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콜의 젊음

by 최은창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십 대 초중반의 가수가 가사를 쓰고 노래한 곡이었기에 특별함이 더해집니다. 푸르디푸른 젊음을 온몸과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이 ‘아, 나의 젊음도 사랑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구나’하는 한숨을 내쉬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너무도 아름답도록 젊은 사람이, 제법 인생을 오래 살아낸 사람이라야 써낼 법한 저 한 줄을 끌어냈습니다.


유튜브에는 그녀가 중년이 되고 난 뒤에 부른 라이브 영상 버전도 있던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원곡이 제겐 더 와닿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실 가사만 놓고 보면 얼마간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 노래했을 때 더더욱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죠. 가사와 아티스트의 이미지 사이에서 가벼운 아이러니가 발생하면서 듣는 이의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뭔가를 알 것 같다고 으쓱하며 지냈던 이십 대를 돌이켜보면서 조금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는 것, 부끄럽긴 해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럼에도 서투른 젊음이란 여전히 아름다웠다는 것, 그 모든 장면이 몇 줄의 가사에 의해 고정된 것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저야 뭐, ‘역시 젊음이 좋구나’하는 생각을 때때로 하게 되는 나이가 된 지 오래입니다. 특별한 재능이 젊음과 만나 꾸는 꿈을 지켜보는 건 때때로 벅찬 느낌을 주기까지 합니다. 저에게도 얼마간의 재능은 있었겠지만, 젊은 시절에 활짝 펼쳐질 만큼은 아니었으니 오랫동안 질시에 가까운 삐딱한 마음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젠 젊음을 지나온 지도 한참이라 부럽기는 해도 불편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드러머이자 작 편곡자인 루이스 콜의 음악을 많이 듣지는 않았었는데, 며칠 전 역시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의 음악을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눈여겨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 베이스주자 중 한 명이 루이스 콜의 곡 <Real Life>의 커버 영상 비슷한 걸 올렸거든요. 커버 영상 비슷하다고 한 건 그대로 음표 하나하나를 따라 친 게 아니라 자기가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 쳤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정신이 번쩍 드는 연주였습니다.


하지만 원곡을 잘 몰라서 어디까지가 원곡의 아이디어고 어디부터가 그 친구의 것인지 알 수 없더군요. 그래서 루이스 콜 음악과 그가 이전에 하던 듀오 노워Knower의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Live Sesh' 영상들은 키치한 느낌에다 허무 개그 비슷한 유머코드가 가득한데, 처음 본건 한참 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죠. 당시에는 약간 정서적으로도 안 맞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집중해서 들은 건 몇 년이 지난 오늘 밤이 처음인데,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뭔가 공부하듯이 ‘얼마나 잘하는지 어디 한 번 들어볼까?’ 한 게 아니에요.


젊음은 좋더군요. 특히나 미국의 젊음, 그중에서도 서부의 젊음이 가진 느낌이 있습니다. 날씨가 좋고 땅이 넓어서인지, 꾀죄죄한 차림이라도 구질구질하지 않고 화창한 인상입니다. 각자의 인생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자면 그래도 다 굴곡이 있고 상처도 많겠지만,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아무런 구김살이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저에게 캘리포니아, 특히 90년대 즈음의 캘리포니아의 상징은 No Doubt입니다. 왕가위가 담은 그 시절 홍콩의 젊음은 화려해도 뭔가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지만, 캘리포니아의 젊음은 명확하게 달라요. 거칠게 말하자면 부잣집 막내아들의 투정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Don't Speak> by No Doubt




루이스 콜 계정으로 올라온 <F it up - Louis Cole(Live Sesh)>과 노워 뮤직 계정으로 올라온 Overtime(Live Band sesh)를 연속해서 듣고 봤습니다. 젊음 가득한 영상입니다. 두 영상 모두 집에서 찍었는데, 너무도 캘리포니아스러워요. LA였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 찍었는지까지는 모릅니다만 그렇게 믿어버릴 만큼 그런 정서가 가득합니다.


