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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Oct 20. 2021

혹시 내 아이가 ADHD?

신경 다양성을 아시나요?

2021년 초등학교 입학하고 3월, 4월 2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틀이 멀다 하고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고, 선생님이 지적하신 행동들을 교정하기 위해 나는 아들에게 점점 모질고 엄해지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담임선생님 전화일까? 이번엔 또 뭘 잘못했을까?"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이제는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피로감이 훨씬 더 많이 배어 있다 느끼는 건, 나의 자격지심일까?



문제가 된다는 행동의 대부분은 누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하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사물함 정리가 엉망이다 "


"수업 시간에 발을 자꾸 움직여 앞 친구가 불편해한다"


" 수업 시간에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뭐, 이런 얘기 들이다. 크게 신경 안 쓰고 무심한 척 넘어가려 해도 아이가 학교에서 계속 지적당하면서 자존감 낮아질 것을 생각하니 명치끝이 아파왔다.




8살 남자아이.... 숲학교 다니던 3년 내내 선생님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터라, 극성맞고 산만한 게 그 나이에는 정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초등 입학 후에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지속적으로 받다 보니


혹시 우리 아이가 ADHD 가 아닐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아동기에 주로 나타나는 장애이다. 지속적인 주의 산만,
과다행동,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성인 ADHD로 이어져
사회생활이 힘들 수 도 있다.


옴마야...... 다 우리 아들 얘기 같은데.


대부분의 정보성 글들에서 일맥상통 이런 식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아마도 ADHD에 대한 의학계의 전통적인 이론인 듯하다. 보통 ADHD를 검색하다 보면 자가진단 방법과 증상들 그리고 치료방법들이 나오는데, 보통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이거나 소아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거나 아동심리치료를 하는 식이다.


딱! 그냥!


정상이 아닌 걸로!


뇌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걸로!


결론이 나버린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심장이 두 근 반 세근반 쿵쾅거리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들리는 듯하다.




ADHD 자가진단


▶ 세부적인 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종종 과제를 하거나 놀이를 할 때 지속적으로 집중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시한 일을 해내지 못하거나 숙제를 제때 끝마치지 못한다.


▶본인의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장난감, 연필, 숙제, 책 등).


▶종종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산만해진다.


▶종종 손발을 만지작 거리며 가만두지 못하거나 의자에 앉아서도 몸을 꿈틀거린다.


▶수업시간에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다닌다.


▶지나치게 말이 많다.


▶질문이 끝나기 전에 성급하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침해한다. (대화에 끼어들거나 게임에 끼어든다)


이러한 증상이 6개월 이상 학교나 학원 교회 등 여러 장소에서 지속되고 있다면 ADHD 증상을 의심하고 검사를 권유하고 있다.



테스트를 해 보면서도  어떤 때는 그런 것 같기도 또 아닌 것 같기도,  어떤 항목은 가끔 그러기도 또 아니기도 한 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 항목들에 하나도 해당이 안 되는 8살이 있나??라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만난 8살 아이들은 대체로 저렇던데 ~~ 그럼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은 다 장애가 있는 건가 ㅠㅠ "


"아인슈타인, 윈스턴 처칠, 에디슨도 ADHD 였다던데, 그럼 우리 아이들은 전부 천재인 건가??"


자료를 뒤적이며 혼자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집을 지었다 부쉈다, 만리장성을 쌓았다 부쉈다.



그래서 아마도 ADHD가 의심되면 전문적인 뇌 발달 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일 텐데... 나는 우리 아이 검사 결과가 정말 ADHD 진단으로 나올까 봐 살짝 두려워서 냉큼 시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이가 어떤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검색창을 열어 본다. 검색을 할수록 우리 아이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뜨거운 덩어리가 슬슬 단전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다. 불안이 증폭된다. 사실 차일피일 검사를 미룬 것도 만일 ADHD 진단을 받고 엄마 스스로 선입견을 가지게 될까 봐, 내 아이를 환자 취급하게 될까 봐. 그래서 엄마의 죄책감, 불안, 조급함이 아이에게 비칠까 봐 마음의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



매일 밤 검색하고 검색하고 또 검색하면서 내 아이가 ADHD 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긍정적인 견해를 보여 주는 책이었다. 그야말로 찬란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즉시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엄마들을 위해 내용의 일부를 나누고자 한다.



<부모와 교사를 위한 신경 다양성 안내서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토머스 암스트롱 지음

강순이 옮김/김현수 감수




 책을 만나는 순간 ~ 귓가에서 천국의 종소리가 들리는 .


나의 불안과 걱정은 조금씩 사라지고, 아이의 행동을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ADHD 검사를 받은 것도 아니고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행여 우리 아이가 ADHD 라 할지라도 괜찮을 것 같은 심리적 안정이 찾아왔다.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에서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담긴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을, "신경 다양성"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긍정적이고 포괄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신경 다양성'을 뇌과학 이론과 인류학, 진화심리학 등 과학적 연구를 종합해 체계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결핍, 손상, 기능장애'의 세계에서 아이들을 바라보았던 기존 관점을 '특별한 강점, 재능, 능력, 가능성'의 세계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자신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관점이 어떠했는지 알아차리고 내면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원인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추천인의 글 중.



책의 초입부터 벌써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한결 가라앉았다.



