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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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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Nov 14. 2021

73년 쉰둥이가 온다.

마음 디톡스. 과거를 밀어내야 그 자리에 미래가 올 텐데요.

디톡스 다이어트


요즘은 다이어트할 때 무작정 굶지 않는다. 살이 건강하게 빠지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영양이 규칙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대사율을 높여 스스로 지방을 태우는 몸을 만들어야 요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과체중이거나, 염증 수치가 높거나, 혈관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에는 아무리 좋은 영양을 섭취해도 다이어트의 속도가 더디다. 체지방을 제거하기 전에 혈관에 쌓인 쓰레기들부터 제거하고 좋은 영양소들이 지나가고 흡수될 통로를 닦아내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단기간에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들은 감량에 앞서 몸속을 청소하는 디톡스를 먼저 시작한다. 수년간 몸속에 쌓인 독소들을 치워내고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으로 부족해진 영양을 채워 주면, 몸 스스로 정화 작용하듯이 대사율이 좋아지고 빠른 속도로 건강하게 살이 빠진다고 한다.



© brookelark, 출처 Unsplash

© chrisjoelcampbell, 출처 Unsplash


 

마음의 디톡스가 절실한 쉰둥이가 온다.


내년이면 내 나이 쉰이 된다. 반백 인생을 돌아보며 새로운 반세기를 위한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희망, 기대, 설렘 막 이런 애들이 내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오래 묵은 원망, 집착, 불안, 우울이라는 감정들이 999년 묵은 이무기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검은 향기 풀풀 날리며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비워내야 할 50년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이다.



오래도록 방치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게 된 결정적 동기는 내 아이이다. 마흔둘에 아이를 낳고 누구보다 귀하게 귀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우리라 다짐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서 물심양면 부족함 없이 키우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워킹맘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고 나와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양육하는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나의 존재가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 칠 때면 머릿속에 탑재된 온갖 육아 정보는 산산이 흩어져 그 효력을 상실했다. 결국, 못돼 먹은 나의 내면 아이가 따가운 말들을 쏟아내 나와 내 아이를 아프게 했다. 육아 스트레스는 점점 죄책감으로 이어졌고, 아이의 ADHD 증상도 나 때문인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만큼 나도 아팠다.



육아서를 내려놓고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내면 아이 치유에 대한 책을 읽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엄마 심리 치유" 강의를 들었다. 수많은 감정 카드를 꺼내어 내 안의 묵은 감정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린 시절 기억까지 파고 들어갔다. 상처 받은 내면 아이가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었다. 일곱 살의 나, 열여섯의 나, 스물넷의 나, 서른아홉의 나. 상처 받은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어야 내 아이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체적 디톡스는 방법도 많고 속도도 빠르고 효과도 좋다던데, 마음의 디톡스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여전히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반백을 살면서 내 마음관리하는 방법이 고작 숨어서 책이나 읽고 와인이나 홀짝거리는 거였다. 그 많은 풍파를 겪고도 내 마음 한번 제대로 치료해 준 적이 없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인생을 살면서도 그 정도 삶의 무게는 다들 지니고 사는 거라 여기며, 유난 떨지 않는 것이 ‘어른 다움’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배워왔다.



집안의 큰딸로, 팀을 이끄는 리더로 나는 항상 강인하게 우뚝 서 있어야 했고, 나약한 모습은 가정이나 조직의 와해로 연결될 것이라는 불안을 끌어안고 억지로 웃는 삶을 선택했어야 했다. 긍정의 가면을 쓰고 내면 아이의 상처는 곪아가고 있었다.



불안과 우울이 나를 잠식할 때마다 그저 책을 읽었다. 다른 세계로 도망가고 싶었다. 잠시나마 내가 아닌 존재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아서 혹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꾸 책을 읽었다. 도망쳤다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인 것이 조금 허무했지만, 읽지 않고는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는 삶이었다. 읽었으나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일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찰나의 위안이 때로는 영겁의 행복보다 짜릿했으니까.



그 짧은 위안에 만족했던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두 달 전이다.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이 반 백 년 내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기억나지 않는 책의 내용은 다시 책을 들춰 보면 되지만, 기억에서 사라진 내 삶은 다시 찾아 올 방법이 없었다. 내 삶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사건은 희미해졌으나 상처는 더욱 선명해지는 과거에서 나를 건져내고 싶었다.



늘 무언가를 쓰고 싶다 열망하다가도 펜 끝으로 흘러나오는 우울과 마주하는 일이 끔찍했다. 왜 나의 펜촉은 하고 많은 날들 중에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로만 향하는지, 좋았던 시절도 많았을 텐데 쓰기만 하면 이유도 모르는 눈물만 나오는 건지, 짧은 일기 조차 쓰는 일이 두려웠었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상처에 소금처럼 아프거늘 그 기억을 걷어 올려 글로 담아내는 일은 잔인한 형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야 했다. '쓰는 사람'이 되어 그 어린 날들의 상처 받은 나와 마주 하는 일. 그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일. 그래서 해소되지 않은 상실을 온전히 비워 내는 일. 시작해 보려 한다.



마음도 디톡스가 될까?

과거를 밀어내야 그 자리에 미래가 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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