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도대체 아침부터 뭘 그리 찾는 거야? 또 지갑이라도 잃어버린 거야? 벌써 몇 개 째니, 쯧쯧.”
자베가 말했다. 주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다니, 그것도 슬쩍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이 정도면 제법 버르장머리 없는 고양이라 할 만하지만, 고양이 나이로 스물네 살이니 사람으로 치면 백 살이 한참 넘은 할머니다. 꼬장꼬장하게 잔소리를 할 기력이 남아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목소리가 쌩쌩한 것이 배를 깔고 늘어져 잠만 자는 다른 늙은 고양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자베는 짐을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책상 아래나 침대 뒤에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짐이 말했다. 혼잣말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마음 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일 수도 있다. 자베는 귀가 무척이나 밝아서 종종 짐의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생각을 알아듣는다. 그러니 입 밖으로 소리를 냈느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평소에 방 좀 치우고 살지 그러셔.”
거슬려도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자베의 성격이 제멋대로인 건 그저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원래 고양이들이란 같이 사는 사람을 집사로 부리기나 할 뿐이다. 늙은 고양이가 어느 늦겨울 오후에 집 안으로 불쑥 들어와 소파 오른쪽 아래를 자기 자리로 선언하자 짐은 고개를 두 번 설레설레 흔들고는 같이 사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짐이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턱없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동네를 돌아다니자면 이쪽저쪽에서 ‘어머, 네 이름이 그게 뭐니?’ 하며 놀림을 받도록 말이다. 해서 몇 날을 고민하다가 아무 뜻도 없는 두 글자를 이어 붙여서는 자, 이제부터 네 이름은 자베야, 자베. 기억할 수 있겠지? 하고 말했다.
하지만 자베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아하, 자베라니, 엘리자베스 하는 고상한 이름을 줄인 애칭이로군. 나쁘지 않은데? 세상에 널린 게 엘리, 리자, 베스 등등인데 자베는 나 혼자뿐일 거라고’ 하며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머리가 제법 좋은 것인지 아니면……도통 알 수가 없다.
“자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방 안에 비밀의 통로가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물건이 이렇게 하나씩 둘씩 계속 없어지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연필깎이를 왜 집 밖으로 들고 나가겠어? 내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말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해. 물건 잃어버리는 거야 네가 늘 산만한 탓이지, 비밀의 통로 같은 게 어디에 있다고.”
‘말도 안 되는 건 너야, 자베. 말하는 늙은 고양이라니, 내가 너 같은 녀석 하고 같이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뭐라고? 너 자꾸 함부로 말할 거야?”
자베는 또 짐의 머릿속 생각을 들어버렸다.
‘휴우, 지갑이 없어지고 하는 거는 그렇다 치자고. 근데 없어져 가는 게 그런 물건들만은 아닌 것 같아. 차라리 없어진 물건이야 다시 사면 되는데 -아깝긴 해도- 그래서 어쩌면 별것 아닌데, 그것 말고도 조금씩 조금씩 없어져 가는 게 있단 말이야.’
힘이 빠질 때 굳이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자베와 함께 있을 때 만큼은.
“무슨 얘기인지 알아, 짐. 너의 기억 말이지?”
‘아주 오랫동안……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눈을 감으면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녀 모습이 내 눈 앞에 있었어. 고통스러웠지만, 그렇게 그녀의 기억이라도 붙잡고 살아가는 게 내 삶이라고 믿었단 말이야.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더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너의 기억까지 가져가 버린 비밀의 창고가 있다, 거기 가서 너의 기억을 찾아들고 오시겠다, 그 말이야?”
‘그거지. 거기 가면 내 기억이랑 지갑 세 개, 연필깎이, 왼쪽 뉴발란스 스니커즈, 우산 일곱 개, 동전 지갑, 아이패드, 자동차 열쇠, 충전기, 삼만 원, 가죽 팔찌, 상하이 로고가 박힌 스타벅스 텀블러, 주머니칼 뭐 이런 것들을 같이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아, 튼튼한 쇼핑백을 하나 챙겨가야겠네. 분명 침대 뒤에 조그만 문이 있을 텐데…….’
짐은 그렇게 방 안의 가구를 죄다 끌어내고 벽이며 바닥을 콩콩, 두드려보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기억이 너를 부르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자베에게 스쳐 지나갔지만 자베의 생각은 짐에게 들리지 않는다, 아쉽게도.
밴드 멤버들 중 한 명이 자꾸 지갑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작년에 중국 공연을 갈 때 지갑을 찾다가 아침 비행기를 놓칠 뻔 했었죠. 다행히 그 지갑은 몇 주 뒤에 트렁크 안에서 발견되었지만, 베이징이었나 주하이였나 하여간 중국 어느 도시에 손목시계를 버려두고 왔답니다. 그걸 지켜보면서 쓴 글이에요. 아, 이것도 Lost라는 신곡의 가사가 되었는데 아마도 여름에 녹음하고 나면 들려드릴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