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글래드웰은 제가 꽤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생각해 보면 딱 두 권의 책을, 그것도 슥슥 읽은 게 전부이면서 좋아하는 작가라고 꼽는 게 조금 부끄럽긴 하네요.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감 뿐 아니라 약간 뒤통수를 맞는 기분도 들기도 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저는 <블링크>라는 책으로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판은 ‘첫 2초의 힘’이라는 부제가 제목 앞에 붙어 있었는데, 원제는 <Blink: The Power of Thinking Without Thinking>입니다. Blink는 눈을 깜빡이는 것, 눈 깜빡할 사이를 말하는데, 첫인상이라던가 ‘감’과 같은 직관적인 판단과 그 뒤에 깔려있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에 관한 이야기여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원래 인간의 심리에 관해 들여다보는 연구를 좀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웃라이어>입니다. 이 책은 1만 시간으로 특정한 숫자 때문인지, 아니면 법칙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이런저런 찬반의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책 내용을 실제로 읽으며 따라가다 보면 크게 반발심이 들 리가 없을 듯합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사례를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니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장이 따라와도 제법 수긍하게 됩니다.
이 책에 반발하는 대부분은 두어 줄로 요약 정리된 내용이 아니면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문구에 반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법칙이라면 사람들은 ‘그 법칙에 따르면 반드시 성공,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는 도식을 떠올리는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법칙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례를 한두 개만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 법칙이 말도 안 되는 것이 됩니다.
그보다는 ‘경향성’ 정도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법칙만 따르면 무조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그 법칙 바깥에는 어떤 성공의 가능성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보다는요. 어떤 영역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사람들에게는 이러이러한 경향이 있더라 하는 식으로. 그러면 대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대체로 어린 시절에 악기를 시작한 이들이 뛰어난 성취를 보이더라, 는 정도는 웬만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가 됩니다. 설령 나 자신이 그 집단에 속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예외가 되고 말겠어, 두고보라구’하는 다짐을 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열어둔 것과 아예 닫아버리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큽니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분포를 분석하며 왜 1,2,3월 생의 선수들이 40퍼센트나 차지하는가, 다른 분기에 태어난 선수들보다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포착해 낸 관찰은 유효하고 재미있습니다. 어린 나이일수록 몇 달 차이로 신체적인 조건이 큰 차이를 보일 수 있고, 그에 따라 스포츠 경기에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큰 경기를 뛰는 경험을 선점하게 되면서 더욱더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백 퍼센트 동의는 하기 어렵다 해도 제법 그럴듯한 얘기로 들립니다.
저는 음악을 뒤늦게 시작한 편이라, 이 이야기가 조금은 아프게 들렸습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남들이 십 대에 겪는 음악적 경험을 십 년 뒤에 쫓아갈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쫓아가는 기간도 꽤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고, 얼마간 성취를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한 것은 저도 사람이라는, 아주 심플하고도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대략 스무 살 언저리에 성장을 멈추죠. 두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기제가 대략 십 대 이전과 이후가 현저히 다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이십 대가 되어 유학을 가서 영어를 배운 저와 주변의 유학생들 경우를 보니 중고등학교 때 건너온 친구들과는 또 다른 세계더군요.
아마도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악기 연주를 통해 청각과 신체 근육을 활용하는 것을 함께 발달시켜 간 사람의 두뇌 구조는 이십 대가 되어 악기 연주를 시작하는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현대의 뇌과학이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명쾌하게 답을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제 연주에서 스스로 느끼는 뻑뻑함, 미세한 지체 같은 것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십 년 전쯤 연습을 통해 새겨 넣은 것들은 지금에 와서 보기에 마치 본능처럼 느껴지니까, 완전히 닫힌 세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성인의 두뇌도 가소성 (platicitiy)가 있어 끊임없이 자극에 의해 재조직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다만 어린 시절의 경험과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겠죠. 그렇게 보면 어린 시절에 1만 시간을 선점한 이들은 사회적으로 기회를 더 확보한 것뿐 아니라,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몸 안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쌓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법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경향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제게 흐릿한 희망을 남겨줍니다. 대체로 그렇겠지만 그래도 예외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