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리파토스 Dec 07. 2021

늙은이 냄새

일흔 독거노인 그리고 모과 한 봉지에 대한 부채감


"딸아, 바쁜 거 아는데 시장에 좀 가자"


수화기 넘어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아버지,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모과 좀 사게"


"지난번에 사셨잖아요. 부족해요?"


"그건 모과주 담가 버렸고......"


"모과주 담그셨는데 왜 또 모과가 필요하세요? 더 담그시게? 그것도 꽤 많던데요......"


"........"


아빠는 한참 말씀이 없으시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민망한 듯 대답하셨다.


"... 자꾸 냄새가 나...... 늙은이 냄새가......"


나는 순간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럴 리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혼자 살고 계시지만 워낙에 깔끔한 양반이라 항상 쓸고 닦고 하신다. 냄새는커녕 집안 공기가 향기롭다 못해 청아하다. 피우시던 담배도 4년 전 폐렴으로 큰 고비를 넘기신 뒤로는 딱 끊어버리셨고, 집안에 냄새 베일까 봐 음식도 잘 못해먹게 하신다. 그런데 무슨 냄새가 나신다고......


"아부지, 냄새는 무슨~~~ 우리 집보다 향기롭더구먼요!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여고생 자취방 같아요. 방향제도 있도 아부지가 수시로 환기도 시키시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러세요??"


핸드폰 넘어 아버지 표정을 읽으려 애쓰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저 아버지 맘 편해 지시라고 너스레를 떨어댄 게 아니다. 진짜로, 레알, 소위 '홀아비 냄새'라는 게 1도 안 나는, 먼지 한 톨 안 보이는 깔끔쟁이 집이다. 8살 아들을 데리고 가면,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눈치를 주게 되는 그런 집.


그런데도 전화기 넘어 아버지가 웅얼거리듯 말씀하셨다.


"아니야... 하루에 몇 번씩 씻어도 몸에서 냄새가 나...... 늙은이 냄새...... 나이를 먹으니까 이상해. 방향제도 뿌리고 향수도 뿌리는데 안 없어져. 모과 향기 은은하게 퍼지면 좀 나을까 하고...... 옛날에는 그렇게 방향제 대신 놓았거든......"



나는 전화를 끊고 곧장 댁으로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시장에 갔다. 요즘에 모과가 팔리는 줄도 모르고 있던 나는 아버지가 안내해주는 재래시장의 어느 청과물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아버지가 한 보따리 모과를 사 오시며 이만큼이 5천 원밖에 안 한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시장에 가는 동안에도 좀전에 의기소침하던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소풍가는 초등학생처럼 들떠서 수다스러워졌다. 마트에는 없고 여기 시장에 와야 있다는 둥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인심이 좋다는 둥 옛날에 모과주 담근 추억까지 .... 


잠깐 시장으로 가는 그 순간에 아버지 기분이 좋아지신걸 보며 안심이 되면서도 괜시리 콧등이 시큰해졌다. 자꾸 늙은이 냄새가 난다며 모과를 사러 가자고 하신 이유가 아버지의 짙은 외로움 때문인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예쁜 쟁반에 모과를 올려 거실장 위에 놓으며 아버지께 물었다.


"여기다 놓으면 되겠어유?? 맘에 들어유?? 향기는 워때유??"


장난스럽게 사투리를 써가며 아버지께 농을 던졌다.


"늙은이 냄새는 무슨.... 아주 꽃분이 시집가는 날인 줄 알겠네.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향기가 나잖아요. 채널 남바 빠이브 하하하하"


나는 일부러 전원주처럼 웃어댔다.


사투리 싫어하시는 아버지도


"아 이런 까불기는 하하하하"


따라 웃으신다.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내 마음과는 달리, 나이 든 딸래미와 잠깐의 외출로 표정이 밝아지신 아버지는 단풍사이로 부서지는 가을 햇살에 외로움을 몽땅 건조시켜 버리신 듯 금새 뽀송뽀송해 지셨다. 


출처:https://m.blog.naver.com/mijuart/100204945925





칠십 평생을 서울과 그 언저리에서만 사시던 아버지가 나와 동생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바닷가 도시로 내려오시게 된 건 올해 7월이었다. 3월에 건강검진을 받고 대장암 초기 진단이 나와 지속적인 추적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지방에 있거나 해외에 있는 네 딸들이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자주 찾아가 볼 수가 없어서 아버지가 내려오시기로 결정하신 거다. 막내딸을 가장 이뻐하시지만 그래도 신세는 큰딸에게 지는 게 나으니 내가 있는 곳으로 오시라 권유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서로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딸 셋 모두 지방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며칠씩 아버지께 다녀올 수 없었고, 셋째 딸은 해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든 고향과 친구들을 모두 번화한 윗동네에 남겨 두고, 졸지에 한적한 시골생활을 하게 되신 아버지는 참 많이도 외로워하신다. 지척에 있는 딸들도 각자의 삶에 충실하느라 아버지의 외로움을 다 채워드리지 못한다.



이제 5개월째 접어드는 적적한 지방 생활.

어쩌면 나지도 않는 늙은이 냄새는

아버지의 깊은 외로움 때문일 것이고

그 냄새를 없애고 싶은 모과는

윗동네에 두고 온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고,

지척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못 보는

딸들에 대한 서운함일 것이고

방향제를 뿌리고 향수를 뿌려도 채워지지 않는

집안 온기에 대한 허전함일 것이다.


다 채워드릴 수 없는 그 감정들의 책임자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늘 부채감으로 마음이 무겁다.

 

2021년 11월 4일에 담근 모과주가 익으려면 1년은 걸린다는데

내년 이맘때쯤 모과주를 마실 때면 아버지의 새 친구들과 함께였으면 좋겠다.

여자 친구면 더 좋고~~~^^


출처:우리아빠그램



작가의 이전글 마흔아홉 짤 노랑머리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