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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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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Dec 13. 2021

노산 육아맘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50대를 20대처럼 맞이해야 하는 이유



아홉 살 : 일찍 철들어 버린 아홉수

선잠 깬 새벽. 실눈을 뜨고 부모님의 싸움을 훔쳐보며 동생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 가정사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참 어른이 된 것처럼 동생들을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애늙은이처럼 일찍 철이 든 부작용은 이때부터인 것 같다. 말수가 줄어들고 또래보다 생각이 많은 아이로 십 대를 보냈다.




열아홉 : 실패로 시작한 청춘의 아홉수

대학에 떨어졌고, 인생의 실패와 죄책감으로 이십 대를 열었다.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하면서 친구들보다 먼저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했다. 대학에 간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술값을 당당히 내주며 두툼한 지갑을 가진 경제인으로서 대학에 가지 못한 열등감을 감추려 했다. 스물넷,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학원 강사 일이 졸업 후에도 생업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해 늘 미적지근한 일상을 버텨냈다.




스물아홉 : 해선 안 될 결혼을 하게 된 아홉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30대가 되면 정말 나의 청춘과 점점 더 하루 멀어져 가며 매일 이별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매일매일의 내 삶과 이별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고, 이내 사라지는 청춘의 순간순간을 느린 화면으로 되감기 해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30대 어른의 삶이라고 추측했다. 꽤나 철학적인 30대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나의 30대는 생계의 최전선에서 잔다르크처럼 전장을 휘젓고 다니느라 하루가 어떻게 왔다 어떻게 멀어지는지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인식은커녕 '내 손목에 시계가 있었던가' 생각할 겨를 조차 없는 나날들이 쏜 화살보다 빠르게 10년을 관통했다.


가난한 뮤지션과 결혼했고, 그의 딸을 키우는 스텝맘으로써 남편의 학비와 품위유지비 그리고 딸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벌어대느라 30대가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에게 축복받는 결혼은 아니었지만 보란 듯이 잘살게 될 거라는 환상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열녀문이라도 세울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가족이니까 돈은 누가 벌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어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선택했다.




서른아홉 : 수면제와 우울증으로 얼룩진 아홉수.

십 년을 소처럼 일해서 그럴듯한 명함을 가진 뮤지션 남편을 만들고 그의 딸을 명문 대학에 보낸 후, 나는 이혼했다. 10년을 통째로 갈아 넣은 내 첫 번째 결혼생활은 처절했던 생존 투쟁기만을 남긴 채 한방에 훅! 편집되어 버렸다. 헌신하다 헌신짝 되어버린 나의 30대와 함께 싹둑!!


막 이혼 도장을 찍은 나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 국화꽃처럼 원숙한 여인 코스프레를 하고 다녔다. 곧 마흔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지던 그 해 가을. 그땐 정말 내가 나이를 참 많이도 먹었구나 생각했다. 생기하나 없이 와인에 푹 절여져 진 채 하루하루가 흘렀다. 다시 누군가와 꽁냥 꽁냥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구토가 올라왔다. 자식도 없이 늙어갈 일만 남은 나이 든 이혼녀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노후를 걱정하면서 몸도 마음도 늙어버리고 있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어디 인생이 내 맘대로 굴러가던가. 결혼은 생각도 없으니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자던 한 남자를 만났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취향도 성격도 맞지 않는 그 남자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며 10년이 흘렀다. 곧 할머니가 될 것처럼 다 늙은 이혼녀 코스프레를 하던 내가. 마흔을 지나 내 아이의 나이만큼 다시 어려진 채, 철없는 육아맘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냈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던 그 인생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마흔아홉 : 여전히 찾아오는 불행들과 맞서는 아홉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두 번째 이혼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했던 시간들. 내 평생을 통 틀어 가장 어렵고 다이내믹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총기 발랄한 10년이었다. 마음은 20대 육아맘인데 몸은 40대라는 불균형 속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육아소통은 2-30대 젊은 엄마들과, 갱년기 소통은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들어가고 있는 친구들과 나누었다. 하루하루 형형색색으로 펼쳐지는 나의 40대는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낸 친구들의 잔잔한 40대와는 달랐다. 우울증과 함께 늙어가리라 예상했던 나의 사십 대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루하루가 스펙터클했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쉰이 된다. 어렸을 때 상상한 나의 쉰 살은 늙어가는 일 외에는 주어지지 않는 삶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을 여의고 모든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자리를 잡은 중년. 격동의 삼사십 대를 정리하고 그간의  노고를 충분히 치하받으며 차분히 노후를 준비하는 여유로운 장년층.


풉.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니 상상했던 오십 대에 웃음만 난다. 친구들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거나 벌써 결혼 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건만. 나는 이제 8살 아들의 ADHD와 체험학습을 고민하며 10칸 노트를 사야 할까 15칸 노트를 사야 할까 인터넷에 검색 중이다. 아들의 장난감을 정리하며 이누무시끼 언제 사람 될까 한숨을 쉬면서도 여전히 아들을 끌어안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행복해하는 육아맘이다. 아들 덕분에 나이를 잊고 2-30대 엄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놀이터에서 만나고 있노라면 내 나이가 쉰인지 스물일곱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이라는 게 그렇더라. 세월이 간다고 다 똑같이 나이 먹는 게 아니더라. 벤자민 버튼의 시계만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시계도, 누군가의 시계도 얼마든지 거꾸로 갈 수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가 40대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더더욱 나이를 잊는다. 어린 친구들과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고 그 어린 친구들이 스승이 될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시간에 따른 육체의 물리적 변화까지도 거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까지 욕심내는 건 노망이지 싶다. 중력의 법칙을 증명하듯 흘러내리는 볼살과 처진 엉덩이는 운동이라는 지상 최대의 난제를 극복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며칠 후에 맞이하게 되는 50대에도 늙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를 키워내고 성인으로 독립시키기 전까지 나의 몸과 마음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태어나보니 마흔둘의 엄마 아빠를 갖게 된 우리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내 부주의와 자기 관리 소홀로 남들보다 빨리 부모를 잃게 되는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다. 


징크스처럼 내 아홉수에는 3 재가 아니라 한 300재쯤 되는 불운들이 달려들었다. 아마도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수면제, 우울증 약을 친구 삼아 온몸으로 그 불운들을 끌어안고 살았을 것이다. 남들 탓만 하면서.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내 아이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불행을 공유하게 해서는 안된다. 내 아이가 나를 다시 살게 만든다.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다시 웃게 만든다. 때론 몸과 마음의 불균형이 나를 절망하게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젊은 아홉수를 지나고 있다. 나의 아홉수가 지나면 아들의 아홉 살 인생이 내게로 온다. 갱년기보다 무서운 아들의 사춘기를 대비하며 최대한 아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자격 미달 중년 코스프레는 20년쯤 후로 미루어 놓기로 했다.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요가 후에는 단백질 쉐이크로 영육의 건강을 채우며 에너지를 장전한다. 그 에너지로 아들과 끊임없이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이다 "사랑해"로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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