동안 OO 때문에 저와 반 아이들의 피로도가 무척 높습니다." 하며


그동안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우리 아들로 인해 수업시간이며 식사시간에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피로감....."


나는 그 워딩을 듣는 순간 더 이상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나마 상냥함이 살아지니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선생님은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아 있었다. 우리 아이 산만함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


"그래서 아들이 그런 얘기를 했군요.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친구들이 전부 자기 잘못으로 뒤집어 씌운다고"


힘없이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그 순간 조금 당황하셨는지.


"네 맞아요 어머니. 아이들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반 아이들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친구한테 그러면 못쓴다고 타일러 주었어요. 그만큼 아이들이나 저나 OO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요 어머니. "


반 친구들이 왜 그러는지 선생님은 알지 못했다. 알려드리고 싶었다.


선생님이 학기 초부터 아들에게 하신 모든 행동들을 반 아이들이 학습한 거고, 선생님의 잣대로 반 아이들이 우리 아들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라고!!!


누구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욕을 하는 것도 아닌.

손발을 자주 움직이고, 줄을 잘 못서고, 산만하다는 이유가 이렇게 까지 죄가 되는 일이었구나... 

겨우 1학년 입학하고 2 달이지 않는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 무기력감이 덮쳐왔다.



나는 그냥,

내 아들이 잘 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다 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냥...


"왜 형 쪽으로 실내화를 던졌니? 많이 심심했구나? 그래도 그건 잘못된 행동인데"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알아봐 주었으면 안 되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랬으면 우리 아이도 네! 죄송합니다. 그랬을 아이였다. 선생님이 아이의 잘못부터 지적하신 것이 야속했다. 그리고 맞았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전제하고 대화를 하는 모습에 실망스러웠다. 피로감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는 선생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보다 15년 어린 스트레스 받은 직장인일 뿐이라고 여겨졌다. 스승의 미덕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었다. 


주말 내내 아이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으로 아이가 학교를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힘든 줄 알지만 기특하게도 잘 적응하고 있다 믿었다. 어쩌면 아들은 늘 잘 적응하려고 애썼을지도 모른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항상 긍정적으로 표현했으니까. 오히려 선생님이 내 아이에게 적응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쉬운 아이는 아니니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아무래도 아이가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당분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아이에게 맞는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고려해보겠다고.


내심 기다리셨나. 단 한 번의 설득도 없었다. 잘 지도한다는 게 이런 일이 생겨 죄송하다면서도


"네, 어머님. 집에서 잘 돌봐 주시고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하셔요."


기싸움이었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그 길로 나는 마음에 두고 있었던 대안학교 상담을 위해 아들과 화순으로 출발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처럼 다녀왔다. 다친 아이의 마음을 많이 많이 어루만져주면서.


이틀 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왔다. 내가 보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그동안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아들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며 다시 보내 주시면 아이와 잘 지내보겠다고 했다. 이틀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우선 아이에게 물어야 했다. 아이는 단호히 "NO"를 외쳤다. 나 역시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되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선생님이 걸어온 기싸움에 애초부터 맞설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맞짱을 뜨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 큰 엄마, 한번 더 해맑게 대들어 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