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가 예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If you can't outplay someone, OUTLOUD." - 다른 이보다 더 잘 연주할 수 없으면 더 크게 연주하기라도 해라.
여기서 듀이란 찾아온 사람에게 Did you guys come to see the right Redman? - 어느 레드맨인지 제대로 찾아오신 것 맞슈?- 하며 시큼 씁쓸한 조크를 날리던 그 듀이를 가리킨다. 그리고 the right Redman은 역시나 그의 아들인 좌시, Joshua였다.
아버지의 음악과는 달리 아들의 음악은 제법 사람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하버드를 나오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이었다던가, 아니면 반대로 예일을 나오고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했었다던가. 한창때의 그는 DKNY의 광고 모델로 기용될 정도였다. 제법 인물도 괜찮고 유명세도 꽤 있었다는 뜻이다. 아니, 돌체 앤 가바나였던가? 학부가 하버드이건 예일이건, 광고주가 DKNY이건 돌체 앤 가바나이건 그 어느 쪽도 상관은 없다. 요컨대 수재 중의 수재가 충분히 화려하던 인생의 항로를 180도 틀어서 그보다 더욱 화려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좌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의 소년 시절 한집에서 함께 살지 않았다. 그 하버드 시절까지 -하버드가 맞다면- 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좌시 셰드로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셰드로프라는 성이 언제, 왜 레드맨이 되어야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인터뷰어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는 순간 좌시는 정색을 하고 노 코멘트, 이렇게 말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듀이의 아들 조슈아, 이렇게 불리는 것이 낫다고 워너브라더스에서 은근히 밀어붙였을 수도 있다. 소속사의 사장이 이제부터 네 이름은 양파야, 이렇게 말하고 나면 제법 노래를 할 줄 아는 소녀는 그 이름이 창피해서 펑펑 울게 된다. 그리고는 얼마 뒤의 방송에서 화창한 웃음과 함께 안녕하세요, 저는 양파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크다. 제법 두뇌 회전이 빠른 좌시가 셰드로프보다는 레드맨이 더 낫겠죠, 일단 레드니까 강렬하잖아요? 하면서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하버드를 졸업한 좌시 셰드로프는 색소폰을 들고 조슈아 레드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다시 자신의 성을 따르는 아들을 아버지가 흐뭇하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지만 알 수는 없다. 평생 키워온 어머니가 꽤나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이미 음악판으로 뛰어든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애써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들 주변에는 흉터들과 아직 흉터로 굳어지기 이전의 상처들이 있다. 그것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가면서 물어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지난 수십 년 간 그 가족의 역사가 어떠했건, 듀이가 한 말은 남들보다 더 좋은 내용으로 연주할 수없다면 최소한 더 큰 소리로 연주하기라도 하란 뜻이었다. 아아, 동서양의 음악사를 통틀어도 제법 명언 축에 끼일 만한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이 미터쯤 떨어져서 들리는 라이드 심벌 소리를 outloud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소리가 무대 위의 네 명에게 놀라울 만큼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모두 받아 적을 수도 있었다. 그 남자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다운비트를 정기 구독하고 있을 수도 있다. 듀이의 말에 무릎을 탁 치며 역시 그런 거였지, 하고 감탄한 뒤 그 문장을 마음에 새겨 두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터득한 인생의 지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의 비극은 그 남자가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옆의 테이블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남자는 무릎을 거의 맞대다시피 한 옆자리의 동료에게 계속 지껄이는 중이었다. 음악 소리가 아무리 높아져 가도 그 남자의 목소리를 이길 방법은 없었다. 그 남자의 목소리에는 볼륨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엄청난 헤드룸이었다. 오버드라이브가 걸리지 않는 클린톤이다. 컴프레서가 필요하다.
무대 위의 네 명은 각자 적당히 얼굴을 찌푸리거나, 눈을 감아버리거나, 앰프 볼륨을 올리거나, 맥주를 들이켜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네 명을 줄기차게 outloud 해 버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무대 위에 서 있다면 어찌 되었건 누군가를 outloud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대한민국 땅에서 재즈를 연주하다 보면, 종종 무대 위의 악기 소리와 경쟁하듯 큰 목소리로 떠드는 취객들을 상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슬프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때 그들보다 소리라도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여기서 좌시는 Joshua Redman이고, 듀이는 그의 아버지 Dewey Redma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