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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Oct 20. 2021

숲에서 크는 아이들

군산 고센 숲 탐험대

"아이 낳으면 이민 갈 거야!!!"


2012년 겨울, 아이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호기롭게 외쳤던 나의 다짐은 아이를 낳은 후 허공으로 흩어졌다. 말이 그렇지 아무리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한들, 이민이 어디 그리 쉬운가.



임신과 출산 후  인생 항로의 변화가 어찌나 변화무쌍하던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2015 7, 출산 후 10개월 만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개월  남편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기대 이상으로 사업이 확장되었다. 우리 부부는 사업과 병행했던 기존의 직업인 공교육 교사와 사교육 강사를 모두 그만두었다. 



호기로운 다짐은 실행될  없었고, 우리는 아이의 진로를 변경했다. 이민은 못 가더라도 제도권 교육에 입학할 나이가 되기 전에 사업 기반을 확실히 다져 놓고 아이를 데리고 유학을 가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3년 동안 숲에서 자랐어요.


현재 8살인 우리 아들은 다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3 동안  학교(대안유치원) 다녔다.



유난히 활동적이었던 아이는 일반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내 아이라 그런가 싶어 실내 활동보다는 외부 활동이 많은 숲유치원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정부 지원을 받는 숲 유치원은 대부분 일주일에 한 번 숲에 가거나 아침에 한두 시간 다녀와서 실내 활동을 했다. 역시 아들에게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몇 날 며칠 눈 빠지게 수소문해서 가까운 곳에 제대로 된 숲학교를 찾아냈다.


"고센  탐험대" 크으~~~~~ 이름도 멋짐 멋짐 ^^



제도권 밖에 있는 기관이라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니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어린 시절 자연에서의 배움이 아이 인생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을 알기에 과감히 선택했다.


산이나 들이나 바다나 어딜 가든지 부모가 멀리서 지켜만 봐주면 5시간 이상을 혼자 노는 아이였다. 곤충과 물고기를 좋아하고, 다방면에 호기심이 넘치고, 적당히 산만한 우리 아들에게는 맞춤형 교육기관이었다.


고센 숲 탐험대에서 모든 결정의 주체는 아이들이다. 3살부터 7살까지 대략 20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아침에 등원하면 아이들끼리 반장을 뽑고 그날의 일정을 투표로 정한다. 딸기산으로 갈지, 가재산으로 갈지 뽀로로 산으로 갈지. 산 이름은 아이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여러 산들 중 어디를 갈지 무슨 놀이를 할지 전부 아이들이 결정한다. 웬만한 다툼에도 선생님들은 끼어들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도하고 나중에 다툰 아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며 서로 의견을 나누도록 한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킬 뿐 놀이를 주도하거나 아이들의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풍이 휘몰아치나, 미세먼지 황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숲에 나간다. 옷 젖을 걱정 없이 빗속에서 풍덩거리고 진흙 놀이를 하고, 눈이 오면 볼이 빨개져라 눈싸움을 하고,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는 법을 배웠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이 주는 선물들을 사시사철 받고 자란 것이다. 이 아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매일 몸으로 배우며 그 안에서 생각하고 놀이하며 자랐다. 아이는 숲학교를 무척 좋아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시는 선생님들


숲학교 시절에는 아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 문제로 시시콜콜 전화 오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모들이 궁금해서 전화를 한다. 나도 가끔씩 아이의 행동이 걱정스러워 보일 때 상담 전화를 하곤 했는데 선생님들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이들이니까 다 그렇죠."

"그러니까 아이인 거예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아들 잘하고 있어요"

"스스로 깨달을  있게 안내는 하되 기다려 주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놀기만 해서 초등학교  불편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면


"잘 노는 애들이 공부도 잘해요. 조금 늦어 보여도 금방 따라잡을 거예요" 하시며 졸업생들의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말씀 덕분에, 나는  아이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정신없이 까불어 대는 아이가 때로는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사람 될 터이니 기다려 보자고 생각했다. 적당히 까불고, 적당히 산만하고, 적당히  안 듣고, 공부보다는 노는걸  좋아하고(이건 어른들도 그렇지 않나요? ㅋㅋ), 공룡과 카봇에 환장하는 그저 그냥 평범한 남자아이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그까이꺼~ 입학하면 물론 다른 애들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적응할 거라고 믿었다.




12월. 입학통지서를 받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옆으로 뜯어봐도 선뜻 공교육으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지난 4월 수술 후, 시력이 회복되는데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코로나 시국 핑계로 아이 유학은 알아보지도 못했다. 사업적 위기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뤄 두었던 고민들이 입학통지서와 함께 날아들었다. 지금은 두 가지 카드뿐이다.


공교육인가, 대안 교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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