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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Nov 19. 2021

마흔아홉 짤 노랑머리 엄마

낼모레 쉰둥이. 마흔아홉에 8살 아들을 키우는 육아맘이다. 금발이 되고 싶어 그런 건 아니지만, 수년째 블링블링 탈색된 노랑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신이 나에게 동안을 허락한 대신 검은 머리를 일찌감치 거두어 가셨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새치가 많아서 마흔아홉인 지금 80프로가 흰머리이다. 어두운 색으로 염색을 하면 2주도 안되어 하얗게 서리 내린 가르마를 만나야 한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탈색을 해서 금발을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 흰머리가 나올 때 티가 덜 나서 한 석 달쯤 버틸 수 있다. 그런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추측을 하며 편견에 사로잡힌 소설쓰기를 좋아한다.   



아들 친구들 사이에선 '노랑머리'엄마로 유명하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였다. 보통 돌봄 선생님이 하원 하는 아이를 받았는데 그날은 일이 있어 내가 직접 아이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차에 타 있던 아들 친구들이 나를 보더니 소리쳤다.


"얘들아!! OO 엄마 노랑머리다!!

“우와~~ 진짜 머리예요??”

“언제부터 노랑머리예요??"

하며  


귀엽게 재잘재잘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아들의 표정이 머쓱했다.


"왜에?? 아줌마 머리 이뻐??? "


"네에!!! 재밌어요!!"  

"예뻐요. 바비인형 머리에요"

"웃겨요. 꺄르르르"

 


"그래에??? 아줌마 이쁘지??? 니들한테 이뻐 보일라고~~ 얘들아 잘 가"


나는 서둘러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량을 보냈다.



집에 들어와 혹시나 아들이 기분이 상한 건 아닌가 싶어 물어보았다


 "아들아, 엄마 머리 검은색으로 염색할까? 엄마 머리 색깔 싫어?? " 했더니


화들짝 놀라며


 "아~~~~ 니!!! 바꾸지 마 바꾸지 마. 난 좋은데 왜 바꿔"


하는 거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니... 아까 친구들이... 막 엄마 보고 노랑머리라고 막... 그래서.... (우물쭈물)...아들이 기분 안 좋은 줄 알고..."


"왜에?? 노랑머리가 어때서. 난 다른 엄마들 평범한 머리 색 보다 노랑머리가 좋아!!! 엄마 머리 검은색이면 이상해 ~~"  

그런다. 헤헤.


아들은 늘 보는 머리색인데 아이들이 급관심을 보이니 잠시 어색했다고 한다.


하긴. 돌 지난 이후 어미의 머리는 언제나 노랑이었으니 검은 머리는 상상이 안될 만도 하다.


아이들은 편견이 없다. 어른들처럼

'나이 먹고 머리가 왜 저래...' 하는 표정을 한다거나, 직업을 멋대로 상상한다거나 하는 일 없이 그저 좀 색다르고, 재밌고, 노랑머리 아줌마가 웃긴 거다. 자기네 엄마하고는 다르니까. 다른 거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억측도 하지 않는다. 그냥 다름을 해맑게 받아들인다.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몇 년 전 출퇴근할 때만 해도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샛노랑 머리에 긴 속눈썹, 핫핑크 입술, 찢어진 청바지에 몸매가 훠언히 드러난 옷차림으로 아이 등원을 시킬 때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머리 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며 궁금해 하는 눈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직업은 뭘까, 나이는 몇살일까, 애엄마가  저렇게 날나리처럼 하고 다닐까...


나는 키가 작고 동안이라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네가지 없는 얼굴과 날나리 스러운 옷차림이 나름 매칭이 잘되었다. 그래서 이 나이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녀도 할머니 소리를 안 듣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늘 나의 직업을 궁금해하는 눈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뭐 허는 여자여~~~' 하는

마음의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렇다고 눈길로 질문하는 사람에게


"저기요! 제가 이래 봬도 대학원까지 나와 지식을 전달하는 전문직 강사입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이 먹은 사람은 노랑머리면 안 되나??

강사는 찢어진 청바지 입으면 안 되나??

애엄마는 옷 좀 시원하게 입으면 안 되나??


여자라서, 애엄마라서 여전히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경계당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지. 나라도 "라테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뭐, 지금은 그러고 나돌아 다니고 싶어도 갈데가 없는 반 백수라서 세수도 안하고 살 때가 더 많다. 탈색 안한지도 오래되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헤어스타일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아들, 엄마 머리 검은색으로 바꿀까?"


아들의 대답과 상관없이 난 그냥 노랑머리로 살 거다. 우헤헤.

철없는 쉰둥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너도 8살, 나도 엄마 나이 8살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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