1장. 신경 다양성: 새롭게 이해해야 할 시대가 왔다.


1장에서는 오늘날 우리 문화가 인간의 신경학적 차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이나 인종 다양성을 인정하듯이 인간 두뇌에 내재된 자연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 문화의 다양성도 존중하고 생명의 다양성도 존중하면서도 인간의 뇌가 저마다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을 왜 인정하지 못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뇌는 생물학적 독립체이고 뇌마다 사회성, 학습, 주의력, 기분 등 중요한 정신 기능에서 커다란 자연적 차이가 있음을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치 완벽하게 정상적인 두뇌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표준적인 꽃도 표준적인 문화나 인종 집단도 없는 것처럼 표준적인 두뇌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꽃들의 세계'에 비유하며 설명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가 꽃들로만 구성된 문화라고 잠시 상상해 보자. 가령 장미가 정신과 의사라고 하고, 커다란 해바라기가 장미 정신과 의사의 진료실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려보자. 정신과 의사는 진단 도구를 꺼내고 30분쯤 뒤에 이런 진단 결과를 내놓는다.

"거대증을 앓고 계시네요,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가능한 질병이지만, 어이쿠, 지금 환자분 상태에서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이 장애를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도와드릴 방법은 몇 가지 있습니다. "

해바라기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눈부신 노란색과 갈색의 머리를 줄기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진료실을 나선다. 그다음 환자는 수레국화다. 장미 정신과 의사는 몇 가지 진단 검사와 건강검진을 한 다음 이런 진단을 내린다.

"안타깝게도 환자분은 GD(growing disability), 즉 성장장애가 있습니다.  유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어딘가 물이 잘 빠지는 사양토에서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수레국화는 들어올 때보다 훨씬 작아진 기분을 느끼며 진료실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진료실에 칼라 백합이 들어오고, 정신과 의사는 5분 만에 무엇이 문제인지 결론을 내린다.


"환자분은 PDD(petal deficit disorder) 즉, 꽃잎 결핍 질환이 있습니다. 완치는 어렵지만, 특별히 고안된 처방법을 이용하면 진행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 동네 제초제 외판원이 무료 샘플을 몇 개 주고 갔는데 원하시면 한번 써보세요.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p.28-29



"꽃들의 세계" 비유는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기존처럼 병리적 관점에서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대신에 그들의 차이에 집중하도록 한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은 3차원으로 선명하게 시각화하는 능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확산되는 남다른 주의력 스타일이 있다. 자폐 성향의 사람들은 사람보다는 사물과 더 잘 교감한다.

이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저 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뇌과학과 진화심리학 연구뿐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인문학 연구를 보면 이러한 신경 다양성이라는 차이가 실재하고, 신중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경 다양성이라는 용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ASD)라는 딱지가 붙은 개인들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장애가 아닌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생물 다양성이 생물 전체에게 중요한 만큼 신경 다양성이 인류에게 대단히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느 특정 시점에 어떤 형태의 신경 배선이 가장 유리할지 누가 알겠는가? 예를 들어, 인공두뇌학이나 컴퓨터 문화는 다소 자폐적인 기질을 선호할 수도 있다.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소위 정상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신경 전형인 증후군(정상적 행동)'이라고 농담조로 정의하면서 "신경 전형인 증후군의 특징을 사회적 관심에 대한 집착, 우월성에 대한 망상, 순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특징을 갖고 있다.


정상인들에 대한 조롱 섞인 표현인 걸 알고 있음에도 그들이 사회적 편견에 얼마나 상처 받고 배척당했는지 짐작이 가기에 우스갯소리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저자는 '신경 다양성'이라는 용어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과 그 보호자들에게 그저 듣기 좋은 장단을 선사하려는 책략이 아니라 뇌과학, 진화심리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를 통해 우리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토머스 암스트롱이 이 책을 쓴 궁극적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책을  것은 부정적인 면으로 규정되는 사람들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는 진지한 캠페인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보완하는 역할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책이 훨씬  많은 것을 성취해서, 억압받던 소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자유를 쟁취한 것처럼 신경 다양성 뇌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삶에서 존엄성과 온전한 자기 모습을 찾을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뇌기능 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질환들을 너무 핑크빛으로 보게 만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책을 발견하고 적잖이 심리적 위로를 받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교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뭐라 뭐라 하실 때도 입으로는


"네네 알겠습니다. 집에서도 주의를 주겠습니다. 더 잘 가르치겠습니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장점도 좀 봐주세요. 잘하는 것도 있잖아요!'


라고 말하며 부정적인 견해는 아예 귀를 닫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신경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논거를 제시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낭만적으로 그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마도 나처럼 이 책을 구원의 동아줄로 여기고 맹목적이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낙관적으로 살고 싶다. 우리 아이 ADHD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혹여 진단을 받더라도 크게 낙담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아서이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밤새 인터넷만 뒤지다가는 내 불안에 내가 먼저 질식사할 것 같다.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내 아이는 내 아이일 뿐이다. 조금 느려도, 부족해도 나는 그 아이의 편에 서야 하는 엄마이다. 학교가 지켜주지 못해도, 세상의 편견에 설 자리가 없어도, 그 아이와 함께 길을 걷고 안내해야 하는 사람. 나는 우리 아들의 하나뿐인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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