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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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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파토스 Sep 27. 2023

어쩌면 100일이 나를 변화시킬지도 몰라

100일 100번 쓰기가 알려준 것들

요즘 많이들 하는 100일 프로젝트에 도전해 보았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양자역학까지 뒤적여가며 공부해 본 결과, 완벽한 이해와 상관없이 무척 흥미로웠다. 유쾌한 물리학자 파인만이 말했듯이, 과학자들도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 못 한다고 하니 잘 몰라도 당연한 거라 여기며 깊이 있는지 식은 패~쓰. 물리학에 1도 관심 없는 내가 흥미를 가졌다는 것은 비록 야매스러울지라도 내가 오래도록 빠져있게 될 재미임에는 틀림없다. 여타의 자기 계발서나 시크릿을 읽고 끌어당김의 법칙을 들었을 때는 그저 간절한 바람 혹은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는 심리적 주문 정도로 이해했다. 과학적 맥락 따위는 전혀 없는 간절한 기도와도 같은.  


양자역학을 아주 쬐~~~ 끔이라도 들여다보고 끌어당김의 법칙을 시도해 보니 터무니없어 보이는 나의 목표도 뭐,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나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긍정적인 생각으로 꿈을 끌어당기라는데 못할게 뭐람.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성공자들이 입을 모아 그렇다는데 해보자 싶었다.


5월 초부터 8월 초까지 100일 동안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하루에 100번씩 썼다. 처음엔 '중도에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아, 부담 없이 시작해 보자' 였으나 하다 보니 100일을 다 채웠다. 아직 목표가 달성된 것은 아니지만 100일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나의 의지"를 발견했다. 아주 쉽고 간단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때 목표를 구체적으로 쓰라고 하길래 문장을 좀 길게 썼는데, 그 긴 문장을 하루에 백번씩 백일을 쓰자니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겨 펜을 잡기만 해도 통증이 왔다. 평소에 이토록 오래 펜을 잡고 글을 쓸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앉은 자세에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절여서 구부렸다 폈다 코끝에 침을 발라가며 써나갔다. 현재로선 얼토당토않은 목표였기에 쓰면서도 여러 번 현타가 오기도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선 100일을 꾸준히 했다는 점에서 나의 의지를 칭찬한다.


둘째, 100일이라는 시간이 습관을 제대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이 두쪽 나도 매일매일 노트를 펴고 손가락을 주물러가며 100번을 쓰고 있는 내가 스스로도 대견했다.


셋째, 하루 이틀, 1주 2주가 지나면서 목표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새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써 내려가는 손가락은 아픈데 마음은 명상하듯 평화롭고 고요해졌다. 늘 산만하게 움직이는 내 하루에 의도치 않은 명상 시간이 생겨 버린 것이다. 빠르게 쉬지 않고 쓰면 45분, 천천히 손가락 운동해 가며 쓰면 1시간 반. 그 시간만큼은 디지털에서 해방되어 미디어 디톡스를 즐겼다. 전두엽이 클린해지는 느낌이랄까.

  

넷째, 100일이 다 끝나갈 때쯤 또 다른 100일 프로젝트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매일 30분 영어공부를 해볼까? 제일 싫어하는 운동을 10분씩이라도 해볼까? 다이어트 일기를 써볼까? 하면서. 그동안 게을러서 또는 하기 싫어서 미뤄 두었던 일들이 하나씩 생각났다. 납덩이처럼 무겁게 나를 잡아끌던 무기력에서 벗어날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당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쏟아붓던 한 여름 폭우와 폭염도 멈출 때가 되니 멈추었다. 사나운 여름의 상처를 안고 우리는 또 다른 계절을 맞고 있다. 누군가는 수확의 계절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시대일 수도 있는 계절. 인생의 사계절이 누구에게나 같은 시기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내 삶도 농익어 가고 있다.


100일 100번 쓰기를 한 후, 당장이라도 무슨 큰 목표를 위해 정진할 듯했으나 나는 또 이런저런 이유로 아주 긴 휴식을 취했다. 괜찮다. 다시 마음먹으면 되지. 이제 아이도 개학을 했고, 날도 선선해졌고,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너무 모질게 굴지 말자.


요즘 살짝 맛보기로 매일 10분씩 홈트를 하거나 30분 이상 걷기를 하는 등 제일 두려워했던 운동을 살금살금 시작해 보았다. 30-40대였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무조건 100일 프로젝트를 선포하고 되든 안되든 시작했을 것이다. 제대로 다니지도 못할 헬스클럽이나 필라테스를 최소 3개월 혹은 대담하게 1년 치를 등록했겠지.

호르몬 탓인가. 신중한 건지 소심해진 건지 지금은 내가 나를 간 보고 있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꾸준히"를 목표로 삼았다. 오호~전에 비해 잠을 잘 잔다. 날씨가 선선해져서 그런지 100일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어공부도 며칠 해보았더니, 오호~ 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감이 생긴 것인가... 30분 운동, 30분 영어공부를 해도 1시간이면 끝나니 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10살 아들을 둔 워킹맘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변수들을 고려해야 했다. 늘 '목표는 높게 잡는 것'이라며 과하게 욕심을 부리다 실패한 일이 한두 번인가. 추려내자. 제일 급한 것이 무엇인지. 갱년기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불면증과 우울증 없는 갱년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식단조절과 운동이 시급했다. 그래!!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보자. 100일 쓰기를 하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들락날락했던 것 같은데 기록하지 않으니 남은 건 그저 좋았던, 저렸던, 뿌듯했던 나의 느낌뿐이다. 그 느낌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없겠지.


이렇게 쓰면서도 매일 운동을 할 수 있을지, 매일 기록을 남길 수 있을지 소심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러나 뭐 어떠한가. 무엇인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보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대견해지는데 말이다. 이전과 다르게 자꾸 소심해지고 자신 없어지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 아직은 많이 낯설지만 이런 것이 나이 먹어 가는 일이라면 그것 또한 내가 겪어야 할 과정이 아닐까 싶다.


곰도 사람이 되는 시간 100일.

어쩌면.....

100일이 나를 변화시킬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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