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y Peacock
게리 피콕을 재즈 베이스 연주자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다. 애호가이건 전공자나 연주자이건 말이다. 보통의 선호는 레이 브라운과 폴 체임버스 아니면 찰리 헤이든, 그리고 크리스챤 맥브라이드나 존 패티투치 이렇게 두세 가지 카테고리로 좁혀진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재즈를 좀 들은 사람이라면 저 이름들만으로도 어떤 스타일인지 보이고 들릴 법하다.
게리 피콕은 저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스윙 필로 가득한, 재즈 베이스의 전통을 상징 같은 존재는 아니다. 굵고 낮은 소리로 베이스 사운드의 전형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현재까지 베이스 연주의 한계를 넘나들며 이목을 끄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리고 잠깐씩 마일스 데이비스나 빌 에반스와 같은 재즈계의 가장 중심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온 이들과 연주하기는 했지만, 그는 폴 블레이와 같이 얼마간 아방가르드한 음악가들과도 많이 연주해 왔다. 다시 말해 완전히 주류에 속하는 뮤지션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물론 키쓰 자렛 트리오면 충분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레이 브라운이나 크리스챤 맥브라이드의 커리어를 떠올려보면 그들과는 제법 다른 행보였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게다가 게리 피콕은 한두 가지의 명확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높은 음역에서 왼손의 운지법이 정통적이지 않은 것 때문일 텐데, 음정이 불안정할 때가 많다. 원래 피아니스트였고, 어쩌다 보니 뒤늦게 더블베이스를 독학하다시피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특히 키쓰 자렛 트리오의 음반에서 가끔씩 그런 편인데, 픽업과 앰프를 통해 만들어진 소리를 마이킹 해서 녹음한 음색이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울 때도 있다.
아마 이런 이유들로 많은 이들에게 게리 피콕은 '너무 좋지만 근데 조금...' 하는 인상이 남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무래도 지금 하늘의 별 같은 이들의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아무리 훌륭한 면이 있어도 흠이 남아 있으면 최애 연주자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주저하게 된다. 나도 처음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재즈 베이스 연주자였지만, 한동안 조금 멀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잘 녹음된 소리를 들어보면 제법 두께를 가진 어쿠스틱 한 음색을 가진 연주자이다(그렇다고 찰리 헤이든 같은 종류의 음색은 아닌데, 그런 소리는 악기와 줄의 종류, 셋업 등이 다 달라야 한다). 나는 랄프 타우너와 함께한 음반에서의 그의 음색과 연주를 모두 좋아한다. 충분히 두께가 있고, 아주 표현적인 소리이다.
아니면 마사부미 키쿠치, 폴 모션과 함께한 트리오 Tethered Moon에서의 연주도 좋아한다. [First Meeting]이라는 음반을 제법 많이 들었는데, 셋의 연주도 연주지만 음반의 녹음 상태가 너무 내 이상과 맞닿아있어서 소리 자체를 감상하게 된다. 과거의 ECM 레이블이 가진 과한 리버브의 표현에 지쳐있을 때 이 음반을 들었는데, 내가 평소에 연주하면서 듣게 되는 악기 소리 자체로 느껴졌었다. 무대 위의 연주를 콘서트홀의 객석에서 듣는 기분이 아니라, 피아노와 드럼 옆에서 서서 연주하면서 내 몸을 감싸는 악기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적당히 드라이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사운드이다. 이 음반에서도 충분히 두꺼운 더블 베이스 소리의 매력을 잘 담아내고 있다. 줄을 튕겨 악기에서 소리를 끌어내는 감각이 좋다고 할까, 거칠고 억센 느낌은 없는데도 리듬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더해 이 사람이 가진 프레이즈를 노래하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 다이내믹과 액센트, 프레이즈를 엮어가는 방식이나 화성과 멜로디의 관계 같은 것이 너무도 특별하다. 어쩌면 머릿속에서 새로 들려오는 소리를 쫓아가다 보니 기술적으로 계속 완벽하지 않은, 흠과도 같은 실수가 남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습을 통해 반복적으로 습득한 것조차도 머릿속에서 지워낸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베이스 위에서 진정 임프로바이즈 하는 드문 연주자이다. 이런 면모는 키쓰 자렛의 스탠더드 트리오를 들으면 된다. 어떤 음반을 집어 들어도 좋은데, 어떤 연주도 완벽하지는 않다.
이 곡에서 게리 피콕은 수많은 그의 발라드 연주 중에서도 무척이나 특별한 솔로를 들려준다. 격정적이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프레이즈로 한 코러스를 꽉 채워 끝없이 이어간다. 게리 피콕 특유의 폭넓은 다이내믹은 무척이나 설득력이 있다. 원곡의 멜로디를 슬쩍 인용해 가며 솔로에 들어가서는 한동안 숨 가쁘게 몰아친다. 솔로의 중반부에 이르러는 문자 그대로 잠시 길을 잃고 몇 초간 헤매는 게 들린다. 그리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다시 감정을 쌓아 올리는 게 다 담겨있다. 게다가 베이스 음색도 그다지 만족스럽게 녹음된 음반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흠결을 다 받아들이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음악성이 게리 피콕에게는 가득하다. 틀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하기 위해 모든 리스크를 다 거는, 경이로운 연주자이다.
".... Miles probably said one of the most brilliant, useful, and necessary comments I've ever heard. Somebody was recording with him, and Miles looked at him and said, "What I want to hear is what you don't know." That is really the key: not playing what you know, playing what you don't know. To do that, you have to get very quiet inside, listen, and surrender to whatever that particular musical setting is. So it doesn't make any difference whether I'm playing standards or free stuff, because you're giving up any kind of fixed positions or attitudes you may have about what it should or shouldn't be... So it's kind of a switch from the self playing the muse to the muse playing the self." - Gary Peacock
".... 마일스는 내가 들은 얘기 중에 아마도 가장 탁월하고도 유용한, 필수적인 코멘트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그와 녹음을 할 때, 마일스는 그를 보고는 "내가 듣고 싶은 건 네가 모르는 거야."라고 했었다. 네가 아는 것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모르는 것을 연주하는 것, 그게 진정한 열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아주 조용히, 듣고, 그 특정한 음악적 상황에 복종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러면 내가 스탠더드를 연주하건 프리를 연주하건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는데, 어떻게 연주해야 한다는 정해진 역할이나 태도를 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뮤즈를 연주하는 것에서 뮤즈가 자신을 연주하는 것으로의 전환인 셈이다." - 게리 피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