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이들에게 있어 듣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의견을 갖기 어렵겠지요. 타인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받다 못해 마음 깊이 새겨진 그 소리를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간절함에 악기를 집어드는 게 흔한 일일 테니까요.
듣는다는 단어에는 미묘하게 다른 의미가 섞여 있는데, 영어 단어로 hear와 listen의 차이는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소리가 내 귀에 와닿는 것을 hear라고 한다면, 의지를 가지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을 listen이라고 한다는 것 정도는 말입니다. Listen 하는 태도를 더 명확하게 강조하기 위해 굳이 active listening이라고, 능동적인 듣기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알아듣기 위해 애쓰는 것, 사실 즉흥연주가 중심이 된 재즈를 연주하는 이들이라면 일상인 행위입니다. 유심히 듣고 따라 해 보면서 궁금한 것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이 배움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귀가 좋다는 것은 단선율을 실시간으로 알아듣거나, 꽝 하고 한꺼번에 울린 피아노 화음의 구성음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을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음이 자리 잡아야 하는 미세하기 그지없는 박자의 세계를 명확하게 알아듣는 것 역시 잘 훈련된 좋은 귀를 필요로 합니다. 피아노의 건반이 표현하는 무한한 터치의 세계를 알아듣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음원을 듣고 사용된 리버브의 질감을 명확하게 파악해 내서 그럴듯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좋은 귀를 가진 것, 잘 듣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한편으로는 inner hearing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행위도 있습니다. 이건 실제로 귀에 들려오는 물리적인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가상의 소리를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걸 말합니다. 음악을 하는 이들은 제법 명확하게 머릿속에서 멜로디며 리듬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그걸 각자의 악기로 받아 적듯이 연주합니다.
그 상상의 영역에서 어떤 소리를 듣는가, 얼마나 또렷한 상으로 들어내는가가 즉흥연주의 핵심이 됩니다. 그다음에는 그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자신의 악기로 구현해 내는 기술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판 위의 어떤 음들을 눌러야 머릿속의 멜로디가 그대로 소리 날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과정이 능숙해야 그 음표들이 어떤 소리의 모양을 갖춰야 할까, 다시 말하자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즉흥 연주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의 능력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머릿속에서 소리를 선명하게 들어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들어낸 소리를 가장 온전한 모양으로 세상에 꺼내 놓는 것입니다. 셋째는 상상해 내고 세상에 던진 그 소리가 정말 좋은 소리인지 알아듣는 능력입니다. 이런저런 연습 방법이며 과제는 수도 없이 많지만, 모든 연습은 결국 저 세 가지 능력을 계발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다고 생각합니다.
앙상블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둘러싼 이들이 실시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소리에 파묻힌 상태로 그 위에 어떤 소리를 더하면 좋은 음악으로 완성되어 갈지 늘 상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걸 지체 없이, 명확하게 표현해내어야 합니다. 멈칫하는 순간에 마법과도 같던 감정은 사라져 버리기 일쑤고, 머릿속의 소리와 다른 음이 삐걱하고 섞여들 때 감정은 상처를 받습니다.
매우 드물긴 해도, 언제나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웨인 쇼터가 한두 음 쓰윽 불 때면 그 음표가 그런 모양으로 세상에 있었어야 하는 필연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사실은 그가 찰나의 순간에 건져 올려 세상에 던진 소리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