Knower의 <Overtime>


<Overtime>은 방과 방 사이의 복도 같은 공간에 악기와 보컬을 적당히 셋업 하고는 연주합니다. 곡 시작 부분에 자막으로 'Live sesh in some guys house'라고 띄우는데, 그냥 누구네 집에서 녹음한 라이브 세션으로 녹음한 거야 하고 밝힙니다. 'Sesh'는 짐작했던대로 session의 줄임말 같은 거라네요. 드럼은 방 하나에 들어가서 문을 열어둔 상태로 연주하고요. 촬영도 대충대충, 그냥 막 한 게 역력합니다. 그런 느낌을 내려고 철저히 계산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충 했습니다. 반사음이 좀 지저분했는지 시커먼 계란판 모양의 흡음재를 대충 문과 벽에 붙여놓은 것도 보입니다. 요즘은 저런 거 잘 안 쓰거든요. 그렇지만 러프한 느낌의 라이브 음원은 꽤나 멋지게 들립니다. 영상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F it up> - Louis Cole


<F it up> 역시 우리 기준에서 보면 작지 않은 이층 단독 주택에서 촬영했습니다. 등 뒤로 보이는 문이 같아 보이니까 아마도 <Overtime>의 그 친구 집 아닐까요? 영상 전반부의 키보드와 보컬마이크는 계단 2층에, 드럼은 계단이 꺾어지는 1층과 2층 사이에 셋업 했고요. 베이스는 그 아래쪽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연주하고 기타는 벽장문을 열고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리고 곡이 좀 전개되고 난 다음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드러나는 거실에는 열 명이 넘는 각종 관악기가, 유리창 밖 테라스에는 세 명의 코러스 보컬이 있습니다. 키친 아일랜드에 키보드도 한 대 자리 잡았고요. 이동 카메라는 아이폰 한대와 마이크 하나를 대걸레 자루에 덕 테이프로 붙여서 솔로 주자에게 가져다 대곤 합니다. 벤 웬들, 네이트 우드와 같이 익히 알고 있던 얼굴도 보이고, 샘 윌키스 같이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지 않던 사람도 이제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워낙에 펑키함 가득하게 신날뿐더러 관악기 편곡도 멋져서 놀랍습니다. 그냥 컨셉 잡고 웃기게 해 보자, 하는 것에 그친다면 뭐 흔한 유튜브 영상 중에 하나였겠죠. 근데 음악이 가진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음악을 너무 잘하는 젊은이들이 루이스 콜을 중심으로 모여서는 ‘우리 이런 거 하면 진짜 재밌지 않겠어?’ 하면서 키득거리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끌고 나갔을 걸 상상해 봅니다. 결과물에 담기지 않은 시행착오도 많았겠지만, 일단 해보면서 만들어 갔겠지요. 젊음이란 그런 거란 생각을 합니다.



<Maroon 5 Medley> - Victoria Justice and Max Schneider


사실 달력을 조금 더 이전으로 되돌리면 빅토리아 저스티스와 맥스 슈나이더가 수많은 마룬 파이브 곡들을 한 곡으로 편집해서 메들리를 만들어 부른 영상도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한 루이스 콜과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그들의 영상을 볼 때도 젊음 그 자체가 느껴져서 며칠간 끝없이 반복해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나 널찍한 2층 집의 모든 공간을 활용해서 이리저리 가사를 붙여놓고는 카메라의 컷이 없는 원테이크로 노래하는 두 명을 쫓아가며 완성한 4분 정도의 영상에서 구김 없는 미국의 젊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아마 캘리포니아 맞을 거예요, 아마도.


<Stupid In Love> by Max(Feat. Huh YunJin of LeSserarim


매력 넘치는 빅토리아는 배우였던 것으로 어디에선가 들어 기억하고 있고, 노래 제법 잘한다고 느꼈던 맥스는 영상에 계속 등장하는 십여 년쯤 지나 몇몇 케이팝 아티스트와 콜라보도 한 가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Stupid In Love>라는 곡에서 르세라핌의 허윤진과 함께 한 뮤직비디오를 어쩌다가 보게 되었는데, 그때 그 맥스 슈나이더라고 바로 알겠더라고요. 유태인 특유의 꼬불꼬불한 머리숱이 조금 줄었나 싶긴 한데.






기억을 믿으면 안 되는 나이이기도 하고, 팩트체크 하지 않은 어설픈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 배우네요. 노래를 부른 맥스와 영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프로듀서 커트는 성이 슈나이더로 같아서 당연히 형제지간일 것이라고 지금껏 믿어왔는데, no relation이라고 위키피디아에서 굳이 표기하는 걸 보니 저처럼 오해한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거야 그럴 만하다고 보고, 두 슈나이더의 성장환경을 보니 동부 출신이라 글에서 자신만만하게 쓴 게 틀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빅토리아는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나 LA에서 자랐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빅토리아는 제게 캘리포니아 걸을 상징하는 이미지 자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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